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22.09.25(일) 구인고충상담기사제보신문지면보기
신문사소개 | 구독신청아이디/비밀번호
> 뉴스 > 칼럼/사설 > 특별연재
     
<삼국지> 재해석(31)
삼국정립의 그림을 그린 첫 인물, 노숙
[453호] 2021년 12월 16일 (목)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노숙은 손권의 무신으로서 여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이지만 그의 가장 큰 업적을 꼽자면 역시 삼국정립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삼국정립이란 위·촉·오 세 정권의 병존이다. 사람들은 흔히 제갈량이 이 그림을 그린 첫 인물로 알고 있는데 실제역사사실은 제갈량이 아니라 노숙이었다. 그런데 왜 실제 역사사실과 다르게 노숙이 아닌 제갈량을 그 주인공으로 알게 되었을까? 역시 나관중의 ‘작간’이다.

   

 이중턘교수는 역사인물은 역사적인 이미지, 문학적인 이미지, 민간이미지가 있다고 말했다. 필자가 보기엔 제갈량은 나관중의 붓에 의해 한심하게 뻥튀기 된 문학적인 이미지로 변신된 ‘가공인물(역사에 제갈량이란 인물이 있긴 했지만 소설 속의 제갈량은 2할이가 사실이고 8할이 거짓임)’이 되어버렸으며 심지어 이 문학적인 이미지 제갈량은 역사적 이미지 노숙의 업적마저 삼켜버린 결과 노숙은 사라지고 제갈량만 빛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노숙은 어떤 역사인물이었을까?

노숙은 태어나면서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집안은 재산이 많아 부유했다. 노숙은 요즘 말로 하면 금수저 출신이다.

그때 세상이 혼란스러워 노숙은 집안일에는 힘쓰지 않고 재물을 많이 풀고 땅을 팔아서 가난한 이를 구제하고 인사들과 사귀는 것을 일삼았다. 그래서 고향 사람들의 환심을 얻게 되었다.

노숙은 외모가 남다르고 어려서부터 큰일을 이룰 뜻을 갖고 있었으며 기이한 계책을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세상이 소란스러워지려고 하자 곧 검술과 말 타기와 활쏘기를 익히고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그들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주고 남산을 오가며 사냥하면서 그들을 지휘하여 병법을 연습시켰다. 마을 부로(父老)들은 모두 “노씨 집도 대대로 쇠하더니 이 미치광이를 낳았구나!”라고 매우 못 마땅해 했다.

노숙은 자신을 향하는 이런 비난을 뒤로 하고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난세의 영웅으로 거듭났다. 영웅과 준걸들이 곳곳에서 일어나 중원이 소란스러워지자 노숙은 그 부하들에게 말했다.

 “중원은 기강을 잃었고 도적들이 마구 포악하게 굴며 회수와 사수 사이에는 자손을 남길 땅이 없다. 내가 들은 바로 강동은 기름진 들판이 만 리나 되어 백성은 부유하고 병사는 강하며 난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어찌 서로 따라서 함께 낙토에 이르러 시세의 변화를 보지 않겠는가?”

부하들은 일제히 그의 명령을 따랐다.

약한 자는 앞세우고 강한 자는 뒤에 있게 하여 남녀 3백여 명이 출발했다. 주에서 추격한 기병이 이르렀으나 노숙 등은 천천히 갔다. 그들은 병기를 쥐고 활시위를 당기며 말했다.

 “그대들도 장부이니 시세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오늘 천하에 병란이 일어나 공이 있어도 상을 받지 못하고 추격하여도 처벌하지 못할 텐데 어찌하여 서로 간섭하는가?”

기병들은 노숙의 말을 칭찬하며 제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곧 발길을 돌렸다. 노숙은 장강을 건너 손책이 있는 곳으로 가서 알현했다.

