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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재해석(29)
손권을 군주로 일으켜 세운 일등 공신, 장소
[451호] 2021년 11월 16일 (화)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유비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영안에서 제갈량을 불러 아들 유선을 맡겼다. 이것을 역사에서는 영안탁고(永安託孤)’라고 부른다. 탁고의 내용은 이렇다.

만약 유선이 군주의 감이 되지 못한다면 그대가 취해도 좋소.”

유선이 군주의 자질이 되어 나라를 온전하게 다스린다면 그대가 보좌하고 만약 그럴 깜냥이 아니라면 그대가 군주자리에 오르도록 하시오. 대충 이런 요지이다. 그런데 당시 분위기로는 제갈량이 죽었다 깨도 유선을 밀어내고 황제자리에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교의 입장에서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최대의 죄악이기 때문에 제갈량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 유비의 영안탁고의 내용이 20년 전 손책이 임종을 앞두고 손권을 장소에게 맡기면서 남긴 내용을 심통하게 닮았다. 똑 같은 탁고에 똑 같은 내용이 있었으나 제갈량과 장소 두 사람이 걸은 길은 완전히 달랐다.

제갈량은 비록 유선을 몰아내지는 않았지만 황제를 가택연금으로 활동반경을 제한했고 나라의 크고 작은 일에 유선이 관여하지 않았고 죄다 제갈량이 결정하고 결제하고 처리했다. 이에 비해 장소는 손권을 주군으로 깍듯이 모시고 주군을 주군답게 만든 인물이다.

   

장소는 팽성 출신이니 북방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서예에 뛰어났다. 약관의 나이로 효렴 자격을 받았지만 구체적인 관직에 취임하지는 않았다. 유명한 학자 진림(陳琳) 등이 장소를 칭찬했고 서주자사 도겸이 그를 무재로 천거했지만 응하지 않아 도겸이 장소가 자신을 가볍게 여긴다고 생각되어 붙잡아 가두기까지 했다. 하도 그의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 겨우 풀려났다.

장소는 아마 관직에 별로 흥미를 갖지 않았던 것 같다.

한나라 말기 천하가 대혼란에 빠졌고 북방 사인들이 대거 장강(揚子江)을 건너 남방으로 피난 갔는데 그때 장소 일족도 북방에서 남방으로 이주했다. 손책이 공을 세우자 장소가 인재임을 알아보고 장사(長史) 및 무군중랑장(撫軍中郞將)으로 삼았다.

장소가 북방출신이고 손책의 진영에서 한 자리 하자 북방 사대부의 편지나 상소를 전적으로 장소에게 공로가 돌아가도록 씌어 있었다. 장소는 이를 숨기자니 사사로운 감정이 있다고 의심을 받게 될까 두려웠고 드러내자니 적당하지 않음을 걱정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양손에 떡을 쥔 처지에 놓여 불안했다. 손책이 이 소식을 알고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옛날에 관중이 제나라 재상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첫째도 중부(仲父, 관중), 둘째도 중부라고 했지만 제나라 환공은 천하를 제패한 사람으로 존중되었소. 이제 자포(子布, 장소의 자)가 현명하여 내가 능히 그를 등용했으니 그 공명은 오로지 나에게 있지 않겠는가!”

손책은 과연 그릇이 큰 인물이었다. 그러던 손책이 건안 5(200)에 죽자 손권이 자리를 물려받았고 손권을 보좌한 인물이 바로 장소였다.

미성년자인 손권이 형이 죽자 세상이 새카매 나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다. 이때 장소가 나섰다.

무릇 선인의 뒤를 잇는 사람은 전인이 제정한 규범을 이어받아 크게 발전시켜 위대한 공업을 완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바야흐로 지금 천하는 혼란하여 도적이 산에 가득한데 그대는 어떻게 자리에 누워 슬퍼하며 필부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까?”

장소는 손권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고 말에 오르게 하고 열병하여 군주의 위엄을 보이게 했다. 이로서 손책을 따르던 부하들이 모두 손권을 따르게 되었다.

