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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는 뻔뻔함과 음흉함 및 결단력을 갖춰야
[434호] 2021년 03월 01일 (월)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군주는 뻔뻔함과 음흉함 및 결단력을 갖춰야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들의 성공조건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다. 청말 민국 초에 활약했던 학자 이종오(李宗吾)는 그의 저서후흑학(厚黑學)에서 영웅이 되는 조건을 뻔뻔함과 음흉함을 꼽았다. 여기서 뻔뻔함이란 얼굴에 철판을 깐 것처럼 수치를 모르게 사람의 낯짝이 두껍다는 면후(面厚)이고, 음흉함이란 속맘이 엉큼하게 검은 사람을 가리키는 심흑(心黑)이다.

이종오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달인으로 유비와 조조를 꼽았다. 실제로 유비는 공손찬, 여포, 원소, 조조, 유표 등 다섯 주인을 바꿔가면서 더부살이로 얹혀살면서도 전혀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 실로 낯짝에 철판을 깐 것처럼 두꺼웠다. 조조는 동탁한테 쫓겨 다니던 도중에 부친의 친구 집에 들러 신세지려고 했는데 주인이 양을 잡아 손님을 환대하기 위해 칼을 가는 소리에 놀라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착각하고 선수를 쳐 그 가족을 몰살했다.

내가 남을 버릴지언정 남이 나를 버리지 못하게 하노라.”

조조의 유명한 이 말이 그때 생겨난 것이다           

   

조조

   

유비

 

 

 

 

 

 

 

『삼국연의』저자 나관중은 조조의 이 말을 뻥튀기해서 다음과 같이 바꿔놓았다.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지 못하게 하겠노라.”

 

속맘이 검기로 유명한 이 말이 후세에 전해오면서 조조는 천하의 나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종오는 조조가 속맘이 이토록 검었기 때문에 오히려 큰 영웅이 되었다고 역설한다.

뻔뻔하지 못하거나 음흉하지 못한 사람은 큰 영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이종오의 주장이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한신과 항우를 예로 들었다.

한신은 동네 건달의 가랑이 사이를 기는 수모를 당했지만 참고 견뎌 후에 크게 출세하여 유방이 한 제국을 세우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신은 뻔뻔함을 갖췄으나 음흉하지 못해 천하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 유방과 항우가 한창 천하를 다툴 때 괴철이 한신에게 유방으로부터 독립해 천하를 삼분한 뒤 힘을 길러 천하를 도모할 것을 권유했다. 이것이 중국역사상 천하삼분지계의 원형이다. 그러나 한신은 유방의 신세를 외면하지 못해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곁을 지켰다. 한신의 이런 결과는 결국 그가 음흉하지 못한 탓이었다.

항우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영웅이다. 그가 실패한 이유는 수모를 참지 못하는 필부지용즉 뻔뻔하지 못했고 속맘이 잔인하지 못하는 부인지인즉 음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뻔뻔한 면후와 음흉한 심흑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가까운 예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얼굴이 두껍지 못해 다시 말하자면 뻔뻔하지 비운을 맞았고 노회찬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두 분 모두 세인의 존경을 받는 정치인이었지만 두 분의 가족과 그 분들을 좋아했던 국민들한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 달 소비가 수백만원임에도 불구하고 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노라고 선포한지도 수년이 지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천수를 다 누리고 있다.

필자는 수년 전에 왜 반기문 전 유엔 총장이 대통령이 될 수 없는가는 글을 발표했다
. 이 분은 모범적인 공직자이긴 하나 정치인 특히 대통령감은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었다. 그 이유는 이 분이 얼굴이 뻔뻔하지 못하고 속맘이 음흉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격미달이라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뻔뻔함과 음흉함만 갖추면 나라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 면후와 심흑에 플러스 적당한 인의도덕을 갖춰야 한다. 여기서 적당함이 중요한데 너무 인의도덕에 치우치면 큰일을 도모할 수 없고 거꾸로 너무 인의도덕을 벗어나도 파렴치한 인간이 되기에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다.

