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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재해석(32)
계책으로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탈환한 여몽
[454호] 2022년 01월 01일 (토) 동포타운신문 dongpotown@daum.net

진수의 <삼국지>는 인물평으로 지은 사서이다. 따라서 매개 인물마다 가문의 내역과 출신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여몽만은 가문에 대한 언급도 없고 그의 아버지조차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아 여몽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인간사회에 온 듯한 인물이어서 그가 금수저인지 흙수저인지조차 우리는 모르고 있다.

   

여몽에 대한 정보라면 단 한 가지 그가 부파현()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사서는 다짜고짜로 여몽이 어릴 때 남쪽으로 건너와 매부 등당(登當)에게 의지했다는 것으로 여몽편(呂蒙篇)을 시작한다. 이 구절을 미루어 보아 여몽의 집안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여몽의 가문이 본래 부자였는데 망한 것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천민출신 가문이었는지? 여몽이 공부조차 못했다는 것은 가문이 적어도 부자출신이나 관료가문의 출신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출신의 여하를 떠나 아무튼 여몽은 머리 좋고 용맹해서 장군의 기질을 갖춰 손권이 아끼는 장수임에는 틀림없었다.

등당은 손책의 부장으로 산월을 여러 차례 토벌했다. 여몽은 미성년인 열대여섯 살 때 몰래 등당을 따라서 적을 공격하는데 가담하려고 했는데 등당이 고개를 돌려보다가 그를 보고 깜짝 놀라 꾸짖었지만 하도 완강하여 말릴 수가 없었다. 돌아온 뒤 여몽은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어머니가 너무 화가 나 벌하려고 하자 어린 여몽이 당당하게 말했다.

가난과 미천함은 참아내기 어려운 것입니다. 잘못을 벗어버리고 공을 세우면 부귀가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또 호랑이 굴로 들어가지 않고 어찌 호랑이 새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불쌍히 여겨 벌주지 않았다. 그때 등당을 따르는 관리들은 여몽이 어리다고 무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은 굶주린 호랑이에게 고기를 주려고 하는 것이다.”

어느 하루 관리들은 여몽을 만나자 또 치욕을 주었다. 여몽은 매우 화가 나 칼을 가져다 관리를 죽이고 달아나 같은 마을 사람 정장(鄭長)의 집에 숨었다. 그 후 교위 원웅(袁雄)을 통해 나와서 자수했는데 원웅이 가운데서 그를 위해 변호해주었다. 손책은 그를 불러 만나보고는 남다른 인물이라 여겨 자기 곁에 두었다.

등당이 죽자 장소는 여몽을 추천하여 등당을 대행하게 하고 별부사마로 제수했다. 손권이 정권을 이어받자 군 재편을 추진했다. 쓸모가 적거나 병사가 적은 자들의 군대를 병합하려했다. 여몽은 사람을 모으고 결집시키는데 탁월한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 그는 남몰래 슬그머니 돈을 빌려 병사들을 위해 붉은 옷과 행전을 지급했다. 병사를 검열하는 날이 되자 정렬한 그의 군대는 빛났으며 병사들은 잘 훈련되어 있었다. 손권은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하여 그의 병력을 늘려주었다. 여몽은 단양 토벌에 참가하여 가는 곳마다 공을 세웠다. 전공이 인정되어 평북도위로 제수되었고 광덕현(廣德縣)의 장이 되었다.

여몽이 손권의 장수로서 첫 큰 공을 세운 것은 황조(黃祖)를 제거한 것이다. 황조는 형주자사 유표의 부하였으며 뛰어난 장수였다. 동오(東吳, 손권의 정권)는 오랫동안 황조와 싸워왔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그러던 숙적 황조를 여몽이 제거했으니 손권은 여몽을 후하게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손권은 통이 크게 여몽에게 1천만 전을 내렸다.

여몽은 조조의 군대와 싸움에서도 공이 컸다. 여몽은 남군에서 조조의 조카 조인(曹仁)을 포위했다. 조조의 세력범위 안에 있던 익주의 장수 습숙(襲肅)이 투항해오자 주유는 여몽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표를 올려 습숙의 병사들을 여몽의 군대에 편입시키려했다. 그러나 여몽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습숙을 배려하여 이렇게 말했다.

