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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재해석(16)
[425호] 2020년 10월 16일 (금)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16. 조조의 창업에 공이 컸던 친족들

기원 190년부터 200년 사이 조조의 최대라이벌은 원소였다. 원소의 가문은 4대 삼공을 지낸 명가였기 때문에 그의 친인척과 또 그 친인척들과 맺은 인연으로 얽힌 명문가족들까지 합치면 환관가문의 출신인 조조로서는 원소의 세력과 아예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절대적인 우세였던 원소를 조조가 이긴 데는 그의 친인척들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원소와 원술은 친형제라는 설도 있고 사촌 형제라는 주장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 두 형제는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서로 상대를 죽이지 못해 안달을 떨었다. 원소가 죽고 난 후에도 그의 아들 원담과 원상 또한 서로 잡아먹지 난리도 아니었다. 보고 배우고 자란 탓이었는지, 아니면 서로 물고 뜯는 DNA를 부전자전으로 이어받았는지? 아무튼 당시 원소의 형제가 힘을 합쳤더라면 조조가 여럿이라도 그들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조조가 원소를 이긴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족과 친인척의 끈끈했던 우애가 크게 한몫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삼국지>에서 저자는 조조의 많고 많은 친족 중에 조조의 창업에 가장 도움이 컸던 조인(曹仁), 조홍(曹洪), 조휴(曹休), 조진(曹眞)을 한 열전으로 묶어 기록을 남겼다.

하늘이 내린 장수 조인

조인은 조조의 사촌동생이다. 어려서부터 활쏘기, 창던지기, 사냥을 좋아했다. 훗날 호걸들이 일제히 일어났을 때 조인도 은밀히 젊은이들을 모아 1천 명을 이끌고 회수와 사수 일대를 전전하였다.

조조가 원술을 격파할 때 조인이 죽이거나 사로잡은 적군이 매우 많았다. 조조를 따라 서주를 정벌할 때 조인은 항상 기병을 이끌고 선봉에 섰다. 그는 별도의 군대로 도겸의 부장 여유(呂由)를 공격하여 그를 격파하고 돌아와 팽성의 대군과 합류하여 도겸의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조조가 여포를 토벌할 때 조인은 별도의 군대로 여포의 대장 유하(劉何)를 사로잡았다. 조조가 황건적을 평정하고 천자를 맞이하여 허현에 수도를 세웠는데 조인은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조조가 장수를 정벌할 때 조인은 별도의 군대를 이끌고 가까이 있는 현을 공략하고 그곳의 남녀 주민 3천여 명을 포로로 잡았다. 조조가 장수에게 쫓겨 병사들이 사기가 꺾여 있을 때 조인이 격려하여 일어나도록 하여 조조도 감동 받고 용기를 내어 싸우게 되었고 끝내 장수를 물리쳤다.

조조가 원소와 싸울 때 유비는 원소의 편이었다. 조인이 유비를 공격하였는데 유비군대는 달아났고 자주 반기를 들었던 여러 현을 전부 되찾았다.

하북이 평정된 후 조인은 조조를 따라 가서 호관을 포위했다. 조조가 명령을 내렸다.

성이 함락되면 모두 산 채로 매장하라.”

이때의 조조는 아직 정치적으로 그다지 성숙되지 않았을 때였다.

조인이 조조에게 말했다.

성을 포위할 경우에는 반드시 그들에게 살 수 있는 문을 보여주어 그 살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지금 공께서 반드시 그들을 죽이라고 하시니 성 안에서는 사람들을 거느려 스스로를 지키고 있습니다. 더욱이 성은 견고하고 식량이 많으므로 그들을 공격하면 우리 병사들이 부상을 입을 것이고 그들을 포위하여 달아나지 못하게 지킨다면 매우 오랜 시일을 낭비해야 합니다. 지금 병사들을 견고한 성 아래 머물게 하여 필사적으로 대항하는 적군을 공격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조조가 그의 의견을 따르니 성안 사람들은 항복했다.

형주를 평정하러 갔을 때 조인은 오나라 장수 주유를 상대했다. 적군은 많고 아군은 적어 금방 포위되었다. 장수 우금이 삽시간에 포로가 되었다. 모두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을 때 조인만이 의기가 치솟고 있었다. 분노한 그가 말을 가져오라고 명령하니 진교 등이 함께 조인을 한사코 붙잡으며 말렸다.

