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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재해석(33)
문무겸비 한 오나라의 국보, 육손
[455호] 2022년 01월 16일 (일)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손권의 오나라에는 장소, 주유, 노숙, 여몽, 감녕, 제갈근, 장온 등 인재가 많았다. 조조도 손오를 가리켜 그곳에는 인재가 많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손오 진영에 많고 많은 인재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인물은 당연히 육손이다. 육손은 명문가문의 출신이며 고옹처럼 동오가 고향인 토박이이었으며 유일하게 문무를 겸비한 드문 인재였다.

손권이 손책의 뒤를 이을 때 육손은 21세였으니 손권보다 3살 위였다. 그런데 육손은 손권이 정권을 잡은 초기에는 두각을 내민 일 없이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골목대장으로 어중이떠중이들을 제거하는 일에 앞장서 손권의 눈에 들만큼의 역량이었다. 그러다가 관우를 제거하는 일에 앞장서 공로가 컸고 또 유비가 일으킨 이릉전쟁에서 총 지휘관을 맡아 승리로 이끌어 그때부터 육손은 동오에서 무시 못할 비중이 큰 인물로 부각되었다.

큰 인재가 되려면 우선 사람 됨됨이부터 갖춰야 한다. 손권은 육손의 사람 됨됨이에 탄복하고 중용하기 시작했다. 회계 태수 순우식이 손권에게 표를 올려 육손이 제멋대로 백성을 취하여 관할 지역을 소란스럽게 한다고 고했다. 그렇지만 육손은 뒤에 도성에 가서 손권에게 순우식을 훌륭한 관리라고 칭찬했다.

 손권이 의아해 말했다.

“순우식은 그대를 고발했는데 그대는 순우식을 추천하니 무슨 까닭인가?”

육손이 이렇게 대답했다.

“순우식의 뜻은 백성을 기르려는 것이므로 저를 고발했습니다. 만일 제가 다시 순우식을 비방한다면 성덕을 어지럽히게 됩니다. 이러한 기풍을 조장할 수는 없습니다.”

손권이 말했다.

 “이것은 정말 훌륭한 행위이오. 일반 사람들은 그리할 수 없는 것이오.”

육손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여몽이었으며 그 계기는 여몽이 질병을 이유로 수도 건업에 왔을 때 두 사람이 만나 나눈 대화였다.

육손이 물었다.

 “관우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멀리 내려왔습니까?”

여몽이 말했다.

 “진실로 당신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만 내 질병이 심합니다.”

육손이 말했다.

“관우는 자기 용기를 믿고 다른 사람을 능멸합니다. 처음으로 큰 공을 세워 마음이 교만해지고 의지는 안일해졌으며 오직 북진에만 힘쓰고 우리에게는 경계하는 마음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한다면 틀림없이 더욱 방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 나가면 그를 붙잡아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몽이 도성에 가서 손권을 만나 질병을 핑계로 하는 이 계책을 말했다.

그러자 손권이 물었다.

 “누가 그대를 대신할 수 있겠소?”

 여몽이 대답했다

. “육손은 사려 깊으며 재기가 중임을 맡을 만합니다. 그가 살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큰일을 맡길만합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먼 곳까지 이름이 나 있지 않고 관우가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지만 재능은 그를 뛰어넘을 자는 없습니다. 만일 그를 임용한다면 밖으로는 참된 의도를 숨기고 안으로는 유리한 형세를 살피도록 한 다음 관우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손권은 여몽의 의견을 받아들여 육손에게 여몽을 대신하도록 임명하였다.

육손은 육구에 으르러 관우에게 편지를 보냈다.

 “전에 나는 당신이 적군의 움직임을 살피고 나서 일정한 법칙에 따라 군대를 지휘해 가볍게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았는데 어지 그렇게 한결같이 위대하오! 적국이 진 것은 동맹국에 이로운 일이므로 당신이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손뼉을 쳤고 중원을 석권하는 대업을 이루어 함께 조정을 보좌하고 기강을 유지시키기를 바랐소. 나는 당신의 풍채를 우러르며 좋은 대우와 가르침을 받기를 바라고 있소.”