손책도 노숙의 비범함을 인정하고 특별히 중시했다. 노숙의 비범함을 알아본 사람은 주유였다. 노숙이 강남으로 가기 전에 주유는 거소현의 장이 되자 노숙을 방문했다. 목적은 금전과 식량을 지원받기 우함이었다. 노숙의 집에는 곳간 두 개에 쌀이 각각 3천 곡씩 있었다.

노숙은 아주 통쾌하게 한 곳간을 가리키며 주유에게 내주었다. 이때부터 주유와 노숙은 관중과 포숙의 관계까지는 몰라도 공손교(公孫僑, 춘추시대의 정치가)와 계찰(季札, 오왕의 동생) 같은 두터운 친구관계를 맺었다. 그 무렵 원술은 노숙의 명성을 듣고 곧 동성현의 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노숙은 원술이 기강도 없고 공업을 세우기에는 부족하다고 여겨 곧 노약자를 데리고 민첩하고 용감한 청년 1백여 명을 이끌고 남쪽으로 거소현까지 가서 주유에게 의탁했다.

노숙은 주유와 함께 장강을 건널 때 마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으므로 동성현으로 돌아와 안장했다. 그때 노숙의 친구 유자양(劉子揚)이 편지를 보내왔다.

 “지금 천하의 호걸들이 한꺼번에 일어났으니 그대의 자질과 재능은 특히 오늘날 이용해야만 하오. 급히 돌아와 노모를 맞이하고 동성현에서 머무르지 말도록 하시오. 정보(鄭寶)라는 자가 거소에서 1만여 명을 모았소. 그가 차지한 땅은 비옥하고 풍요로워 여강 일대의 사람이 대부분 그에게 의지하러 가고 있소. 하물며 우리 같은 무리는 어떠하겠소? 그 형세를 보니 또 현명한 선비를 많이 모이게 할 수 있소. 때를 잃을 수 없으니 그대는 빨리 가시오.” 노숙은 그의 의견에 동의하여 곡아현에 갔다. 노숙은 그때까지만 해도 북쪽에서 발전하려고 했다. 마침 그때 주유는 노숙의 어머니를 오군으로 이주시켜놓았다. 주유가 노숙을 만나 구체적인 사정을 설명했다. 그 무렵 손책은 죽고 손권이 뒤를 이었다.

주유가 노숙에게 말했다.

 “옛날 마원(馬援)은 광무제에게 ‘지금의 정세는 군주가 신하를 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하도 군주를 선택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소. 지금 주인(손권)은 지혜로운 사람을 가까이 하고 선비를 존중하며 특이한 재능이 있는 자를 등용하고 있소. 게다가 나는 전 철인들의 비밀스런 의론에서 천명을 이어 유씨를 대신할 자는 반드시 동남쪽에서 일어난다고 들었는데 형세 변화를 추측해보면 지금은 한가(漢家)의 운수가 다한 때이므로 오의 군주가 나라를 창립하여 천명에 부합할 수 있소. 이는 봉황의 날개에 붙어 달릴 때인 것이오. 우리가 지금 중용된다면 그대는 유자양의 의견에 개의할 필요가 없소.” 노숙은 주유의 말을 따랐다

. 주유는 손권에게 노숙을 추천하면서 재능은 이 시대를 보좌해야 되고 마땅히 노숙 같은 인재를 널리 구하여 공업을 이뤄야 하므로 그를 떠나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손권이 직접 노숙을 만나보고 흡족해 했다. 술잔까지 나누었다. 손권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지금 한나라 왕실은 기울고 위험한 상태이며 천하 사방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처럼 시끄럽고 어수선하오. 나는 아버지와 형이 남긴 기업을 계승하여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공업을 세우려 생각하고 있소. 그대는 몸을 굽혀 공손히 내게 왔는데 어떻게 보좌할 생각이오?”

노숙이 대답했다.