습숙은 담력 있고 재능이 있습니다. 습숙은 먼 곳에서 왔으므로 도의상 마땅히 그의 병력을 늘려주어야지 빼앗는 것은 타당치 않습니다.”

   

손권은 여몽의 말을 받아들여 습숙에게 군대를 돌려주었다.

조조의 부하 장수 조인이 이릉을 지키고 있는 감념을 치자 감념은 위험에 빠졌다. 감념은 사자를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장수들은 병력이 적어 나눌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여몽은 주유와 정보에게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능통을 남기고 나와 여러분이 가서 포위를 풀어 위급함을 구해주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능통이 열흘은 뻗힐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3백 명을 나누어 보내 땔나무로 험한 길을 끊게 한다면 적이 달아날 때 그들의 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유는 여몽의 의견을 따랐다. 오나라 군대가 이릉에 이르자마자 싸워서 적군의 과반수를 죽였다. 조인의 군대는 패색이 짙어 야반도주하다가 땔나무로 막아놓은 길을 만나게 되자 기병들은 모두 말을 버리고 걸어서 도망쳤다. 오마라 군대는 곧바로 뒤를 쫓아 죽이고 말 3백 필을 얻어 배에 싣고 돌아왔다. 장수와 병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적군을 향해 공격하자 조인은 퇴각했다. 결국 오나라는 남군을 점령하고 형주를 평정했다. 이 전투에서 결정적인 공을 세운 여몽은 편장군에 제수되었고 심양현(尋陽縣)의 현령이 되었다.

여몽은 이때까지 연전연승으로 공을 세워 이름을 떨쳤으나 노숙은 여전히 여몽을 경시하고 있었다. 어느 하루 노숙은 주유를 대신하여 육구로 가는 길에 여몽의 군영 밖을 지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노숙에게 일렀다.

여 장군의 공명이 나날이 빛나고 있으니 마음대로 대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마땅히 그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노숙은 여몽을 찾아가 만났다. 두 사람은 술에 잔뜩 취했다. 장수끼리 만나면 군사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여몽이 노숙에게 물었다.

그대는 중임을 받아 관우와 이웃하고 있는데 어떤 계책으로 예기치 않은 상황에 방비하고 있습니까?”노숙은 창졸간에 이렇게 대답했다.

때에 따라 알맞은 방법을 취할 것이오.”

여몽이 말했다.

지금 동쪽()과 서쪽()이 비록 한집안이라고는 하지만 관우는 사실 곰이나 호랑이 같은 사람입니다. 어찌 미리 계획을 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노숙을 위해 다섯 가지 방법을 그려 얘기했다. 노숙은 이때 자리를 넘어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 그의 등을 치며 말했다.

여자명(呂子明), 나는 그대의 계략이 이 수준까지 이르렀는지 몰랐소.”

노숙은 여몽의 어머니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여몽과 짙은 우정을 맺고 헤어졌다.

나날이 전공을 크게 쌓아가고 있는 여몽이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고 타인을 잘 배려하는 인간미도 좋았다. 그즈음 성당(成當), 송정(宋定), 서고(徐顧) 등 오나라 장수들이 죽었고 자제들은 유약했다. 손권은 그들 진영과 가까이 있는 여몽에게 주어 합치도록 했다. 그러나 여몽은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서고 등은 나라를 위해 열심히 수고했으며 자제들은 비록 어리지만 폐출시킬 수 없습니다.”

여몽이 여러 차례 표를 올려서야 손권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여몽은 그들을 위해 스승을 골라주고 스승에게 그들을 보좌하고 지도하도록 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삼가고 주의하는 바가 모두 이와 같았다.

조조는 둔전개간으로 기초를 닦고 부국강병을 이뤄낸 위인이다. 그는 농지개간에 끊임없이 심혈을 기울여 왔다. 환현은 기름진 땅이다. 조조는 주광을 보내 여강 태수로 삼고 환현에 주둔시켜 농지를 대규모로 일구게 하고 또 첩자를 보내 파양의 도적 우두머리를 회유하여 내부에서 호응하게 만들었다.

여몽은 손권에게 말했다.

만약 조조가 기름진 환현에서 수확을 얻게 된다면 그들의 병력은 반드시 늘어나고 강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몇 해가 지나면 조조의 판도가 짜일 테니 마땅히 일치감치 제거해야 합니다.”

