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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재해석(36)
36. 오나라 제국을 가능하게 한 용장들
[460호] 2022년 04월 01일 (금)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손권은 손책에 비해 정이 많은 군주였다. 그는 모든 부하를 가족처럼 대해 오나라는 가족형 그룹을 방불케 하였다. 이 말 뜻은 모든 부하들이 손권의 정을 못 이겨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권은 조조와 유비와 더불어 삼국정립을 이뤄 강남의 제국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황 개(黃 蓋)

적벽에서 화공으로 대승을 거둔 황 개(黃 蓋)

  기원 208년 조조는 장강을 건너 남방을 침공한다. 막강한 적을 앞둔 유비와 손권이 손잡고 조조에 맞서 싸운다.

유비의 진영 군사력은 아주 보잘 것 없어 홀로 조조에게 대응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유비에 비해 손권의 군사력은 조조에게 맞서 싸워 볼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손권의 진영에서는 주유와 노숙을 비롯한 항전파(抗戰派)와 장소를 비롯한 항전파(降戰派) 두 개 그룹으로 나뉘었다. 이때 유비가 제갈량을 오나라에 파견하여 협력 할 것을 제안한다. 결국 유비와 손권이 손을 잡기로 합의를 보고 공동대응에 나섰고 적벽에서 조조와 싸운다.

사서삼국지에서는 적벽에서의 전투를 삼국시대 3대 전쟁 중 하나였고 그 규모가 가장 컸다고 기록했지만 편폭은 서너 줄 넘지 않을 분량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나관중의 소설삼국연의는 적벽대전을 18회 분량으로 다루고 이 전투에서 유·손 그룹이 성공한 일등 공신을 제갈량에게 돌리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사실이 아니다. 제갈량의 공로는 유비의 사신으로서 오나라와의 협력을 이끌어낸 것뿐이다. 그렇다면 적벽대전에서 유·손 그룹이 승리하는데 기여한 일등공신 자는 누구일까? 바로 손권의 용장 황개이다. 황개는 동남풍이 부는 바람을 이용하여 조조 진영의 배에 불을 붙여 화재를 일으키게 하는데 이것을 화공(火攻)이라 하는데 결국 이 황개의 화공에 의해 조조는 급격히 무너지고 만다. 조조가 패한 또 하나의 이유는 조조의 진영에 역병이 크게 창궐하여 조조는 싸울 의지를 잃고 퇴각하고 만 것이 패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역사가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한편 황개는 말이 적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무장이었고 말하면 말한 대로 행동에 옮기는 사나이였다.

황개는 까다로운 산월을 평정하는 군공을 세워 현을 지키는 장관이 되었다. 무장이라 문서에 어두웠다. 그래서 두 명의 선비를 두어 관리하게 했다. 황개가 문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두 선비는 비리를 저지른다. 물론 황개는 사전에 주의를 주었다. 만약 법을 어기는 일이 생기면 용서 안 할 테니 알아서 청렴하게 할 것을 미리 언질을 주었다. 하지만 두 선비는 세월이 흘러 점점 잇속을 챙기는 일이 벌어지자 황개는 두 선비를 사형에 처한다.

황개는 속전속결로 모든 일을 처리하여 손권한테 믿음을 얻었고 오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사모했다.

   

장 흠(蔣 欽)

 강남의 도적들을 토벌한 청빈한 덕장(德將) 장 흠(蔣 欽)

 삼국시대 각 나라 주적은 외적과 내적 두 가지로 나눈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모두 적용된 상황이긴 하지만 그 시대 외적보다 내적의 위협이 강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나라 말기에 정부에 불만을 품고 일어난 황건적 난에 의해 천하는 대혼란에 빠졌고 중앙정부는 통치력을 잃어 지방할거 양상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 틈을 타 어떤 민족 어떤 집단은 모두 자기네들이 세력을 키워 천하의 한 모퉁이의 주인이 되려는 경향이 있었다.

오나라 내부의 주적은 여러 군의 반란과 그 가운데서 산월족이 가장 위협적이었다. 손견 때부터 오는 여러 군을 평정하고 부지런히 산월족과 싸워왔다. 장흠도 마찬가지로 손책과 함께 3군을 평정하고 그 3현의 장을 지낸다. 그 뒤 회계와 동야의 도적 여합(呂合)과 진랑(陳狼) 등이 난을 일으키자 장흠이 병사를 이끌고 마침내 그 두 우두머리를 붙잡고 5현을 평정하였다.

어느 날 손권이 장흠의 집을 방문했다. 장흠의 어머니는 성긴 휘장과 옅은 청색 이불을 쓰고 있고 처와 첩들은 무명 치마를 입고 있었다. 손권은 그가 높은 자리에 있지만 절약하는 것에 찬탄하여 곧장 어부(御府)에 명하여 그 어머니에게 비단 이불을 만들어주고 휘장을 바꿔주라고 했으며 처와 첩들의 옷도 모두 비단으로 만들어주게 했다.

장흠은 또 남을 배려하고 포용할 줄 아는 장수였다. 장흠이 선성에 주둔했을 때 예장의 적을 토벌했다. 무호현의 영 서성이 장흠이 주둔하고 있는 곳의 관리를 체포하여 표를 올려 그 목을 베려고 했다. 손권은 장흠이 먼 곳에 있으므로 허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서성은 이 일 때문에 장흠에게 의심을 받는다고 여겼다. 조조가 유수로 진군하자 장흠은 여몽과 군대의 총 지휘관이 되었다. 서성은 늘 장흠이 그 일 때문에 자신을 해칠까 봐 두려워했다. 그러나 장흠은 매번 그가 잘한 점만 칭찬했다. 서성은 장흠의 덕에 감복했고 논의하는 자들도 칭찬했다.