이종오는 말한다.

뻔뻔함과 음흉함을 사적으로 사용하면 비루한 인간이 되고 공적으로 사용하면 천추에 이름을 남기는 위인이 된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뻔뻔함과 음흉함의 달인이다. 그런데 그는 왜 결말이 비루해졌을까? 면후와 심흑을 사적인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면후와 심흑을 갖춰야한다는 두 가지 조건 외에 필자는 결단력이라는 조건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중국 사람들은 인간의 성공조건을 천시 지리 인화(天時 地理 人和)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동안 검증되어 온 이론이기 때문에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는 못하겠지만 100% 동의하기는 어렵다. 만약 이 이론이 맞는다면 삼국시대 막을 올린 원소는 조조에 비해 천시 지리 인화가 기가 막히게 갖춰져 있었는데 왜 원소가 실패하고 조조가 성공했을까? 원소의 가문은 4세 삼공의 집안으로서 출신이 우수했다. 조조는 환관집안 출신이라 천시 받았다. 반동탁 연맹의 맹주를 맡은 원소는 전국적으로 따르는 무리가 굉장히 많았고 동탁이 죽고 나서 선비집단과 지방호족들 절대다수가 원소에게 의탁했다. 생김새도 원소는 미남이었고 조조는 아예 원소와 비할 바가 못 되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조조가 이겼다.

그 이유를 원소와 조조가 생사결단을 내는 관도대전을 앞두고 조조의 책사 순욱이 했던 말을 복기해보면 알 수 있다.

지금 세상에 명공과 천하를 다툴 수 있는 자는 원소밖에 없지만 사실 그는 겉으로는 강해보이나 속은 텅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명공께서는 원소에 비해 네 가지 점에서 강합니다. 첫째 원소는 도량이 좁아 인재를 기시하고 질투하여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명공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는 도량이 넓습니다. 둘째 원소는 반응이 둔하고 우유부단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언제나 반 박자 늦습니다. 명공께서는 늘 제때에 즉시 결단을 내릴 뿐 아니라 그 변화를 헤아리는데 능합니다. 셋째 원소는 군대를 엄하게 다스리지 못합니다. 명공께서는 군법의 집행이 태산같이 무거워 믿음이 강합니다. 넷째 원소는 온갖 수단을 부려 명예를 추구하고 있어 주변에 진정한 참모가 없습니다. 명공께서는 진실과 진심을 추구하기 때문에 실사구시 적이어서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도자의 조건에 있어서 뻔뻔함과 음흉함보다 결단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왈,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최선은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고, 차선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이고, 최악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는 것이다.”

지도자가 옳은 결정을 내린다면 좋겠지만 가령 잘못된 결정일지언정 결정을 내리지 않기 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조국사태와 추·윤 갈등이 1년 내내 지속되어 사회가 부산스런 상황에서 지도자가 결정을 내리지 않아 무척 혼란스러웠다.

중국 3대 기서에 속하는 당나라 때 조유(趙蕤)가 지은반경에 이런 말이 있다.

소와 말에게 같은 수레를 끌게 하면 백 걸음도 못 간다.”

실세인 두 신하가 이 되어 1년 내내 싸웠으니 그 행정이 잘 돌아가기가 만무하다.

한비자에 이르길, “실세 두 신하가 격렬하게 싸우면 그 나라는 망한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니 두 신하가 격렬하게 싸워도 망하지는 않지만 지도자들이 나라를 무난하게 다스리려면 왕의 수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한 나라의 주인이 된 자와 주인이 되지 못한 자 간의 차이가 결단력에 달린 사례가 많고도 많은데 본문에서는 장개석과 장학량의 사례를 들어보려고 한다.

1920년대 중국에서 일등 신랑감으로는 장학량이었고 일등 신붓감으로는 송미령이었다.