손권은 천성이 용맹하여 사냥을 즐겼다. 언제나 말을 타고 호랑이를 화살로 쏘았는데 때로는 호랑이가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와 말안장을 잡아당기기도 했다. 장소는 얼굴빛이 파래나며 말했다.

장군께서 이와 같이 무리하게 해야 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의 군주가 된 자는 영웅들을 부리고 현인들을 쓸 수 있는데 어찌 들판에서 질주하며 쫓아 맹수와 용맹을 겨루십니까? 만에 하나 불행이 생기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텐데 어찌 그러십니까?”

손권은 장소에게 고마워하며 말했다.

나이가 젊어서 일을 생각하는 것이 깊지 못했소. 이 때문에 그대에게 부끄럽소.”

손권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여전히 사냥에 정신이 나가 있었다. 수레에 네모난 구멍을 내고 수레 덮개를 설치하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 수레를 몰게 하고 자신은 그 중앙에서 호랑이를 쏘았다. 때로는 무리하게 벗어난 짐승이 갑자기 수레를 범하기도 했지만 손권은 늘 손으로 쳐버리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장소가 그토록 간곡하게 말려도 언제나 웃으면서 넘겨버렸다.

장소는 외교에서도 손권의 위상을 높이려 애썼다. 위나라가 사자 형정을 보내 손권에게 오왕의 작위를 주었다. 형정이 궁궐 문으로 들어가서도 수레에서 내리지 않자 장소가 말했다.

무릇 예절이란 공경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법이 시행되지 않음이 없는 것이오. 그러나 그대는 감히 스스로 존대하고 있으니 설마 강남이 작고 약하여 한 치 되는 칼날조차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형정은 곧바로 수레에서 내려 예를 지켰다.

장소는 손권의 군주의 위상을 높이려고 사사건건 태클을 걸어 손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손권이 무창 조대(釣臺)에서 술을 실컷 마셨다. 그리고 신하들에게도 맘껏 마시라고 했다.

오늘 술을 한껏 마실 것이오. 오직 취하여 조대에서 떨어져야만 그만 마실 것이오.”

장소는 낯빛이 변하면서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갔다. 손권이 눈치 채고 사람을 보내 장소를 데려오게 했다.

함께 즐기려는 것일 뿐인데 그대는 어찌 노여운 기색을 하시오?”

장소가 대답했다.

옛날 주왕(紂王)은 술지게미로 언덕을 만들고 술로 연못을 만들어놓고 긴 밤 동안 마셨습니다. 그때도 즐기는 것이라고 여겼을 뿐 나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손권은 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곧 술자리를 파했다.

손권은 위와 촉처럼 승상을 두기로 결정하자 신하들은 그 자리가 당연히 장소에게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손권은 손소를 앉혔다.

지금 천하에는 일이 많아 통치하는 자는 책임이 중대하니 그를 우대하는 것이오.”

뜻인즉 장소를 배려해서 승상 자리에 앉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손소가 죽자 모든 신하들이 다시 장소를 천거했지만 손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어찌 자포를 아끼겠소. 승상의 일은 번다한데 이 사람의 성정은 강직하오. 그가 말한 바를 따르지 않으면 원망과 허물이 생길 것이오. 이는 그를 이롭게 하는 방법이 아니오.”

만약 장소를 승상 자리에 앉히면 사사건건 또 부딪힐 일이 많아 갈등이 심해질 것이니 그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로 불편하게 부딪힌 일들이 많았고 번마다 손권은 몹시 화가 났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어 손권에게 있어서 장소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고 눈에 가시처럼 미운 존재이기도 했다.

   

 

 

 

장소는 비록 늙고 승상이 아니더라도 손권을 올바르게 보좌하는 것을 사명으로 받들고 진심으로 간언을 멈추지 않았다. 손권의 입장에서는 맘대로 다룰 수 없는 신하라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손권은 공손연이 오나라의 번국이 되겠다고 하므로 장미와 허안을 요동으로 보내 공손연을 연왕으로 임명하려고 했는데 장소가 간하여 말했다.

