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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재해석(35)
35. 손권 수하의 경전과 문장에 밝은 유생들
[459호] 2022년 03월 16일 (수)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한나라는 한 무제 때 유교를 국교로 하자 후한 말기에 태학이 성황을 맞아 유생이 2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외척, 환관, 선비집단 등 삼대 권력 중심에 있던 유생들은 한나라가 유명무실해지고 삼국정립의 시대를 맞아 천하에 뿔뿔이 흩어져 서로 각자가 자기 구미에 맞는 주군을 섬겼다. 당시 위··오 삼국 중에 조조 진영에 유생들이 가장 많았고 다음 손권의 진영이었고 유비 진영에는 제갈량 제외하고는 세상에 명함을 내놓을 만한 이름 있는 유생들이 별로 없었다.

본 장에서는 손권 수하의 유명 유생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장굉(張紘)

 전쟁을 피하는 행정의 달인 장굉(張紘)

 장굉은 태학에 입학하여 유명한 스승들의 문하에서 서경』『역경』『시경』『예기』『좌씨춘추를 배웠다.

대장군 하진(何進), 태위 주준(朱儁) 사공 순상(荀爽)의 세 부에서 연참으로 임명되어 초빙되었지만 모두 질병을 이유로 나아가지 않았다. 손책이 창업하자 장굉은 손책에게 의탁했다.

장굉은 장소와 더불어 손책의 핵심 참모였다. 손책은 늘 두 사람 중 한 명을 남겨 지키게 하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정벌을 따라 가도록 했다. 뒤에 여포가 서주를 습격하여 취하고 그대로 자기가 서주목이 되고 장굉이 손책 때문에 일을 따르지 않으려고 하자 그를 무재로 천거하여 공문서를 보내 장굉을 부르게 했다. 장굉은 마음속으로 여포를 싫어하여 그의 수하에 있게 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손책도 장굉을 높이 평가하여 아까워하며 자기 보좌역으로 두고자 했다. 그래서 답장을 하여 장굉을 보내지 않으려는 뜻을 적었는데 바다에서 난 아름다운 진주는 어느 곳에 있든 진중하게 여겨지는 법이오. 초가 비록 재능 있는 인재를 낳았지만 진나라가 그 인물을 임용했소. 비범한 군주는 돌아다니며 진주를 찾지만 하필 고향 주란 말이오?”라고 했다.

손책은 장굉을 허창궁으로 가서 표를 바치도록 했는데 그곳에서 머물며 시어사가 되었다. 소부 공융 등 명사들이 모두 그와 가까이 지냈다. 조조는 손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상사를 틈타 오를 토벌하려고 했다. 장굉은 간언하며 다른 사람의 상사를 틈타 공격하는 것은 고대의 도의가 아니며 만일 공격했다가 이기지 못하면 원수가 되고 우호 관계가 깨지게 될 테니 이 기회에 차라리 두터운 예를 펴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조조는 그 말을 받아들여 곧장 표를 올려서 손권을 토로장군으로 삼고 회계 태수를 겸하도록 했다. 조조는 장굉에게 손권을 귀순하도로 설득시키려 생각하고 장굉을 회계 동부도위로 삼아 지방으로 내보냈다.

손권이 합비 정벌에 가볍게 무장한 기병을 이끌고 가서 적을 무찌르려고 하자 장굉은 이렇게 간언했다.

병기는 상서롭지 못한 기구이고 전쟁은 위험한 일입니다. 오늘 당신이 왕성하고 웅장한 기백에 의지하여 강대하고 포악한 적을 홀시한다면 삼군의 군사들 가운데 마음이 섬뜩하지 않은 자가 없을 것입니다. 비록 적국 장수의 목을 베고 깃발을 빼앗아 취하고 적군의 전쟁터에서 위세를 떨친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오로지 편장군의 임무이지 주장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닙니다. 맹분과 하융의 용기를 억누르고 패왕으로서의 계획을 맘속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손권은 장굉의 간언을 받아들여 행동을 멈췄다.

손권은 성향이 싸우기를 좋아하여 이듬해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준비하자 장굉이 또 간언했다.

