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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삼국지’ 왜곡 ABC (2)
[458호] 2022년 03월 01일 (화) 동포타운신문 dongpotown@daum.net

삼국지 이후의 역사?’란 말의 어폐

  한국에서 삼국지관련 작가들과 유튜브 강의자들이 삼국지 이후 역사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데 이 말에는 상당한 어폐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삼국지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삼국지 이후의 역사라는 이 말은 삼국역사 이후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신라역사 이후의 역사라 하거나 조선역사 이후의 역사라고 말하지 않고 신라시대 이후의 역사’, ‘조선시대 이후의 역사라고 하는 것처럼 마땅히 삼국시대 이후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데도 삼국 관련 한국작가와 강의자들이 삼국지가 역사가 아닌 하나의 시대로 착각하고 삼국지 이후 역사라고 말하고 있는듯하다.

이런 오류적인 표현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마땅하거늘 한국에서 누구 하나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장각은 과거시험 낙방자?

  한국작가들의 삼국지여러 버전들에서 장각을 과거시험에서 낙방한 선비라고 쓰고 있는데 이것은 치명적인 오류이다. 왜냐? 중국에서 과거제가 등장한 것은 수나라 수 문제 때였다. 장각이 살았던 시대에 비해 400년 뒤의 일이다.

한국작가들의 이 오류를 필자가 00출판사에 제기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렇다. “저희가 참고했던 다양한 서적 중에서 장각을 이렇게 표현한 삼국지연의가 있었습니다. 말씀대로 과거 제도는 나중에 생겼지만, 아마 후대에 나관중이 이야기를 만들면서 혼란이 있었던 것 같네요.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구요.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수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관중이 이야기를 만들면서 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관중은 결코 장각을 과거시험에서 낙방한 선비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요즘 유튜브 강의로 인기 높은 00역사학자께서 장각 시대에 과거시험에 없었는데 왜 나관중이 이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무튼 나관중이 혼선을 빚은 것은 사실이니 도대체 나관중의 혼란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 부분의 한문 원전은 장각본시개부제수재(張角本是箇不弟秀才)’이다. 여기서 부제수재란 말에서 수재가 잘못된 표현이다. 마땅히 부제무재(不第茂才)’로 되어야 한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한나라 관리 선발 제도를 알아야 한다.

주나라 말기까지 귀족관리제가 지속되었고 진나라에 이르러 관리임명제가 실시되었다. 한나라에 으르러 이 제도는 찰거(察擧)와 천거(薦擧)에 의해 시행되었다. 추천된 사람은 황제의 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과목으로는 효렴(孝廉)현량(賢良)방정(方正)직언(直言)문학(文学)계리(計吏 = 上計吏, 計掾, 上計掾), 수재(秀才) 등이 있었다. 후한에서도 그대로 시행되었으나, 수재라는 명칭은 광무제 유수(劉秀)의 이름을 피휘(避諱)하여 무재(茂才)가 된다. 후한 말기 거효렴(擧孝廉)과 거무재(擧茂才) 두 가지 관리 선발 방식이 많이 유행되었고 효렴(孝子廉士의 줄임말)은 자사(刺史), 무재는 태수가 추천할 수 있었다. 진수의삼국지(三國誌)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효렴으로 낭()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나관중의 실수(혼란)는 장각이 후한 말기 사람이기 때문에 마땅히 무재라고 해야 하는데 수재라고 한 것이다. 중국사학계에서는 이 부분과 관련하여 나관중의 역사인식 제약성을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한문 원전 張角本是箇不弟秀才를 어떻게 한국어로 옮겨야 마땅하냐는 것이다. 정종현의 직역삼국지에서 역자는 장각은 본래 관리후보로 추천도 받지 못했다.’고 옮겼다. 거의 근사한 번역이라 평가하고 싶은데 문제는 장각이 추천조차 받지 못했는지? 아니면 추천 받았지만 시험에서 낙방했는지? 명확한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가장 정확한 번역은 장각은 관리 시험에서 낙방한 선비라고 하는 것이다.

 

 

 

사마 씨 가문이 세운 진을 진시황의 진과 구분하기 위해 서진이라 했다고?

최근 삼국지강의로 가장 인기가 높은 00 선생의 삼국지소설 말미에 이런 문구가 있다. “사마 씨 가문이 세운 진을 진시황의 진과 구분하기 위해 서진이라 했답니다.”

필자는 이 문구를 접하자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진시황의 진은 한문으로 (qin)’이고 사마 씨 가문이 세운 진은 한문으로 (jin)’이다. 한문 발음이 완전히 다르다. 한문에 어두운 저자가 우리말로 모두 이니 혼란이 왔다고 한 발 물러서 이해하려고 했지만 다음 것은 도저히 양보 못할 상식의 문제가 걸려 있다.

중국에는 한 개 왕조가 두 개로 쪼개진 왕조가 모두 셋이 있다. 서한과 동한(전한과 후한), 서진(西晉)과 동진(東晋), 북송(北宋)과 남송(南宋)이다. 무엇에 근거하여 이런 분류법이 생겨났을까?

황실 내분과 외부세력의 침략에 의해 수도를 옮기게 되었는데 전한의 수도는 장안이고 후한의 수도가 낙양인데 장안은 낙양의 서쪽에 위치해 있고 낙양은 장안의 동쪽에 위치해 있어 지리적인 위치에 의해 이런 분류법이 생겨났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나라의 전 단계의 수도는 낙양이고 후단계의 수도는 남경이었는데 낙양은 남경의 서쪽, 남경은 낙양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서진과 동진으로 분류한 것이다. 역시 마찬가지로 송나라는 금나라에 밀려 본래 수도가 개봉(開封)이었다가 쫓기는 바람에 남쪽에 있는 항주로 이사 갔기 때문에 북송과 남송으로 나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와 같이 수도의 위치에 따라 나눈 것은 후세 학자들이 전 단계와 후 단계를 구분 짓기 위해 창안해낸 것이지 결코 국호가 아니다. 그 당시에 진()을 세우자마자 결코 서진이란 국호를 사용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00강사가 말한 대로 사마 씨 가문이 세운 진이 진시황의 진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서진이라 했다면 서진이 국호가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의 오류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중국역사에 대한 기본상식의 결핍 문제이다. 이런 상식조차 어두운 강사가 어떻게 그 어려운 중국고전에 손을 댔는지? 아이러니한 것은 이 분의 삼국지책이 베스트셀러이고 강의 조회수도 대한민국에서 최고라는 것이다.

삼국지에 열광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지금 삼국지왜곡에 속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김 정 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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