   

주 태(周 泰)

 열두 군데 상처를 입고도 끝내 손권을 지킨 주 태(周 泰)

 주태는 장흠과 함께 손책의 부하였다. 손권이 주태를 욕심 나 손책에게 자기한테 달라고 청하여 주태는 손권을 따랐다.

손권이 선성에 주둔하고 있을 때 방어용 울타리를 미처 만들지 못했을 때 산월의 도적 1천 명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손권이 막 말에 올라탔을 때는 적의 예리한 칼날이 그 주위에서 부딪히고 있고 그 중 어떤 것은 그의 말안장을 뚫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당황했으나 주태만이 돌진하여 몸을 던져 손권을 보호했는데 담력과 기세가 보통 사람의 배는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주태 때문에 함께 나아가 싸울 수 있었다. 적이 흩어진 뒤 주태의 몸에는 열두 곳이나 상처가 나 있었으며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았다. 그날 주태가 없었다면 손권은 매우 위태로웠을 것이다. 손책은 그에게 깊이 고마워하며 춘곡현의 장으로 임명했다.

주태는 황조를 토벌하는데도 공을 세우는 등 날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주연과 서성 등은 주태의 수하이지만 복종하지 않았다. 손권은 눈치 채고 있었으나 그들을 직접 꾸짖지 않고 기회를 보고 주태가 있는 곳을 순시했다. 그는 장수들을 모아 연회를 열어 즐기도록 했다. 손권은 주태 앞에 나타나 술을 권하며 그에게 옷을 벗도록 명했다. 손권은 손으로 주태의 흉터를 가리키며 그것이 생긴 까닭을 물었다. 주태는 지난 싸움의 경력을 기억하여 대답했다. 손권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 다음날 손권은 사자를 보내 주태에게 군주가 쓰는 덮개를 주었다. 이때서야 서성 등은 비로소 복종했다.

   

동 습(董 襲)

 황조를 토벌한 일등 공신 동 습(董 襲)

 손책이 죽자 손권이 어린 나이에 막 정치를 통솔하게 되었다. 태비는 그를 걱정하여 장소와 동습 등을 불러 강동이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동습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강동의 지세는 산천이 견고하고 토역장군의 은덕이 백성에게 미치고 있습니다. 토로장군이 기업을 이어받고 크고 작은 관원들이 명을 받들고 있습니다. 장소가 여러 가지 일을 관장하고 저희도 손톱과 이빨 같은 장수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지세가 유리하고 사람들이 화합하고 있는 때이니 만에 하나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말이 장대하다고 생각했다.

황조는 손견을 죽였으므로 손씨 가문과 철전지 원수였다. 손권은 황조를 죽이지 않고는 편할 수가 없었다. 건안 13(208) 손권이 황조를 토벌했다. 황조는 몽충 두 척을 종려나무의 커다란 새끼줄로 돌을 묶어 배가 움직이지 않게 했다. 배 위엔 병사 1천 명이 있었고 화살을 한꺼번에 발사하여 나는 화살이 비오는 듯 했으므로 군대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때 동습과 능통이 함께 선봉대가 되어 각자 죽기를 각오한 병사 1백 명을 이끌었는데 사람들은 두 겹의 갑옷을 입고 커다란 배를 타고 몽충 속으로 돌진했다. 동습이 직접 칼로 두 가닥의 새끼줄을 끊어 몽충이 표류하도록 했으므로 대군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황조는 곧 성문을 열고 달아났지만 병사들이 뒤쫓아 가 목을 베었다. 다음날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손권은 술잔을 들어 동습에게 권하며 말했다.

오늘 연회는 새끼줄을 끊은 공로를 축하하는 자리오.”

조조가 유수로 쳐들어오자 동습은 손권을 수행하여 달려갔다. 손권은 동습에게 누선 다섯 척을 이끌고 유수구로 가도록 했다. 밤에 갑자기 폭풍이 몰려와 누선 다섯 척이 뒤집혀 수하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동습엑 탈출하기를 권했다. 동습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장군의 임무를 받아 이곳에서 적을 막고 있는데 어떻게 버리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감히 또 이런 말을 하는 자는 목을 베어버리겠다.”

이에 더는 감히 권하는 자가 없었다. 그날 밤 배가 부서지고 동습은 죽었다.

   

반 장(潘 璋)

  관우를 사로잡고 유비를 쳐부순 호걸 반 장(潘 璋)

 우는 아이도 그치게 만든다는 위나라 장수 장료는 오나라에게 큰 골칫거리였다. 합비 싸움에서 장료가 급습했을 때 장수들은 무방비 상태였다. 그때 후방에 있던 반장이 급히 달려가 말을 가로지르며 적군에 돌진하자 병사들이 고무되어 죽기내기로 싸웠다.

손권이 관우를 정벌할 때 반장은 길목을 막고 관우와 그의 아들 관평을 붙잡았다.

반장은 유비가 일으킨 이릉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손권은 그를 평북장군 및 양 태수로 제수했다.

전공이 많은 반장은 생활이 문란했다. 그는 젊어서부터 성정이 호탕하고 술을 좋아했으나 집이 가난하므로 외상술을 즐겼다. 빚쟁이가 대문까지 쫓아오면 언제나 나중에 자기가 부유해지면 다시 오라고 말했다. 한편 그의 사치스러운 경향은 만년에 더욱 심해져 옷이나 물건은 그 신분을 넘는 것을 사용했다. 관리들 가운데 부유한 자가 있으면 그를 죽이고 재물을 빼앗은 적도 있고 법령을 받들지 않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감시하는 자가 이 일을 들어 상주했지만 손권은 그의 공을 아껴 늘 용서하고 죄를 묻지 않았다.

김 정 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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