옛날부터 제왕은 천명을 받은 군주로서 비록 신령이 위에서 보좌하고 문덕이 아래에서 발양할지라도 또한 무공에 의지하여 그들의 공훈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귀한 것은 시기를 잡아 행동을 한 뒤 위세를 세우는 것뿐입니다. 이제 명공은 한 왕조 4백년의 액운을 만나 위급함을 도운 공로가 있으니 조용히 군대를 쉬게 하면서 널리 땅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현명한 자를 임용하고 재능 있는 자를 등용하여 관용과 은혜를 받드는 데 힘쓰며 천명에 순응하여 처벌을 실행해야만 수고롭지 않고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습니다.”

손권은 이번에도 장굉의 건의를 받아들여 출병을 멈추었다.

장굉의 다음과 같은 말은 예전의 제왕이나 오늘의 민주주의 국가 대통령들도 새겨들을 만한 전언이다.

예부터 나라가 있고 집이 있는 자는 모두 덕망 있는 정치를 실행하여 융성한 세상에 이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다스린 것에 이르면 대부분 이상적인 결과를 얻지 못했다. 결코 충성스러운 신하나 현명한 보좌가 없어서가 아니며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을 깨닫지 못해서도 아니다. 군주가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한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어려운 것은 꺼리고 쉬운 쪽으로 향하며 서로 같은 의견은 좋아하지만 상반된 의견은 싫어하는 데 이것은 정사를 다스리는 법칙과는 반대이다. 경전에서 좋은 것을 따르는 것은 산에 오르는 것과 같고 나쁜 것을 따르는 것은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이는 좋은 일을 하기가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엄준(嚴畯)

 노숙의 후임을 사양한 정통 경학자 엄준(嚴畯)

 엄준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깊이 몰입하여서경』『역경』『시경』『예기에 정토했으며설문해자도 좋아했다.

엄준도 북방 출신인데 북방이 하도 난세여서 여느 선비들처럼 난을 피해 강동으로 갔다. 그곳에서 제갈근, 보즐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고 우정을 나눴다.

엄준은 성격이 소박하고 솔직하고 순후하여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완미한 도의로서 성실하게 충고해 그들이 도움을 받아 진보하도록 하는데 뜻이 있었다.

장소가 엄준을 손권에게 추천하자 손권은 그를 기도위 및 종사중랑으로 삼았다. 노숙이 죽자 손권은 엄준에게 노숙을 대행하여 병사 1만 명을 지휘해 육구에 주둔하게 했다. 사람들은 모두 엄준이 임명된 것을 기뻐했지만 그는 몇 번이나 간곡하게 사양했다.

저희 본분은 책 읽는 것으로서 군사에는 익숙하지 못합니다. 재능이 없으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면 허물과 후회가 반드시 이를 것입니다.”

엄준의 말은 강개하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손권은 마침내 그의 뜻을 받아들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엄준의 겸양을 칭찬했다.

손권이 오왕이 되고 황제로 일컬어졌을 무렵 엄준은 일찍이 위위가 되어 사자로 촉나라에 갔다. 촉의 재상 제갈량은 그를 매우 좋아하고 아꼈다.

엄준은 청렴한 선비로서 봉록과 상을 쌓아두지 않고 모두 친척이나 친구 및 인연이 있는 이들에게 나누어주어 언제나 살림이 넉넉하지 못했다.

광릉의 유영(劉潁)은 엄준과 교분이 있었다. 유영은 한가롭게 집에 머물면서 학문에 정진했다. 손권이 그에 대한 평판을 듣고 초빙했지만 질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 동생 유락이 영릉 태수로 있다가 죽자 유영이 장례식장에 달려갔다. 손권은 이 일로 그가 꾀병을 부렸음을 알게 되어 황급히 체포하여 심문하도록 명했다. 엄준도 융영에게 급히 달려가 손권에게 사죄하라고 설득했다. 손권은 노여워하며 엄준을 면직시켰지만 유영은 죄를 사면 받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엄준은 상서령이 되었고 얼마 후 죽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일흔 여덟 살이었다. 유생 선비들은 무관들과 달리 보통 수명이 매우 긴 편이다.

엄준은 문필이 뛰어나효경전』『조수론(潮水論)을 지었다. 태자 손등은 그의 문필이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칭찬했다.

   

정병(程秉)

 3만여 자의 저술을 남긴 유학자 정병(程秉)

 정병은 명사로 이름을 떨쳤다. 손권은 그가 저명한 유학자라는 말을 듣고 예의를 다 하여 초빙했다.

정병은 손권에게로 가서 태자태부로 임명되었다.