육손의 겸손한 태도가 듬뿍 담긴 편지를 받아 본 관우는 경계를 완전히 풀었고 이 때문에 관우는 여몽과 육손의 손에 죽고 만다.

222년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동오를 침략하기 위해 이릉에서 대전투를 책동하였다. 이때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삼고 총 지휘관으로 임명한다. 육손의 생애에서 이토록 큰 중임을 맡은 것은 처음이었다. 부하 장군들은 육손을 잘 따르려 하지 않고 시비를 걸거나 태클을 걸기가 일수였다.

유비가 오반(吳班)에 쳐들어와 진을 치자 육손의 부하 장군들은 본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육손은 동의하지 않았다. 육손의 머리는 매우 냉철했다.

 “이런 행동에는 반드시 음흉한 계획이 있을 것이니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오군이 당장 진격해오기를 바랐던 유비는 그의 계획이 실현될 수 없음을 깨닫고 곧바로 복병 8천 명을 이끌고 산골짜기에서 나갔다. 육손의 전략은 분노에 극에 달한 유비의 군대가 지쳐서 맥을 추지 못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렸다가 일망타진하는 것이었다. 이런 계책을 갖고 있는 육손은 유비의 군대가 오나라 경내로 들어오게끔 유도하고 있었다. 수하 장군들은 육손의 이런 계책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다.

그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유비를 친다면 마땅히 그가 처음 진격해 왔을 때 했어야 합니다. 현재는 그가 오나라로 5~6백 리를 들어오도록 하여 서로 대치한 지 7·8개월이나 되었으며 많은 요충지는 모두 그가 굳게 지키고 있으므로 그를 치면 반드시 불리합니다.”

육손이 말했다.

 “유비는 교활한 적으로 산전수전을 겪었고 그 군대가 처음 진격해 왔을 때 그의 생각은 조밀하고 전일했으므로 침범할 수 없었다. 현재는 매우 오랫동안 출병하여 이익을 보지 못했다. 병사들은 지치고 사기가 떨어졌으며 새로운 계책도 없다. 앞뒤에서 협공하여 적을 잡을 때가 바로 지금이다.”

그러고 나서 육손이 먼저 유비의 한 진영을 쳤지만 불리했다.

장수들이 모두 이렇게 말했다.

“헛되이 병력을 소모할 뿐입니다.”

육손이 말했다.

 “나는 이미 유비 진영을 무너뜨릴 방법을 알고 있다.”

육손의 방법은 화공이었다. 촘촘하게 세워진 유비의 진영은 화공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육손은 때를 놓치지 않고 진격해 대승을 거뒀다. 유비는 야반도주로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군대 죽은 시신이 장강을 물들였다.

유비는 매우 부끄럽고 분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육손에게 좌절과 모욕을 당했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이 말의 뜻인즉 유비는 육손을 어리게 보고 싸울 상다가 되지 못한다고 얕잡아 보았는데 결국 그에게 실패하자 어이없다는 의미이다.

처음 중책을 맡은 육손은 부하 장수들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처음에 손환이 혼자 이도에서 유비의 선봉대를 토벌하려다가 그에게 포위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육손에게 구원을 요청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안 된다.”

장수들이 의아해 말했다.

 “손환은 손권의 동족인데 그가 포위당한 것을 알고 어찌 구하지 않습니까?”

육손이 말했다.

 “손환은 병사들의 마음을 얻었고 성이 튼튼하며 식량이 충분하므로 걱정할 것이 없다. 내 계책이 실시되기를 기다리면 그를 구하지 않아도 그 포위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

육손의 계책이 실시되자 유비는 정말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손환은 나중에 육손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전에 나는 사실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을 원망했습니다. 대국이 결정된 오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당신의 조처에는 방법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유비에게 맞서 싸우는 육손은 어찌 보면 유비란 적보다도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은 내부의 단합이었다. 왜냐하면 장군들 가운데 어떤 이는 손책 때의 노장이고 어떤 이는 황실의 친척이므로 각자 긍지를 갖고 서로 듣고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육손이 칼을 잡고 말했다.