송미령은 어릴 적부터 미국유학(힐러리 졸업한 웨슬리대학)을 다녀왔고 가문은 4대가족에 속하는 명문이고 특히 재색을 겸비한 여인으로 대륙전체에서 가장 선망 받는 여인이었다.

수년 전 필자는 한국 산업인력공단이 공모한 재한중국동포 한국생활 체험기를 내용으로 한 작품 심사를 맡은 적 있었다. 그때 한국작가협회 사무총장도 심사원이었는데 이름이 미령이었다. 성이 무엇이었던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이름은 미령이 틀림없었다. 혹시나 해서 물었다.

작가님의 작명에 중국 송씨 자매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아버지가 유학자인데 딸이 중국의 송미령처럼 훌륭한 여인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로 미령이라고 지었다는 대답이었다.

송미령은 그만큼 한국에서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훌륭한 인물이다.

장학량은 동북군벌 장작림의 아들이다. 그는 어릴 적 서구적인 교육을 받았다. 봉천에 와 있는 국제적인 유럽단체에서 영어를 배웠고 서구인들이 좋아하는 격검, 승마, 무도 등 여러 가지를 익혔다. 장학량의 영어실력은 굉장했다. 11세에 미국유학을 다녀온 송미령은 중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했다. 장학량이 송미령과 대화할 때 영어로 주고받았다. 서구적인 문화에 익숙해 있던 송미령은 역시 서구적인 문화를 마스터한 장학량에게 빠져버렸다. 잘생긴 외모에 이미 10대에 소수(少帥) 된 장학량에게 송미령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여인들이 결혼하고 싶은 일등 신랑감이었다. 이탈리아 총리 파시스트 두목 무솔리니도 장학량을 좋아했고 그의 딸은 장학량과 연애하고 싶어 환장할 정도였다.

장학량이 젊어서 세인의 주목받을 만큼 뛰어난 인물로 성장한 것은 스승을 잘 만난 것이 크게 한몫 했다.

장학량이 15세 때 중국에서 명문인 남개대학(南開大學)을 설립한 장백린이 봉천에 와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장학량도 수강했다. 장백린은 강연 말미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내가 있어 중국의 미래가 밝아올 것이다.”

장백린은 이 말을 연거푸 세 번이나 외쳤다. 갑자기 청중석에서 손을 들고 질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장학량이었다.

당신이 뭔데 그토록 구국영웅으로 포장하는가?”

15세 밖에 안 되는 소년의 질문에 장백린은 더욱 열렬하게 외쳤다.

내가 말한 내가 바로 너이다. 너야말로 미래 중국을 구할 수 있는 인물이다. 현재 중국 젊은이들이 이런 이념이 없기 때문에 중국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기하라!”

이 일을 계기로 장학량의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장학량에게 곽송령이라는 스승이 있었다. 장학량이 학교를 졸업하고 군의 장교가 되자 스승이 참모를 맡았다. 당시 장학량의 군대가 군벌소탕 전쟁에서 승승장구했는데 스승의 역할 덕분이었다.

3천 년 전 문왕이 말했다.

최상의 군주 곁에 있는 자는 모두 스승이며 중등의 군주 곁에 있는 자는 전부 친구이고 하등의 군주 곁에 있는 자는 관리이고 망국의 군주 곁에 있는 자는 전부 시종들이다.”

대한민국 최근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을 보좌하는 청와대 보좌진은 어느 등급에 속하는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련다.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박근혜가 최순실의 아바타가 아니냐는 세간의 시선에 박근혜는 이렇게 해명했다.

