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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재해석(34)
손권을 보좌한 핵심 문신(文臣)들
[456호] 2022년 02월 01일 (화)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예로부터 왕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핵심 측근들이 있었다. 삼국시대 상황을 요즘 말로 하면 조핵관(曹核官), 유핵관(劉核官), 손핵관(孫核官)이 될 것이다. 삼국시대는 천하가 혼란한 전쟁시기여서 위··오의 핵관들은 주로 문신과 무신 두 부류로 나눈다. 앞장들에서 위와 촉 두 나라의 핵관들을 두 부류로 나눠 다뤘던 바와 같이 오나라도 문신과 무신으로 나눠 다루는 바이며 본 장에서는 손권의 핵심 문신들을 다루는 차례이다.

손권을 보좌한 핵심 문신 참모 중에 가장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장소이다. 장소가 하도 주요인물이어서 앞에서 단독으로 다뤘고 나머지 고옹(顧雍), 제갈근(諸葛瑾), 보즐(步騭)을 한 챕터에 묶어 정리한다.

   

 

 슬기로움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리에 오른 고옹

 

고옹은 오군 오현 사람이다. 장소는 중원에서 온 이주민 신분인데 비해 고옹은 오나라 토박이다. 학식이 뛰어난 채옹(蔡邕)이라는 사람이 오현에 피난 왔는데 고옹은 그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거문고를 익혔다. 고옹의 열정과 빠른 이해력을 높게 평가한 채옹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반드시 크게 성공할 테니 이제 내 이름()을 그대에게 주고자 한다.” ()과 옹()은 동음이며 서로 통한다. 그래서 고옹은 채옹과 이름이 같다.

머리 좋고 학식이 뛰어난 고옹은 약관의 나이에 합비현의 장으로 임명되었다가 뒤에 누현(婁縣), 곡아현(曲雅縣), 상우현(上虞縣)으로 전임되었는데 모든 곳에서 치적이 있었다.

손권은 싹수가 좋은 고옹을 여러모로 배려했다. 고옹은 여러 지방을 전전하다가 오현에 자리잡자 어머니를 맞이했다. 손권이 직접 찾아와 경하하고 마당에서 큰 절을 올려 인사했다. 그 자리에는 오나라 공경대신이 다 모였다. 그 뒤에는 태자가 별도로 또 찾아와 축하했다.

고옹은 사람됨이 술을 마시지 않고 말수가 적으며 행동거지가 매우 절도에 맞았다. 손권은 그에게 감탄하여 이렇게 말했다.

고군은 말수가 적지만 일단 말을 하면 꼭 핵심이 있다.”

오나라의 공경대신들은 고옹을 매우 어려워했다. 연회석에서 술을 마시며 즐길 때도 그의 주변 사람들은 실수하면 고옹이 반드시 보게 될까 봐 걱정되어 감히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너무 정직한 사람은 주변사름들을 괴롭게 한다. 고옹은 정말 재미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손권이 말했다.

고군이 자리에 있으면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신하로서 맡은 바 사업은 기가 막히게 잘한다. 고옹은 그래서 승승장구하여 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문무백관을 뽑아 임용할 때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원칙대로 임무를 맡겼을 뿐 사사로운 감점에 절대로 치우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백성 사이로 들어가 의견을 구하고 정치적 일에 마땅히 취해야 할 것이 있으면 비밀리에 보고했다. 만일 그 의견이 받아들여 쓰이면 공을 손권에게 돌리고 쓰이지 않으면 끝까지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 이런 신하를 좋아하지 않을 주군이 어디 있으랴! 주군으로서 이런 신하를 중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류역사에서 매 정부마다 모두 탐관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관료는 죄를 짓고 철창신세를 보게 된다. 사람들은 이런 죄인을 함부로 대하지만 고옹은 그러지 않고 지킬 것은 반드시 지켰다.