손권은 이번에도 여몽의 의견을 따랐다. 손권은 직접 환현을 정벌하려고 장수들을 불러 계책을 물었다. 여몽은 곧 감념을 추천하여 앞에서 병사들을 이끌어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정예부대로 그의 뒤를 이었다. 여몽의 군대는 모두 기세등등하여 밥 먹는 시간을 이용하여 격파했다. 장료가 조조를 도우려고 나섰으나 성이 이미 무너진 뒤여서 물러났다. 여몽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 손권은 여몽을 여강 태수로 임명하고 여몽이 현령을 맡고 있는 심양의 둔전 일을 할 6백 명과 관속 30명을 주었다.

그즈음 여릉의 도적들이 일어났다. 많은 장수가 토벌에 나서 공격했으나 붙잡지 못했다. 손권이 화가 나 말했다.

사나운 새 백 마리가 물수리 한 마리만도 못하구나.”

손권은 곧 여몽에게 명하여 토벌하도록 하였다. 여몽은 손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 우두머리를 주살하고 나머지는 모두 풀어주어 다시 평민이 되게 했다.

이때 유비는 관우에게 명령해 수비를 공고히 하도록 하여 형주전역을 촉이 차지하고 있었다. 손권은 여몽에게 명하여 서쪽으로 장사·영릉·계양 3군을 취하도록 했다. 몰론 유비도 이 3군을 내줄 생각이 티끌만치도 없었다. 관우와 여몽은 서로 관할 경계를 이웃하고 있었고 서로 불편한 관계였다. 여몽이 계책으로 관우를 이기야지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패망의 길이었다. 그래서 여몽은 관우를 잡을 계책을 손권에게 올렸다.

관우가 번성을 토벌하러 가면서 많은 병력을 머물러 지키도록 한 것은 반드시 제가 그 뒤에서 모의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질병에 걸려 있으니 병사들을 나누어 건업으로 돌아가게 하고 질병치료를 명분으로 삼고자 합니다. 관우가 이 소식을 들으면 틀림없이 수비 부대를 거두어 모두 양양으로 가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 대군이 장강을 거쳐 밤낮으로 달려 올라와서 그의 텅 빈 성을 습격하면 남군을 항복시키고 관우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여몽이 질병이 위독하다고 알리자 손권은 곧 공개적으로 격문을 내려 여몽을 불러 돌아오게 하고 은밀히 그와 계책을 도모했다. 관우는 정말 이 소식을 믿고 점점 병사를 거두어 번성으로 가게 했다. 관우가 경계를 느슨하게 한 사이를 틈탄 여몽은 군대를 배에 숨겨 갔고 관우가 주둔하고 있는 장강 연안의 초소까지 이르러서는 보초병을 모조리 체포했기 때문에 관우는 전혀 알지 못했다. 여몽은 속전속결로 성을 점거하고 관우의 장수와 가족들을 모두 붙잡았는데 그들을 다 위로하고 군대 안에 엄격히 명령하여 인가로 들어가 요구하거나 강탈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

여몽이 수하 병사인 여남 사람이 백성의 집에서 삿갓을 빼앗아 관의 갑옷을 덮어놓았다. 관의 갑옷은 비록 공적인 물건이지만 여몽은 이는 여전히 군령을 범한 것이며 고향의 연고 때문에 법을 저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의 목을 베었다. 그래서 군대 안은 놀라 두려워 떨었으며 길에서 다른 사람이 잃은 것을 줍지 않았다. 여몽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접 노인들을 위문하고 부족한 점을 물었으며 병든 자에게는 의약을 대주고 굶주린 자에게는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주었다.

관우가 여러 차례 사자를 보내 상황을 알아보게 했는데 여몽의 군대는 백성을 너무 잘 대해 주고 있어 시름 놓아도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여몽이 관우의 장수와 백성들을 후하게 대접하여 그들은 싸울 맘이 사라져 버렸다. 여몽은 심지어 관우의 창고 재물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봉해놓고 손권이 오기를 기다렸다. 재물을 탐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확실한 믿음을 얻었다.

관우는 점차 실체를 알게 되었고 자신이 이미 고립되어 곤궁에 처해졌다는 것을 알고 맥성으로 도망갔다. 이를 역사는 패주맥성(敗走麥城)’이라 부른다. 손권이 주연과 반장을 시켜 그의 길을 끊도록 하니 곧이어 관우부자가 함께 붙잡혀 마침내 형주는 평정되었다.

