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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재해석(24)
24. 유비의 핵심 모사인 방통과 법정
[446호] 2021년 09월 01일 (수)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조조에게는 순욱, 곽가, 가후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유능한 모사들이 많았다. 이에 비해 유비는 이 면에서 운이 적었던 것 같다.

유비가 한실 부흥의 꿈을 안고 천하를 주유하면서 주인을 다섯 번이나 바꾸어 가다보니 확실한 근거지를 만들지 못한 것은 그의 수하에 유능한 모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관우와 장비는 훌륭한 장수일 뿐 계책과 책략으로 유비를 돕지 못했다. 까놓고 말하자면 관우나 장비는 몸으로 싸우는 데는 유능하지만 머리로 싸우는 모사가 아니었다. 건안 12(207) 유비는 제갈량을 만나 적벽대전의 승리로 수혜자가 되긴 했지만 확실한 근거지 마련에는 거리가 멀었다. 유비가 제갈량을 모셔온 이유는 머리로 싸우는 계책을 위한 것이었는데 군사 면에서 제갈량의 머리도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유비의 근거지는 제갈량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방통과 법정을 만나고 나서야 마련되었다.

   

익주 탈환 일등 공신인 방통

 

방통은 천성이 인물을 평가하기 좋아하고 사람을 길러내는 일에 힘썼다. 그는 늘 말할 때마다 칭찬만 해서 듣는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말대로 하면 칭찬하면 고래도 춤추는 효과였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이를 괴이하게 여겨 물어보았다. 방통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천하는 크게 어지럽고 정도는 무너졌으며 착한 사람은 적고 나쁜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풍속을 일으키고 도덕적 행위를 드날리게 하려 하면서 담론을 좋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우러를 가치가 모자랄 테고 우러를 가치가 모자라면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적을 것입니다. 지금 칭찬한 열 명 가운데 다섯 명은 잃어도 그 절반을 얻어 세상의 교화를 높일 수 있으며 뜻있는 선비가 노력하게 하니 또한 옳지 않겠습니까?”

방통은 실로 자기만의 철학이 뚜렷한 인물이었다.

오나라에 육적(陸勣)과 고소(顧劭)란 사람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방통에게 이 두 사람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그러자 방통이 말했다.

육 선생은 느리고 둔한 말이나 빠른 발의 힘을 갖고 있는데 느리고 둔한 말은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한 사람만 실어 나를 뿐입니다. 고 선생은 느리고 둔한 소이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곳까지 갈 수 있겠지요. 느리고 둔한 소는 하루에 3백리 가는데 싣는 것이 어찌 한 사람의 무게뿐이겠습니까?”

잡지에 인물품평으로 몸값이 꽤 나가던 허소(許劭)가 방통을 찾아 가서 물었다.

그대는 사람을 알아보기로 유명한데 나와 당신 중 어느 쪽이 낫습니까?”

방통이 말했다.

세속을 교화시키고 인물의 우열을 판단하는 점에서는 내가 당신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제왕의 비책을 생각하고 인간의 돌고 도는 운명의 요체를 파악하는 면에서는 내 쪽에 하루쯤 느슨함이 있는 듯합니다.”

방통이 유비의 모사가 된 것은 유비가 형주를 차지한 뒤였다. 방통은 유비에게 익주를 평정해야 확실한 근거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설득하여 말했다.

형주는 황폐하고 인물도 없으며 동쪽에 오나라 손씨가 있고 북쪽에는 조씨가 있어 삼국정립의 계획이 뜻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지금 익주의 나라는 풍요롭고 백성도 굳세며 인구는 백만이고 네 부대의 병마도 출동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재물을 다른 데서 구하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 이것에 기대어 큰일을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에 유비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와 불과 물 사이인 자는 조조입니다. 조조가 엄격하다면 나는 관대하고 그가 힘에 의지한다면 나는 인덕에 의지합니다. 으레 조조와 반대로 행동한 일은 처음부터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작은 일 때문에 천하에 신의를 잃는 것은 내가 취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자 방통이 말했다.

변화를 꾀하는 시대에는 진실로 한 길로 결정될 수만은 없습니다. 약한 자를 병합하고 어리석은 자를 치는 것은 오패의 일이었습니다. 무리한 수단으로 익주를 빼앗아도 바른 방법으로 유지하고 도의로써 그들에게 보답하며 일이 안정된 뒤에 대국으로 봉한다면 어찌 신의에 어긋나는 일이겠습니까? 지금 취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뿐입니다.”