관청과 주와 군의 문서를 감독하는 중서(中書)에서 일하게 된 여일은 점점 위세를 부리고 술을 파는 이권과 세금징수 권한을 휘두르며 죄악을 적발하고 간사함을 규탄했으며 작은 잘못도 반드시 보고했다. 이 과정에 중대한 사안도 추악하게 했으며 대신들을 비방하고 무고한 자들을 참언했다. 고옹 등은 모두 그들에게 고발당하여 견책을 당했다. 나중에 여일의 죄상이 드러나 구속되었다. 심문을 맡은 고옹은 여전히 여일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상서랑 회서(懷敍)가 여일에게 면전에서 욕을 하자 고옹이 회서를 꾸짖어 말했다.

관부에는 정해진 법이 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함부로 하시오?”

서기 243년 고옹은 일흔여섯 살로 세상을 떠났다. 문신들은 무신들에 비해 대체로 수명이 긴 편이었다.

고옹은 현대 중국 총리 주은래와 비슷한 스타일 관료였던 것 같다.

 
   

 눈치로 주군을 섬긴 제갈근

 

 제갈근은 북방사람으로서 한나라 말 난리를 피해 강동으로 이주했다. 마침 손책이 죽고 손권의 매형 홍자(弘咨)가 제갈근을 만나보고 매우 기이한 인물로 여겨 손권에게 추천했다.

제갈근은 제갈량의 친형이다. 그러니까 동생 제갈량은 유비에게 귀의하였고 형 제갈근은 손권에게 의탁한 셈이다. 촉과 오는 떼로는 우호관계였다가 때로는 원수관계로 서로 싸우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영국 수상 처칠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친구가 없고 오직 항구적인 이익만 있을 뿐이다.”

제갈근과 제갈량 형제 관계를 요즘 한반도의 남북관계로 설정하면 너무 삭막하고 그래서 남측 내 민주당과 국힘당 관계쯤으로 설정하면 적합할 것 같다. 이 두 형제는 각 양당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검토할 사항이 하나 있다. 현실적으로 형제가 각각 양당 주요 요직에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답은 불가능이다.

삼국시대는 형이 이 나라에서, 동생은 저 나라에서 때로는 서로 싸워야하는 적국에서 요직을 맡고 있었으니 그 시대가 지금보다 얼마나 멋지고 역동적이었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동생이 승상으로 있는 촉나라에 손권은 제갈량의 형 제갈근을 사신으로 보낸다. 신망이 얼마나 두터웠으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진수의삼국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손권은 제갈근을 사자로 삼아 촉으로 보내 유비와 우호관계를 맺도록 했다. 그는 동생 제갈량과 함께 공적인 일로 서로 만날 뿐 공적인 일이 끝나면 사사로이 만나는 일이 없었다.”여몽과 육손이 관우를 토벌하는데 제갈근도 참여했다. 유비가 동쪽으로 오를 치려고 하자 오왕 손권이 화해를 요청했다. 그때 제갈근이 유비에게 편지를 보내 설득했다. 당시 어떤 사람이 제갈근이 따로 사람을 보내 유비와 내통했다고 손권에게 고자질했다. 이에 손권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자유(제갈근)와 생사를 바꾸지 않는 맹세를 했다. 자유가 나를 등지지 못하는 것은 내가 자유를 등지지 않는 것과 같다.”

손권은 제갈근을 무한신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군 태수 주치는 손권을 효렴으로 천거한 적이 있는 장수이다. 후에 주치가 손권의 눈에 났지만 손권은 옛일 때문에 그를 어쩔 수가 없었다. 눈치를 챈 제갈근이 나서 주치 심문을 맡고 손권의 속심에 맞게끔 편지를 써서 손권에게 보였다. 손권은 기뻐서 웃으며 말했다.

내 맘이 풀렸소. 안씨(顔氏, 안연, 공자의 제자)의 덕망은 사람을 더욱 친하게 하지만 어찌 그대에게 비하겠소?”

우번이 고지식하고 솔직하여 쫓겨났을 때 제갈근이 그를 위해 여러 차례 말을 했다. 우번은 감동을 먹고 제갈근에게 편지를 보냈다.