손권이 태자 손등을 위해 주유의 딸을 맞이하게 되었다. 손권이 몸소 정병의 배에까지 방문하여 후한 예우를 받고 있음이 알려졌다. 돌아온 뒤에 정병은 조용히 손등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혼인은 인륜의 시작이며 왕의 교화의 기초입니다. 이 때문에 영명한 군왕은 이것을 중시했고 사람들에게 솔선하여 보여주고 천하를 교화시켰습니다. 그래서시경관저 편을 찬미하여 첫머리에 일컬은 것입니다. 원컨대 태자께서는 집안에서 예교를 존중하고시경의 주남(周南)에서 노래한 바를 마음속에 간직하십시오. 그러면 도의와 교화는 위에서 흥성하고 칭송하는 소리가 아래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손등은 웃으며 말했다.

훌륭한 점을 도와 발양시키고 결점을 제지하여 바로 잡는 것은 진실로 태부 그대에게 의지하는 바이오.”

정병은 질병으로 현직에서 죽었다. 그는주역적(周易摘』『상서박(尙書駁)』『논어필(論語弼)등 총 3만여 자를 지었다.

   

감택(闞澤)

  남에게 경전을 필사해주면서 외워 큰 학자가 된 감택(闞澤)

  요즘은 복사기가 발달해 필사가 사라졌지만 2천 년 전에는 전부 손으로 베껴서 전하곤 했다.

감택은 집안 대대로 농민이었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지만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해 학비가 없으므로 늘 다른 사람을 위해 필경(筆耕)을 하여 종이와 붓의 비용을 제공받았는데 베끼는 일을 마치고 나서는 또 그 전체를 외웠다.

감택은 유학뿐만 아니라 역법과 천문에도 통달하여 명성이 드러났다. 그는 효렴으로 천거되어 전당현의 장으로 임명되었다. 손권이 표기장군이 되었을 때 감택을 초빙하여 서조연을 돕게 했다. 뒤에 감택은 태자태부로 제수되었으며 중서령을 겸하기까지 했다.

감택은 성정이 겸허하고 공경스러우며 독실하고 신중했으므로 궁부의 낮은 관리들을 불러 응대할 때도 모두 예의를 갖추어 대했다. 다른 사람이 그릇되거나 결점이 있을 때도 일찍이 입으로 직접 말한 적이 없었다.

삼국지저자 진수는 감택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의 용모는 부족한 듯하지만 견문에서는 막히는 것이 적었다.” 감택의 용모는 공융이나 최렴처럼 멋진 사나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늘 사악한 자가 있기 마련이다. 여일이라는 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에 여일의 사악한 죄가 발각되었을 때 담당 관리들이 그 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사형에 처하라고 상주했다. 어떤 이는 당연히 화형을 시키고 찢어죽이는 형벌을 더하여 사악한 자들에게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권은 이 일을 감택에게 자문했다. 감택은 이렇게 말했다.

번성하고 강명한 시대에 다시 이런 형벌을 있게 하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손권은 그의 의견을 따랐다.

   

설종(薛綜)

 뛰어난 문장으로 명성을 떨친 설종(薛綜)

 설종은 그 누구보다 민첩하여 임기응변의 능력이 뛰어났다.

서촉(西蜀)의 사자 장봉(張奉)이 손권 앞에서 상서 감택의 성명을 들어가며 조롱했지만 감택은 응답할 수가 없었다. 설종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자에게 술을 주며 권하는 기회를 틈타 말했다.

이란 글자는 무엇입니까? 자가 있으면 이 되고 자가 없으면 이 되며, ()이 옆으로 있고 몸을 구차하게 []하니 벌레가 뱃속에 있군요.”

장봉이 말했다.

당신네 나라 글자도 분석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설종은 이 소리에 응하여 말했다.

()이 없으면 하늘이 되고 입이 있으면 가 됩니다. 군주가 만방에 군림하며 천자의 수도가 됩니다.”

그러자 좌중에 있던 자들은 기뻐서 웃고 장봉은 응대하지 못했다.

  삼국지저자 진수는 손권의 수하 유생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장굉은 문리가 통하고 생각이 바르며 이 시대의 영재이다. 손책이 장소에 버금가게 그를 대우한 데는 진실로 이유가 있었다. 엄준과 정병 그리고 감택은 한 시대의 유림이었다. 엄준이 자신의 영달을 버리고 옛 친구를 구한 것은 뛰어나지 않는가! 설종의 학문과 지식은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으로 일컬어졌고 오나라의 훌륭한 신하가 되었다.

김 정 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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