유비는 방통의 계책에 따라 유장의 명장인 양회와 고패의 목을 베고 군사를 돌려 성도로 향해 가면서 지나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다. 유비는 부성에서 크게 연회를 베풀어 술을 차리고 음악을 울리면서 방통에게 말했다.

오늘 연회는 즐겁다고 할 만합니다.”

방통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나라를 토벌하고 즐거이 여기는 것은 어진 사람의 군대가 아닙니다.”

유비는 즐거운 분위기에 초 치는 방통의 말에 노여워서 말했다.

무왕이 주나라를 토벌할 때 앞에는 노래 부르는 이가 있고 뒤에는 춤추는 이가 있었으니 어진 사람이 아니었겠군요? 그대 말은 맞지 않소. 빨리 일어나 나가시오.”

그래서 방통은 머뭇거리다가 물러났다. 유비는 곧바로 후회하고 돌아오기를 청했다. 방통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지만 돌아보고 사과하지 않고 태연히 음식을 먹었다. 유비가 말했다.

방금 한 논쟁에서 누가 잘못한 것입니까?”

방통이 대답했다.

군신(君臣)이 함께 잘못했습니다.”

유비는 크게 웃고 처음처럼 연회를 즐겼다.

제갈량은 형주에 남아서 지키고 있었고 방통이 유비를 수행하여 승리의 여세를 몰아 진군하여 낙현을 에워쌌다. 방통은 병력을 거느리고 성을 공략하다가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때 그는 36세였다.

방통은 유비의 천하삼분지계의 근거지인 익주 탈환책을 내고 화살에 맞아 아깝게 전사한 모사였다. 비록 유비를 오랫동안 수행하지는 못했지만 유비는 몹시 애통했고 방통에게 관내후 작위를 추종하고 시호를 정후(靖侯)라고 했다.

 
   

 유비를 도와 한중을 평정한 법정

 

 <삼국연의>를 읽어본 독자라면 공통적으로 생기는 의문이 하나 있다. 유비가 관우의 죽음을 복수하려고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이릉에서 크게 패하여 돌아왔다. 역사에서는 이 전투를 이릉대전이라 하는데 이릉대전은 관도대전과 적벽대전과 더불어 삼국시대 삼대대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독자들의 의문은 이렇다. ‘귀신 같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기가 막힌 계책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인간이 아닌 신에 가까운 제갈량은 그 당시 뭘 하고 있었나?’는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이렇다. 제갈량은 유비를 수행하지 않고 형주를 지키고 있었고 방통과 법정이 수행하여 계책을 내는 모사역할을 맡고 있었다. 제갈량은 늘 법정의 지모와 책략이 뛰어나다고 보았다. 유비가 제로 일컬어진 뒤 동쪽의 손권을 정벌하여 관우의 원수를 갚으려 할 때 신하들이 대부분 간언했지만 유비는 하나도 따르지 않았다. 장무 2(222) 대군이 패하여 돌아오자 제갈량이 탄식하며 말했다.

만일 법효직(법정)이 있었다면 주상이 동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말렸을 것이고 설령 동쪽으로 갔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위험한 데로 기울이지는 않았을 텐데.”

제갈량의 이 말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당시 유비는 제갈량보다 법정을 더 믿고 신뢰가 깊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비의 모사가 된 법정은 그에게 한 끼 밥을 먹도록 하는 은덕을 베풀거나 작은 원망이라도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은혜를 갚거나 보복했으며 자신을 헐뜯고 다치게 한 사람을 여러 명이나 죽였다. 어떤 사람이 제갈량에게 말했다.

법정은 촉군에 지나치게 멋대로 하고 있으니 장군께서는 주공에게 말씀드려 형벌과 상을 내리는 그의 행위를 누르게 해주십시오.”

제갈량이 대답하여 말했다.

주공이 공안에 있을 때 북쪽으로는 조조의 강대함을 두려워하고 동쪽으로는 손권의 압박을 걱정하며 가까이로는 손부인 신변에 변고가 생길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때는 진퇴양난의 처지였습니다. 법효직은 주공을 도와 하늘 높이 날도록 하고 다른 사람에게 또다시 압박 받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법정이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을 금지시킬 수 있겠습니까!”