 “옛날 한나라 고조가 마음을 다하여 초나라 의제를 존중하여 섬기려고 했으나 바라는 대로 얻을 수 없었던 것은 항우를 해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조조는 옛날 항우와 같습니다. 장군은 어떻게 환공과 문공처럼 될 수 있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한나라 왕실은 다시 일어날 수 없고 조조는 쉽사리 제거되지 않습니다. 장군을 위한 계책은 오직 강동을 차지하고 천하의 변화를 살피는 것뿐입니다. 기업의 규모가 이와 같으며 또 의혹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북방에는 진실로 힘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힘써야 할 일이 많을 때를 이용하여 황조를 제거하고 나아가 유표를 쳐서 장강 유역을 차지해 소유로 만든 다음 제왕이라 일컬으며 천하 통일을 꾀하는 것, 이것이 하나라 고제의 사업이었습니다.”

 손권이 말했다.

 “지금은 한쪽으로만 힘을 다하여 한나라 왕실을 보좌하기만 바랄 뿐이오. 그대는 방금 한 이 말은 내가 미치는 바가 아니오.”

손권의 문신인 장소는 노숙이 그다지 겸손하지 않다면 비난하고 자못 그를 헐뜯으며 나이가 어리고 거칠어서 임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손권은 장손을 의식하지 않고 노숙을 더욱 귀중히 여겼으며 노숙의 어머니에게 옷과 휘장과 생활용품을 내려서 예전처럼 부유하게 했다. 손권의 야망이 노숙의 뜻과 맞물렸기 때문에 손권은 노숙을 귀하게 대접했던 것이다.

유표가 죽자 노숙은 손권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초(荊楚) 땅은 우리나라와 가까이 맞닿아 있고 강물은 북쪽으로 흘러내리며 밖으로는 장강과 한수를 두르고 있고 안으로는 험준한 산이나 구릉이 있어 견고한 성이 있으며 기름진 평야가 만 리나 되고 관리와 백성은 부유합니다. 만일 이곳을 차지하여 소유한다면 이는 제왕의 자본이 될 것입니다. 지금 유표는 죽고 그의 두 아들은 평소 화목하지 못했으며 군대 안의 장수들은 각각 두 파로 나누어져 대립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유비 같은 천하의 영웅이 조조와 불화가 있어 유표에게 의탁했지만 유표는 그의 재능을 질시하여 중용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유비가 그들과 마음을 합쳐 위에 있는 자와 아래에 있는 자가 일제히 똑 같이 된다면 마땅히 어루만져 안정시키고 동맹을 맺어야 하지만 만일 그들 사이가 벌어지고 어그러진다면 마땅히 따로 계획하여 대업을 이루어야 합니다. 저는 명을 받들어 유표의 두 아들에게 가서 조문하고 아울러 그 군대 안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를 위로하며 유비에게 유표의 부하들을 어루만져 한마음 한 뜻으로 함께 조조에게 대항하도록 설득하기를 원합니다. 조조 먼저 손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노숙은 조조보다 한 발 늦었다. 조조는 이미 유표의 아들 유종의 투항을 받아냈던 것이다.

하지만 노숙은 포기하지 않았다. 유비를 만나 설득하고 제갈량을 만나 더 진지하게 논의한 결과 힘을 합쳐 조조에게 대항하기로 합을 보았다. 전투는 곧 일어나게 되어 있었고 이것이 곧 적벽대전이었다. 결과는 조조의 패배로 끝났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오의 진영에서는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유, 노숙을 비롯한 무신 항조파(抗曹派)와 아직 힘이 부치니 투항해야 한다는 장소를 비롯한 문신들 항조파(降曹派) 간의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노숙이 손권을 찾아 말했다.

“사람들의 의견을 자세히 살펴보니 전적으로 장군을 잘못되게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과는 큰일을 꾀할 가치가 없습니다. 지금 저 같은 사람은 조조를 맞아들일 있지만 장군 같은 사람은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조조의 밑에서 한 자리 벼슬을 할 수 있지만 장군께서 조조를 맞이 한다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손권은 탄식하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 가진 생각은 내 소망을 크게 실망시키는 것이었소. 오늘 그대가 원대한 계획을 분명하게 밝힌 것은 내 생각과 일치하오. 이는 하늘이 그대를 내게 내려준 것이오.”