제갈자유는 돈후하고 인자하며 하늘의 법칙을 본받아 만물을 살리고 어리석은 자를 가까이 오게 하여 맑게 논의하여 명분을 지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나쁜 행동이 쌓여 죄가 무거워 원망하는 것이 많고도 깊으니 비록 기로(祁老, 진나라 대부)의 구원이 있을지라도 나에게 양설적(羊舌赤, 진나라 대부이자 현신) 같은 덕망이 없기에 사면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손권이 칭제한 후 제갈근은 대장군 좌도호(左都護)로 제수되었으며 예주목을 겸했다. 제갈근은 높은 벼슬을 했음에도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고 예순여덟 살에 죽었는데 기름칠을 하지 않은 관에 평상시 옷으로 염하고 모든 일은 검소한 원칙에 따르라고 유언했다.

 
   

 앉을 자리 설 자리 아는 보즐

 

 보즐도 북방 사람으로서 세상이 혼란스러우므로 난을 피해 강동으로 간 선비이다. 타향에서 입에 풀칠하기 위해 동갑내기인 광릉의 위정(衛旌)과 함께 오이를 심어 자급했다. 이 두 사람은 낮에는 육체노동에 힘쓰고 밤에는 경전을 외웠다.

회계의 초정강은 군의 호족인데 그 문객들도 무례했다. 보즐과 위정은 그의 세력범위 내에 있어 해칠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오이를 둘러메고 진상하러 갔다. 초정강이 마침 낮잠을 자고 있어서 오래 기다려야 했다. 위정은 짜증이 나 돌아가려고 하자 보즐이 그를 말리며 말했다.

본래 우리가 여기에 온 까닭은 그가 강성함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오. 그런데 지금 떠나가서 고상함을 나타내려고 한다면 원수만 맺게 될 뿐이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초정강이 창문을 열고 이들을 보았다. 그는 자신은 휘장 안의 책상에 기대앉으면서 바닥에 자리를 두도록 하여 보즐과 위정을 창문 밖에 앉게 했다. 위정은 더욱 치욕을 느꼈지만 보즐의 낯빛과 말투는 자연스러웠다. 초정강은 식사를 준비하게 했는데 자신은 커다란 상을 펴서 그 위에 산해진미가 가득하도록 하고 보즐과 위정에게는 작은 소반에 오직 푸성귀만 주었다. 위정은 먹을 수 없었지만 보즐은 남김없이 배불리 먹고 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나왔다. 위정은 보즐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어떻게 이것을 참을 수 있었소?”

보즐이 말했다.

우리는 가난하고 미천하오. 그러므로 주인은 가난하고 미천함으로 우리를 맞이했으니 진실로 마땅한 것이오. 무엇 때문에 부끄러워하시오?”

보즐과 우정은 둘 다 선비다. 그러나 둘 다 째지게 가난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는데 있어서 두 사람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를 보였다. 워정은 그 알량한 선비 자존심을 지키려 한 반면 보즐은 현실에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불평불만이 없이 일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워정과 보즐, 이 두 사람의 행위를 접하고 필자는 과거 고향마을의 한 지인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이 똑똑한 기준이 뭔지 알아? 앉을 자리 설 자리 아는 자가 똑똑한 사람이야.”

후에 위정은 크게 출세하지 못했고 보즐은 나중에 승상이라는 최고 자리에 오른다.

보즐은 인재등용에 있어서 앞뒤로 신분이 낮으나 지혜롭고 능력 있는 자를 추천하고 무고하게 환난 받은 자를 구하기 위해 손권에게 수십 번의 글을 올렸다. 손권은 보즐의 상소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보즐은 육손을 이어 승상이 되었으나 여전히 문하생들을 가르치며 책을 놓지 않았고 옷 입는 것이나 거처하는 것은 유생과 같이 했다. 그의 성품은 관대하고 넓어서 인심을 얻었으며 기뻐하거나 노여워하는 기색이 목소리나 얼굴빛에 나타나지 않으며 안팎으로 숙연했다. 그러나 그 집안 처첩들의 복식은 매우 사치스럽고 화려했으므로 이 때문에 자못 사람들에게 비방 받았다.

세상에 모든 것이 완벽한 인간은 없는가 보다.

김 정 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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