적군이 너무 많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설령 수백 명을 잃는다고 한들 무슨 손해가 있습니까? 이것을 알면서도 장군 혼자 그들에게 가신단 말씀입니까?”

조인이 이 말을 듣지 않고 갑옷을 입고 말에 오른 다음 휘하의 기병 수십 명을 이끌고 성을 나갔다. 조인이 적군으로부터 1백여 보쯤 떨어진 도랑에 다다랐을 때 진교 등은 조인이 마땅히 도랑에 머물 것으로 생각하고 우금을 원조하는 형세를 취하려고 했다. 그러나 조인은 바로 도랑을 건너 곧장 앞으로 나아가 적의 포위망을 뚫고 들어갔고 덕분에 우금 등은 곧 탈출할 수 있었다. 미처 포위망을 뚫고나오지 못한 병사들이 있음을 본 조인은 다시 말머리를 돌려 겹겹의 포위망을 뚫고 병사들을 구출했다. 진교 등은 처음에 조인이 나가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으나 조인이 성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찬탄하며 말했다.

장군은 정말로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구나.”

조인은 어렸을 때 행실이 방탕했지만 성장하여 장수가 되면서 엄격하게 법령을 받들어 항상 법조문을 옆에 놓고 그것에 따라 일을 처리했다. 조인은 조조의 패업에 공이 컸으므로 조비가 즉위하자 그를 대장군에 임명했다.

타던 말을 내주어 조조를 구한 조홍

조홍도 조조의 사촌동생이다. 조조가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동탁을 토벌하려고 형양까지 왔다가 동탁의 대장 서영에게 패했다. 조조는 타고 가던 말을 잃었고 적군의 추격은 너무도 빨랐다. 조홍이 말에서 내려 자기 말을 조조에게 주자 조조는 사양했다.

조홍이 말했다.천하에 저 조홍은 없을 수 있지만 당신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는 걸어서 조조를 수행하여 변수까지 왔는데 뜻밖에도 물이 너무 깊어 건널 수 없었다. 조홍은 강가를 따라가 배를 찾아 조조와 함께 물을 건너 초현으로 달려 돌아왔다. 양주자사 진온이 평소 조홍과 친하게 지냈으므로 조홍은 사병 1천여 명을 이끌고 진온이 있는 곳으로 가서 병사를 더 모은 다음 여강군에서 정예병 2천여 명을 얻고 동쪽으로 단양에 가서 또 수천 명을 얻어 용강에서 조조와 합류했다. 조조가 서주를 정벌할 때 장막이 조조를 배반하고 연주를 내주어 여포를 맞이했다. 당시에 기근이 심했으므로 조홍은 병사들을 앞쪽으로 두고 나아가게 하여 먼저 동평과 범을 점거하고 식량을 모아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조조가 복양에서 장막과 여포를 공격하니 여포는 패하여 달아났고 조홍은 동아를 점거하고 군사를 돌려 제음, 산양, 중모, 양무, , 밀 등 10여 현을 공격하여 모두 점령했다.

조홍은 유표를 정벌하여 무양, 음엽, 도양, 박망 등지에서 유표의 다른 장수들을 무찔렀다.

조홍은 공이 커 위장군, 표기장군, 야왕후(野王后)로 되었다가 도양후에 옮겨 봉해졌다.

본래 조홍은 집안은 부유했지만 성품은 인색했다. 조비가 젊었을 때 조홍의 집에서 재물을 빌리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하고 항상 그를 미워했다. 조비가 즉위한 후 조홍의 식객이 법을 어긴 것을 구실로 조홍을 옥에 가두고 사형을 선고했다. 많은 신하가 힘을 합쳐 그를 도우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변 태후가 곽후에게 말했다.

오늘 조홍을 죽인다면 내일 나는 문제에게 칙령을 내려 당신을 황후 자리에서 내쫓을 것이오.”

변 태후는 또 조홍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과 같은 영화가 있을 수 있느냐고 꾸짖으면서 석방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조홍은 선제의 공신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조비의 이와 같은 박해에 대해 불평했다. 조예가 즉위한 후 조홍은 다시 후장군이 되었고 다시 낙성후로 봉해졌고 특진에 올랐으며 표기장군이 되었다. 