최순실은 나의 시종과 같은 사람이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시종 같은 사람이 보좌했으니 망국의 군주로 탄핵되는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장학량이 아무리 촉망받는 일등 신랑감이라도 당시 중국 남자들은 14~15세가 되면 이미 가부장적 혼인풍속에 의해 결혼한 몸이었다. 그는 양가가 맺어준 우봉지라는 부인이 있었다. 우봉지는 장학량의 조강지처였다. 그 후 봉천 어느 한 모임에서 조일적(趙一荻)라는 16세 낭랑처녀를 우연히 만났는데 둘은 한 눈에 서로 반해버렸다. 중국어로 말하자면 일견종정(一見鐘情)이었다. 조일적은 잡지 표지 모델로 선정될 만큼 매력적인 처녀였으니 첫 눈에 반할만 했다. 조일적인 당시 중앙정부 교통차관 조씨 가문의 64녀 중 막내였다. 그래서 그녀를 조씨네 넷째 아씨(趙四小姐)라 불렀다. 조씨 처녀는 가문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장학량과 결혼했다. 조강지처 우봉지는 1940년에 미국으로 이민 간 후 다시는 남편을 보지 못했고 조씨 처녀가 장학량의 54년 동안 연금생활을 곁에서 지켜주었다. 실로 귀감이 되는 진지한 사랑이었다.

송미령이 장학량과 간절한 맘으로 결혼하고 싶어 했고 부모도 동의했다. 그런데 왜 둘의 혼인이 이뤄지지 못했나? 장학량은 부인들과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 결국 송미령과의 결혼을 포기하고 말았다. 쉬운 말로 하자면 부인들을 정리하지 못해 송미령을 부인으로 맞을 수 없었던 것이다. 송미령도 당시 가장 촉망 받는 일등 신붓감으로서 어정쩡하게 서너 번째 부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장학량에 비해 장개석은 달랐다. 송미령에게 부인 셋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당신과 결혼하겠노라고 굳게 약속했고 결국 그 약속을 이행하여 이 둘은 부부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장개석

   

장학량

 

 

 

 

 

 

 

자아~,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장학량과 장개석의 결단력 문제이다. 전자는 우유부단하게 고민을 거듭한 끝에 끝내 부인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송미령과 부부를 맺지 못했던데 반해 장개석은 과감하게 부인들을 정리하는 결단력을 발휘하여 송미령과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장개석은 송미령과 결혼하기 위해 여러모로 무진장 애를 썼다. 예를 들어 장개석은 본래 독실한 불교신자였는데 송미령을 쟁취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했다. 장개석은 송미령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하느라 노력했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장개석이 송미령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아무리 길게 늘여놓아도 결국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의 결단력이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륙의 주인이 되려는 사내의 결단력이 이 정도는 되어야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장학량은 아무리 훌륭해도 대륙의 주인이 되려는 야심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두 사내의 차이점이라면 바로 미래 야심에 대한 스케일이 달랐다는 것이다.

장학량이 1936년 서안사변을 일으켜 장개석을 납치하여 구금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그에게 장개석을 살려두면 뒷일을 감당할 수 없으니 차라리 죽이라고 권유했다.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절박하고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나 장학량은 장개석을 죽이지 않았다. 이유는 군벌할거시대를 종지부 찍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장개석인데 그를 죽인다면 중국은 또 다시 분열과 대혼란의 시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의 미래를 위해 죽일 수 없다고 말했다. 장학량은 장개석을 죽이고 자신이 중국대륙의 주인이 되려는 야심이 없었다. 상황이야 어찌되어든 장학량의 그릇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살려둔 장개석은 그럼 장학량을 내버려 둘까? 백 번 천 번도 죽이고 싶었는데 송미령이 자신이 좋아했던 사내, ‘옛 애인이 죽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어 장개석을 설득하여 살려두었다. 그 후로 54년 동안 연금하면서도 끝내 죽이지 않았다. 장개석이 송미령의 입김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송미령의 미국 및 유럽과의 외교역할 때문이었다.

군주가 갖춰야할 조건 뻔뻔함과 음흉함 및 결단력, 요즘 문재인 정부가 돌아가는 정세와 차기 대선후보 여론을 지켜보다가 중국 고전한비자반경후흑학이 떠올라 이렇게 필을 놀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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