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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삼국지’ 왜곡 ABC (1)
[457호] 2022년 02월 16일 (수)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중국 후한 말(AD190)부터 AD280년 위나라가 망할 때까지 삼국시대 혼란했던 난세에 여기저기서 경쟁하듯 나타난 영웅호걸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재미있는 스토리에 맞춰 각색해낸 나관중의 소설삼국지 통속연의는 본산지인 중국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고전 소설 중 가장 많이 읽힌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 말도 섞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중일 3국에서 가장 삼국지에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최고 인기인 고전 소설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 오류가 있었고, 또 한국 작가들이 자신들의 버전으로 지어냄에 있어서 이런 오류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국역사상식을 왜곡하여 독자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하고 있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한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한국역자들과 자기 버전으로 짓는 작가들은 이런 오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역사상식에 대한 지식의 결핍으로 왜곡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럼 한국사학계는 왜 번역의 오류와 상식왜곡을 바로 잡지 못하고 있는지? 필자로서는 그저 의아할 뿐이다.

한국에는 현재까지 떠돌고 있는 삼국지가 수십 종의 판본 버전이 있고 최근 유튜브 강의까지 합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삼국지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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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사서이지 소설이 아니다

 

 20197삼국지를 새로 출간한 저자의 TV ‘삼국지강의가 조회수 800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연말 전에 1천만 조회수를 넘길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 저자가 9개월 전에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서 삼국지강의를 했는데 첫 스타트를 이렇게 열었다.

삼국지는 소설일까요, 역사일까요?”라고 묻고는 먼저 삼국지가 소설이란 사람 손들어 보라하고 또 삼국지가 역사라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고는 답을 말했다.

둘 다 맞습니다.”

뜻인즉 삼국지는 소설이기도 하고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건 상식을 왜곡하는 정말 한심하게 웃기는 일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중국역사상식을 알고 있는 중국인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코웃음치고 자리를 떴을 것이다.

세상에 무슨 이렇게 무식한 강의가 다 있냐?”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이 강의자의 말에 무슨 오류가 있을까?

중국에는 각 성(各省), 각 주(各州), 각 현(各縣)마다 모두 그 지방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이 있는데 제목에 ()’를 붙인다. 이를테면 사천성의 역사를 기록한 책을사천지(四川誌)라고 한다. 어떤 성()에서는 ()’ 앞에 ()’자를 붙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귀주의 역사를 기록한 책 제목이귀주통지(貴州通誌)이다. ‘귀주지보다 귀주통지가 더 거창하고 더 세련되고 더 있어 보인다. 중국동포들의 집거지인 연변조선족자치주 역사를 기록한 책이 있는데 제목이연변조선족자치주지(延邊朝鮮族自治州誌)이다. 이렇게 중국에서 역사를 기록한 것을 ()’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더듬어보면 진수가 삼국역사를 기록한 책의 제목을삼국지(三國誌)라고 붙였다고 볼 수 있다. 이로서 알 수 있듯이 ()’는 역사이지 절대로 소설이 아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나관중의 소설을 삼국지라 부르는가?

나관중은 원말명초(元末明初) 사람이다. 나관중 이전에는 구어체 장편소설이 없었다. ()나라 때 흥행했던 시()가 당나라 때까지 여전히 문학의 주요 장르였고 송나라에 들어 ()’가 발달했는데 역사에서는 송사(宋詞)’라고 부른다. 원나라에 이르러 ()’이 흥행하였는데 원곡(元曲)’이라 했다.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는 명초에 이르러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강담(講談)의 이야기를 토대로 했다고 한다. 중국에는 천여 년 동안 장터에서 이야기하고 돈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에 종사한 이야기꾼들이 있었다. 이들 이야기 가운데 삼국시대 이야기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1천여 년 동안 전해오는 과정에 재미를 위해 없던 이야기도 허구로 지어내서 말했을 것이고 한심한 구라도 있었을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나관중이 이 장터에서 1천여 년 동안 전해온 삼국 관련 이야기를 근거로 소설을 지었다고 한다. 물론 진수의 사서인 <삼국지>도 주요 참고자료로 활용하였던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도원결의는 사서에 기록이 없고, ‘적벽대전은 사서에 있는 한두 줄의 기록을 근거로 8회의 분량으로 늘려 재미있고 멋지게 각색하는 등 수많은 스토리를 구성하여 독자들의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문제는 장터 이야기를 근거로 했다면 권위가 없고 사서를 기초로 지었다고 해야 권위가 서는 것이다. 더욱이 구어체 장편소설 선구자로서 당시에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소설 제목을삼국지 통속연의(三國誌通俗演義)라고 한 것은 사서 자료 풀러스 장터이야기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현대에 이르러 중국에서는 역사와 소설을 완벽하게 구분하기 위해, 다시 말하자면 진수의 사서와 나관중의 소설을 똑똑하게 구분하기 위해 소설 제목을삼국연의(三國演義)라고 부르고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삼국지(三國誌)는 사서이고삼국연의(三國演義)는 소설이기 때문에 한국작가들이 흔히 정사 삼국지’, ‘소설 삼국지라고 곧잘 말하는 것은 어폐가 상당하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진수는 정사 삼국지를 지은 적이 없다

 

 중국 사서를 우리말로 옮긴 역자들과 삼국 이야기를 다룬 한국작가들이 정사 삼국지라는 말을 밥 먹든 쉽게 하는데 이것은 정말 치명적인 오류이다.