조씨 가문의 천리마 조휴

조휴는 조조의 족자(族子)이다. 천하가 혼란스러워지자 위지자 조씨 종족은 각기 흩어져 고향을 떠났다. 조휴는 열 살 때 아버지를 잃었는데 오직 전객(佃客, 노비보다 조금 높은 사람) 한 명만이 그와 함께 부친의 영구를 들어 임시로 안장하는 것을 도왔다.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강을 건너 오나라로 피했다. 후에 조조가 의로운 군대를 일으키자 성과 이름을 바꾸고 형주로 왔다. 길을 물어 북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조를 만났다. 조조는 조휴를 가리키며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우리 집안의 천리마로구나!”

조조는 그를 조비와 함께 머물도록 하고 아들처럼 보살폈다.

조휴는 서쪽을 정벌하러 나선 조조를 항상 따라다녔으며 조조는 그에게 호표기를 통솔하도록 하고 숙위를 맡겼다. 유비가 장수 오란을 보내어 하변에 주둔시켰을 때 조조는 조홍을 보내어 그를 정벌하도록 하고 조휴를 기도위로 임명하여 조홍의 군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오래지 않아 유비는 장비를 파견하여 고산(孤山)에 주둔시키고 조홍 군대의 뒷길을 끊으려고 했다. 많은 장수들이 이 일에 관하여 상의했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때 조휴가 말했다.

적병이 정말로 우리가 돌아갈 길을 끊으려고 한다면 응당 먼저 복병을 숨겨놓거나 잠행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장비는 먼저 과장되게 소리를 내어 세력을 과시하니 이는 그가 어떠한 능력도 없음을 뜻합니다. 그러니 응당 그들이 모이기 전에 오란을 재빨리 공격한다면 오란은 격파될 것이고 장비는 스스로 달아날 것입니다.”

조홍은 조휴의 건의에 따라 즉시 병사를 나가게 하여 오란을 공격했다. 오란을 크게 무찌르니 과연 장비는 달아났다.

손권이 장수를 보내어 역양(歷陽)에 주둔시켰을 때 조휴는 가서 그들을 격파했다. 또한 별도로 군대를 보내어 장강을 건너 무호에 있는 수천 채의 진영을 불태우도록 했다.

조예가 즉위하자 조휴는 장평후로 승진했다.

제갈량의 북벌을 여러 번 물리친 조진

조진도 조조의 족자이다. 조조가 군대를 일으켰을 때 부친 조소(曹邵)는 도당을 모으다가 주군(州郡)의 관원에게 살해되었다. 조조는 조진이 나이도 어리고 고아라는 점을 애틋하게 여겨 거두어 여러 아들과 똑 같이 길렀으며 조비와 함께 기거하도록 했다. 조진은 항상 사람들과 함께 사냥을 했다. 한번은 호랑이에게 쫓기던 조진이 뒤돌아서서 활을 쏘았는데 활 쏘는 소리가 나기 무섭게 호랑이가 꼬꾸라졌다. 조조는 그의 용맹함을 칭찬하고 호표기를 통솔하여 영구현(靈丘縣)의 도적을 토벌하도록 했다. 조진이 도적을 무찌르고 후에 편장군이 되어 병사들을 이끌고 하변에 있는 유비의 별장을 공격하여 무찔렀으므로 중견장군으로 임명되었다. 조조는 또 조진을 촉나라로 보내 군대를 보호하도록 하고 서항 등을 지휘하여 양평에 있는 유비의 별장 고상을 격파시켰다.

조비가 즉위하자 조진은 공이 커 상군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조예가 즉위한 후 조진은 소릉후(邵陵侯)로 봉해졌으며 대장군으로 승진했다.

대화 4(230) 조진은 낙양으로 가서 조예를 뵈었으며 대사마로 승진했고 칼을 차고 신을 신은 채 어전에 드나들고 조정에 들어올 때 종종걸음을 치지 않아도 되는 특별대우를 받았다. 신하로서의 이런 특별대우는 역사상 손꼽을 정도로 적었다.

조조의 사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족자들까지 조조의 창업을 위해 이렇듯 목숨을 바쳐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조조의 넓은 도량과 세상을 품는 기질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조조는 인류역사상 보기 드문 정치가라고 평가해도 과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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