유비도 제갈량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인 법정, 그는 어떤 공이 컸기에 무한 신뢰를 받고 있었을까?

법정은 본래 유장의 부하였다. 익주의 별가 장송은 법정과 친하게 지냈다. 이들은 유장이 큰일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여겨 남몰래 늘 탄식했다. 장송은 조조를 만나보고 유장에게 조조와의 관계를 끊고 유비와 교류하기를 권유했다. 법정은 장송의 추천에 의해 유장의 사자로 유비를 만났다. 때는 마침 조조가 장수를 보내 장로를 정벌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유장이 두려워 하루 빨리 유비의 도움을 바라고 있어 법정은 유비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법정은 처음부터 유장을 버리고 유비에게 의탁할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은밀히 유비에게 계책을 바쳤다.

장군의 영웅다운 재략에 의지하고 유목(劉牧, 유장)의 유약함을 틈타십시오. 장송은 주()의 팔다리 같은 신하이므로 안에서 호응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익주의 풍부한 자원에 의지하고 하늘로부터 받은 험준한 지세에 기대십시오. 그러면 이로써 사업을 이루는 일이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유비는 법정의 계책을 그럴듯하게 여겨 전투에 나섰다. 유장의 부하 정도(鄭度)가 말했다.

유비가 이르러 싸움을 걸어와도 응하지 마십시오. 오래도록 식량 얻을 곳이 없으니 백일도 못되어 틀림없이 스스로 물러갈 것입니다. 그들이 달아날 때 뒤쫓으면 반드시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유비는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스러워하며 법정에게 물었다.

법정이 말했다.

유장은 정도의 계책을 끝까지 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장은 정말 법정의 말처럼 했다. 그는 자기 부하들에게 말했다.

나는 적에게 맞서서 백성을 안정시킨다는 말은 들었어도 백성을 움직여 적을 피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소.”

그러고는 정도를 파면시키고 그 계책을 쓰지 않았다.

유비가 성도를 둘러싸자 유장의 촉군 태수 허정이 성을 나와 투항하려고 했지만 일이 발각되어 이루어지지 못했다. 유장은 위급함이 가까이 닥쳤기 때문에 허정을 죽이지 않았다. 유장이 항복한 뒤 유비는 이 일 때문에 허정을 경시하고 등용하지 않았다.

법정이 나서 말했다.

천하에는 헛된 명예를 얻어 실속이 없는 자가 있는데 허정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 주군께서는 막 대업을 세우셨으므로 천하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 없습니다. 허정의 헛된 명성이 온 나라에 퍼져 있는데 그를 예우하지 않는다면 천하 사람들은 주군께서 현명한 사람을 천시하여 세상 사람들의 눈을 미혹시켜야 하니 예전에 연나라 소왕(昭王)이 곽외(郭隗)를 예우했던 바를 따르십시오.”

그래서 유비는 허정을 후하게 대우했다.

건안 22(217) 법정은 유비에게 한중을 치라고 설득했다.

지금 하후연과 장합의 재능과 책략을 보면 우리 장수들보다 낫지 못하니 병사들을 출동하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이기면 농업을 발전시키고 식량을 쌓아두며 틈을 살피십시오. 상이면 강적들을 소멸시켜 황실을 높이 받들 수 있고, 중이면 옹주와 양주를 잠식하여 영토를 넓힐 수 있으며, 하이면 요충지를 굳게 지켜 지구전을 꾀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준 것이니 기회를 잃을 수 없습니다.”

유비는 이 책략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곧 한중으로 향했으며 법정도 따라갔다.

조조가 하후연이 죽고 한중을 빼앗겨다는 소식을 듣고 말했다.

나는 본래 현덕(유비)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없음을 안다. 틀림없이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법정을 상서령, 호군장군으로 삼았다. 이듬해에 그가 죽었는데 그때 나이가 마흔 다섯 살이었다.

진수는 <삼국지>에서 이렇게 총평했다.

법정은 일의 성공과 실패를 정확히 예견하며 기이한 계획과 책술을 가진 사람이지만 평소 덕성으로는 칭찬 받지 못했다.”

김 정 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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