관우는 삼국시대 가장 유능한 장수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가장 인기 높은 장수임에는 틀림없다. 조조도 관우를 얻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다. 유비가 나름대로 자신의 강산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관우의 공로가 컸다. 따라서 관우가 죽자 유비는 급속하게 무너졌다.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무리하게 이릉전투를 감행하여 처참하게 패배하고 나서 화병에 걸려 황제 등극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만약 관우가 계속 살아있었다면 손권의 동오는 형주를 평정할 수가 없었다. 이런 관우를 제가한 인물이 여몽이었으니 손권은 그를 극진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여몽은 여몽을 남군 태수로 삼고 잔릉후(孱陵侯)로 봉했으며 1억 전과 황금 500근을 내렸다. 여몽은 간곡히 금전을 사양했지만 손권은 허락하지 않았다.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문신(文臣)들은 장수한데 비해 무신(武臣)들은 다수가 단명이다. 전장에서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지만 병에 걸려 죽는 자도 매우 많았다. 주유와 노숙은 30대 중후반에 병으로 죽었고 여몽도 병으로 마흔두 살에 죽었다. 안타까운 것은 책봉한 작위를 아직 이행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질병에 걸렸던 것이다.

가장 유능한 장수가 질병에 걸렸으니 손권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손권은 그때 공안에 있었는데 여몽을 내전으로 맞아들이게 하고 치료를 위해 온갖 처방을 다했으며 나라 안에서 여몽의 질병을 고칠 수 있는 자에게 천금을 내리겠다고 포고하여 불러 모았다. 때로는 침을 찌르면 손권은 그의 고통 때문에 슬퍼하곤 했다. 손권은 늘 그의 낯빛을 살피려 하면서도 그를 놀라게 할까 걱정되어 언제나 담 밖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았고 그가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을 보면 기뻐하면서 주위를 돌아보고 말하며 웃고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탄식하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질병을 앓는 중에 병세가 나아지면 그를 위해 사면령을 내렸고 신하들은 모두 축하했다. 뒤에 병세가 더 나빠지자 손권은 몸소 가까이에서 지키고 도사에게 명하여 성신(星辰) 아래에서 그를 위해 기도하여 그 생명을 지켜달라고 청하게 했다. 그러나 여몽은 손권의 성의에도 불구하고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손권은 매우 애통하여 그를 위해 상복을 입고 먹는 것도 줄였다.

여몽은 매우 청렴한 장수였다. 죽기 전에 받은 금은이나 재물, 상을 모두 창고 속에 넣어 두고 창고 관리자에게 자기 목숨이 다하는 날 다 조정으로 돌려보내도록 하고 장례식은 검소하게 하도록 힘쓰라고 부탁했다. 손권은 이 말을 듣고 더욱 슬퍼했다.

오늘 날 반대파를 포용하고 관용하지 못하고 질투와 질시로 어지럽고 혼란한 한국정치판을 보면 여몽의 너그러움이 새삼 떠오른다.

여몽은 어려서 경전을 배우지 않았으므로 큰일을 말할 때마다 언제나 구술로 대신 표를 올렸다. 그는 일찍이 부하의 일로 강하 태수 채유(蔡遺)에게 고발당했지만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다. 여장 태수 고소가 죽었을 때 손권이 임명할만한 자를 묻자 여몽은 채유를 추천하면서 직무를 받드는 훌륭한 관리라고 치하했다. 손권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기해(祈奚, 춘추시대 진나라 도공의 신하인데 원수인 해호를 자기 후임으로 추천한 공평무사한 인물)가 되려고 하시오?”

손권은 채유를 임명했다.

감녕은 성질이 포악하고 살인을 좋아했으며 늘 여몽의 생각을 거슬렀고 또 어떤 때는 손권의 명령을 어기기도 했다. 손권은 그 때문에 노여워했다. 그러나 여몽은 언제나 그를 위해 진정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하는 아직 평정되지 않았으며 감녕 같은 장수는 얻기 어려우니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손권은 여몽의 의견에 따라 감녕을 중용했다.

여몽은 이렇듯 오지랖이 넓은 장수여서 손권은 더욱 그를 굳게 신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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