 “유비는 천하에 이름이 알려졌으며 조조도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 오늘 그가 우리 경내에 있는데 이는 강대한 적수이다. 여러 분은 모두 나라의 은혜를 받았으니 마땅히 서로 화목해야 하며 함께 이 적을 무찔러서 위에서 받은 은혜에 보답해야 하거늘 서로 따르지 않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나는 비록 서생일 뿐이지만 주상의 명령을 받았다. 나라에서 여러분을 굽혀 내 명령을 받도록 한 까닭은 내게 칭찬할 만한 장점이 조금 있어 부끄러움을 참아내고 중임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 맡은 일을 해야지 또 무슨 말을 하겠는가? 군령은 엄격한 것이니 범할 수 없다!”

손권이 훗날 육손의 어려움을 듣고 말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애초에 장수들이 지휘와 약속에 복종하지 않는 것을 알리지 않았소?”

육손이 대답했다.

 “저는 두터운 은혜를 입어 임무가 제 재능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 장수들 가운데 어떤 이는 주군께서 신임하는 사람이고, 어떤 이는 유능한 장수이며, 어떤 이는 공신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나라가 큰일을 이루는 데 함께할 사람들입니다. 신은 비록 재능이 낮지만 인상여와 구순이 겸허하게 자신을 낮춘 뜻을 사사로이 흠모하여 나라의 큰일을 이루려고 한 것입니다.”

손권은 크게 웃으며 그의 행동이 옳았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그를 보국장군으로 임명하고 형주목을 겸하도록 했으며 곧바로 강릉후로 바꾸어 봉했다.

 224년 순권은 육손을 크게 신임한 나머지 그를 승상으로 임명하였다. 육손 전의 승상은 고옹이었다. 고옹이 승상이 될 때 민심과 여론은 모두 장소의 편이었다. 즉 장소가 마땅히 승상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권은 민심과 여론을 무시하고 고옹의 손을 들어주었다. 고옹의 승상 후임으로도 민심과 여론은 장소가 이번에는 반드시 승상이 되어야 한다고 떠들었지만 손권은 육손을 올려놓았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분석이 있다.

첫째 장소는 손권이 당당하게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한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장소는 손책의 유언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사사건건 손권의 행위에 태클을 걸어 눈 밖에 나게 되었다.

둘째 조조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주유와 노숙은 항조파(抗曹派)였고 장소는 항조파(降曹派)였는데 만약 손권이 장소의 말을 들었다면 영원히 조위의 신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일개 왕, 황제는 꿈도 꿀 수 없었다는 것이 손권이 장소를 미워한 이유였다. 그래서 장소를 승상에 앉히지 않았던 것이다.

 셋째 손권은 부친 손견이 오나라 토박이 아니라 외래 세력이었다. 손권이 동오를 굳건하게 지켜내려면 토착세력을 중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고옹과 육손은 모두 오나라 출신이기 때문에 장소 대신 이 둘을 중용했다는 결론이다.

 30년 동쪽의 물을 마시고 30년 서쪽의 물을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손권에게 그토록 중용을 받던 육손은 손권의 후계자 쟁탈 싸움에 관여한 죄로 손권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이 사건을 다르게 보고 있다. 손권이 육손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후계자 사건은 명분일 뿐 실제 이유는 육손이 너무 뛰어나 손권의 뒤를 이은 후계자는 육손의 손바닥에서 놀아날 것을 우려해 미리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세종대왕이 시름 놓고 정치를 잘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아버지 이방원이 정적을 몽땅 쓸어버린 결과 세종의 앞에는 태클을 걸 장애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권에게 그 누구보다도 두터운 믿음을 받았던 육손이 말년이 아름답지 못해 제명에 죽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나이 61세에 죽었으니 당시로서는 장수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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