이렇게 되어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조조와 맞서 싸우는 적벽대전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적벽대전 직후 손권의 오는 유비에게 형주를 빌려주기로 하였다. 그때까지 엉덩이를 들이밀 한 치의 땅조차 없었던 유비에게 근거지를 마련해준 셈이었다. 유비의 힘을 키워 함께 조조와 계속 맞붙을 작정이었다. 물론 이 계책은 노숙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30대 중반 한창 젊은 나이인 주유는 질병이 깊어가자 상소하여 말했다.

 “지금 천하에는 사건이 많고 전쟁이 끊이지 않으니 이는 제가 밤낮으로 걱정하는 바입니다. 원컨대 군주께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을 근심한 뒤에 즐거운 삶을 누리십시오. 지금 조조와는 적이 되었고 유비는 가까이 공안에 있으며 변방 지역과 가깝고 백성은 아직 귀의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훌륭한 장수를 얻어서 진무해야만 합니다. 노숙은 지혜와 지략이 있어 일을 맡기에 충분하니 저를 대행하도록 해주십시오. 제가 죽는 날까지 마음에 걸렸던 것은 이 일이 전부입니다.”

 손권은 주유의 뜻에 따라 노숙을 중용했다.

   

건안 19년(214)유비는 유장을 물리치고 익주를 차지하게 되었다. 확실한 근거지가 생겼다. 유비에게 자기 소유인 확실한 근거지가 생기자 손권은 적벽대전 이후 빌려주었던 형주를 되 돌려달고 닦달했다. 그러나 얼굴에 철판을 깔고 평생을 살아온 유비는 못 들은 척하면서 응하지 않았다.

 결자해지란 말이 있다. 노숙이 땅을 빌려주었으니 노숙이 나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돌려받자는 쪽의 완강한 태도에 못지않게 돌려주지 않겠다는 쪽의 주장 또한 너무 완강했다. 이 일로 노숙은 관우와 익양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노숙은 관우에게 서로 만나자고 요청하여 각각 병마를 1백 보 밖으로 주둔시키고 장군끼리만 단도를 갖고 함께 만났다.

노숙은 여러 차례 관우를 꾸짖으며 말했다.

 “우리 군주가 본래 성의껏 그대들에게 땅을 빌려준 것은 그대들이 전쟁에서 져 멀리서 왔고 의지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오. 오늘날 벌써 익주를 얻었으면서 형주를 돌려주려는 뜻도 없고 우리는 오로지 그대들이 3군만 돌려주기를 요청하는데도 명을 따르지 않고 있소.”

노숙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자리에 앉아 있던 어떤 사람이 말했다.

“땅이란 덕 있는 사람에게 속하는 것일 뿐인데 어찌하여 영원히 가지려 하오?”

노숙은 벽력같은 소리를 질러 크게 꾸짖었는데 말투와 낯빛이 매우 절절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관우가 칼을 잡고 일어나 말했다.

 “이것은 나라 일인데 이 사람이 무엇을 알겠소!”

관우는 눈짓으로 말한 자를 떠나게 했다. 노숙과 관우는 결국 상수를 경계로 하여 나누었으며 양쪽 군대는 서로 전투가 없이 평화적으로 대결을 끝냈다.

건안 22년(217) 노숙은 마흔여섯 살로 세상을 떠났다. 손권은 주유를 잃었고 노숙을 잃었다. 이 두 장군의 뒤를 이은 것은 여몽이었다.

김정룡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동포타운신문(http://www.dongpotow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sk텔레콤
< ahref=http://www.kqci.kr>
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2-800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 122-19 정풍빌딩 3층 | Tel 02-837-4470 | Fax 02-837-4407
Copyright 2009 동포타운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ongpotown@daum.net
동포타운신문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