위나라를 배신하여 토벌당할까 봐 두려워서 멀리 와서 구원을 요청한 것일 뿐 본심이 아닙니다. 만일 공손연이 생각을 바꿔 위나라에 자기 마음을 분명히 하려고 한다면 두 사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며 또 천하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지 않겠습니까?”

손권이 장소와 논쟁을 계속하면 할수록 장소의 생각은 더욱 간곡했고 완강했다. 손권은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노여워 칼을 만지며 말했다.

오나라 사인들은 궁궐로 들어오면 나를 배알하고 궁궐을 나가면 그대를 배알하오. 그대에 대한 나의 존경도 지극하오. 그러나 그대는 여러 차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욕했고 나는 늘 계책을 잘못 세워 그대를 죽이게 될까 걱정했소.”

장소는 손권을 연민의 눈빛으로 오랫동안 바라보고는 말했다.

신이 비록 제 말이 쓰이지 않을 줄을 알면서도 언제나 어리석은 충성을 다한 것은 진실로 태후께서 붕어하시려 할 즈음에 노신을 침상 아래로 불러 유언으로 남긴 명이 귀에 쟁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손권은 칼을 던지고 땅바닥에 내려와 장소와 마주보고 함께 목 놓아 울었다. 하지만 손권은 장미와 허안을 끝내 보내고 만다. 장소가 자기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탄스러워 병을 핑계 삼아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손권도 이를 한스러워 흙으로 장소의 집 문을 막았다. 장소도 안에서 흙으로 문을 봉했다.

장소의 예측대로 공손연은 장미와 허안을 죽였다. 이 소식을 들은 손권은 장소에게 여러 번 위로하고 사과했지만 장소는 완강했다. 그래서 손권은 궁궐을 나와 장소의 집 문을 지나치며 장소를 불렀다. 장소는 병이 심하다며 사양했다. 손권은 그의 집 문을 불태웠다. 장소는 다시 방문을 굳게 잠갔다. 손권은 사람을 시켜 불을 끄고 문밖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장소의 여러 아들들이 나서 끝내 손권은 그를 수레를 태우고 궁궐로 돌아갔다. 손권은 자신을 깊이 반성했고 장소는 그 뒤로 어쩔 수 없이 조회에 참석했다.

장소는 유명한 명사 최염처럼 용모가 당당하고 근엄하며 위엄 있는 풍모를 지녔다. 손권은 장소를 매우 어려워했다.

나는 장공과 말할 때는 감히 망언하지 못하오.”

장소는 제갈량 앞서 탁고를 받은 인물이다. 그러나 장소는 제갈량처럼 군주를 고립시키고 자신이 크고 작은 나라를 일을 관장하지 않고 손권을 위대한 군주가 되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간언하는데 그쳤다. 손권에게는 장소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그만큼 그늘도 컸고 매우 불편했다. 손권은 몇 번이고 칼을 빼 들었으나 끝내 참고 참아 장소는 천수를 다 누렸다.

한편 손권이 장소를 상승으로 임명하지 않은 것은 불편한 관계인 것도 있었겠지만 장소는 북방에서 온 이주민이고 손권이 내부 결속을 위해 본토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목적으로 장소를 배제하고 손소, 고옹 등을 중용했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다.

어찌 되었든 장소는 손권을 훌륭한 군주로 성장시키는데 지대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제갈량과 대비되는 신하로서의 본분이었다. 제갈량은 권력의 욕심에 취해 너무 지나치게 노심초사하여 53세에 생을 마감했고 장소는 느긋하게 본분을 지키며 81세에 세상을 떠났다. 요즘 시대라면 100세를 넘기는 수명을 살았던 것이다. 유생들은 대개 수명이 길다. 유가학파들은 제갈량을 공자묘에 모시지만 사실 제갈량은 유가보다 법가에 가깝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다수 유생들은 오래 사는데 비해 다수 법가들은 단명이다. 공자는 73, 맹자는 83세였고 법가인 상앙과 이사는 정확한 나이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둘 다 비명에 죽었고 50세 초반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비자는 47세에 모함으로 죽임을 당했으니 학자 치고는 굉장히 단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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