진수의삼국지(三國誌)를 우리말로 옮긴 김00 씨는 옮긴이의 말부분과 정사 삼국지해제에서 책 제목을정사 삼국지라고 했다. 마치 진수가 책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으로 독자들이 착각할 수 있다.

미안한 말이 되겠지만 진수는 정사 삼국지를 지은 적이 없다. 그냥 삼국시대 역사를 기록한 사서삼국지(三國誌)를 썼을 뿐이다.

물론 진수의삼국지(三國誌)가 중국사학계에서 정사로 취급한 <24(二十四史)>에 속해 있다. 그런데 중국사학계에서 수많은 사서를 정사와 야사로 분류한 것은 1950년대의 일이다. 그러나 정사에 분류된 사서일지라도 학계에서 또 언론에서 그 누구도 정사 삼국지’ ‘정사 후한서이런 식으로 부르지 않는다.

무엇이 정사이고 무엇이 야사인가? 흔히 왕조중심의 역사를 기록한 것을 정사라 하고 비왕조 중심의 역사가 기록된 것을 야사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분류방식은 그냥 하나의 방편적인 방식일 뿐 완벽한 분류법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김부식의삼국사기를 정사, 김일연의삼국유사를 야사로 취급한다. 그런데삼국사기에는 단군신화가 없는데 비해삼국유사에 단군기록이 있다. 현재 한국기년을삼국유사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해마다 개천절 기념행사 때삼국유사를 말하지삼국사기를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이로서 알 수 있듯이 정사와 야사의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김부식과 김일연은 모두 당시 역사를 기록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지은 것이지 굳이 내가 정사를 쓰겠다거나 야사를 짓겠다고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진수도 마찬가지이다. 정사를 쓰겠다고 쓴 것이 아니고 더욱이 책제목을 정사 삼국지라고 붙인 적도 없다.

삼국 관련 한국역자들과 작가들은 소설에 대비되는 말을 정사라고 가볍게 사용해서 말하는데 소설에 대비되는 말은 사서(史書)’이지 정사(正史)’가 아니다. ‘사서라는 말이 있는데도 굳이 정사라고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마치 이들은 정사앓이를 앓고 있는 환자들 같다. ‘정사라고 말하면 더 권위 있어 보이고 더 있어 보이려고 그러는 것인지? 아무튼!

   세상에 수호지가 있다?

  필자는 한국에 와서 한국지성인들과 접하면서 중국 고전에 대한 교류가 많았다. 처음에 한국인 00수호지가 어쩌고저쩌고 말하는데 대해 어리둥절한 태도를 보였더니 역사 글을 많이 쓰는 양반이 수호지도 모르느냐?’는 표정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나고 자라고 공부하고 대학문을 나왔지만 줄곧 수호지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다. 더욱이 중학교부터 조선학교 아닌 중국학교에 다닌 필자로서 또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 글도 많이 써낸 사람인데 중국에 수호지가 있다면 절대 모를 리가 없었다. 상대께서 중국 4대 고전명작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나와서야 , 수호전을 말하는구나.’고 그제 서야 알아차렸다.

결론을 말하자면 중국에는 <수호전>이라는 고전 소설은 있어도 수호지라는 책은 없다. 이상한 일이다. <수호전>을 왜 함부로 수호지라 부르는지? 이는 분명히 중국고전에 대한 왜곡행위이다. 후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는 <삼국연의>삼국지라 왜곡하는 것처럼 <수호전>수호지로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듭 말하지만 ()’는 역사이지 소설이 아니다. 특히 <수호전>은 북송 말기 송휘종의 부패정치에 반발하여 송강을 비롯한 호걸들이 농민봉기를 일으킨 사건을 근거로 순수 문학소설을 지어낸 것인데 한심하게 역사를 뜻하는 ()’를 붙여 수호지라고 하는 것은 기본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수호지란 말을 없애고 <수호전>으로 올바르게 바로 잡아야 한다.

   

이중텐은 삼국지 강의를 하지 않았다.

  한중일 삼국의 독자들이 알고 있는 조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문학적인 이미지일 뿐 역사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중국현대문학의 거장인 루쉰 선생이 조조는 대단한 사람이며 적어도 영웅이다. 내가 비록 조조와 한패는 아니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를 매우 존경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루쉰 선생의 이 한마디가 중국독자들의 조조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못했다. 조조가 부정적 인물이 아니고 진짜 영웅이었다고 누명을 확실하게 벗겨준 사람은 바로 이중텐 교수이다.

이중텐 교수는 2001년에 시작된 중국CCTV <백가강단> 프로그램에서 조조를 새롭게 조명하여 일약 최고 스타덤에 올랐다. 그의 강의 제목은 품삼국(品三國)’이었다. 중국독자들이 이중텐의 품삼국(品三國)’에 열광하자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초판인쇄만 55만부였다. 한국에서 이 책을 번역 출간할 즈음에는 이미 400만부 판매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책 제목을 삼국지 강의라고 달았다. 역자는 한문 品三國을 우리말로 삼국지 강의로 옮겼다는 것이다. ‘삼국지 강의라고 옮기면 한국인의 정서에는 맞을지 모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중국에서는 진수의삼국지를 강의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중텐은 무슨 강의를 했나? 그는 삼국시대에 벌어졌던 이야기들을 삼국 관련 사서들과 사서 주석들 및 소설삼국연의를 종합적으로 풀어서 말했을 뿐이다.

그럼品三國을 도대체 어떻게 옮겨야 정확한 번역이 되는 걸까?

삼국을 말하다혹은삼국 강의라고 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인은 삼국지표현에 물젖어 있어 마치 반창고처럼 아무데나 모두 삼국지를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정 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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