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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성이 왕가? 동화 같은 얘기
[415호] 2020년 05월 16일 (토)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지난 430일 조글로에 <토템과 성씨의 기원>이란 글이 올라왔는데 저자는 유명한 남영전 선생이다. 제목도 나의 관심 분야이고 저자도 유명해서 눈길이 확 끌렸다. 그런데 읽고 나서 뜨거웠던 나의 머리는 찬물을 확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나는 남영전 선생이 토템설에 일가견이 있는 굉장히 명성이 높은 것으로 소문으로만 들어왔을 뿐 과거에 그의 글을 전혀 접해보지 못했다. 한편 연변의 일부 지식인들이 남영전 선생의 토템설을 못마땅해 공격한다는 소문도 들어왔다. 당시 남영전 선생을 공격한 지식인들을 향해 그가 잘 나가고 있어 질투시기에 찬 옹졸한 행위라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이런 얘기는 나와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렇게만 막연하게 여겨왔었는데 이번 그의 글을 접하고 나서 왜? 라는 의문이 듣던 소문과 달리 어느 정도 풀린 것 같다. 물론 글 한 편의 평가로 그를 전면 부정한다거나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 짓는 것은 옳지 못하지만 아무튼 그의 <토템과 성씨의 기원>이란 글은 너무 수준이 떨어지고 심지어 유치원 아이들의 동화 같은 주장이 있어 몹시 실망스러웠다.

우선 글 제목이 <토템과 성씨의 기원>이라면 토템의 유래와 토템의 흐름에 관해 학술적인 논술이 있어야 하고 성씨도 마찬가지로 유래와 흐름에 관해 같은 방식으로 서술할 줄 알았는데 그런 높은 차원의 논술이 전혀 없이 토템이란 친척을 의미하고 토템이 있어 성씨가 있게 되었고 성씨가 있어 사람과 사람사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아주 얕은 맛보기만 슬쩍 짚고 넘어갈 뿐이었다.

토템에 관련하여 너무 방대한 자료들이 많아 여기서 일일이 설명이 필요 없지만 남영전 선생의 간단명료한 방식으로 말하자면 토템이란 곧 부족의 부계 뿌리이다. 국가가 생겨남에 따라 토템이 사라지게 되었는데 유럽에서는 토템이 종교로 진화하고 중국에서는 토템이 조상문화로 자리매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토템이란 곧 조상을 의미하며 조상에는 여자는 제외되고 남자의 계보의 뿌리를 의미한다.

성씨라는 낱말도 남영전 선생처럼 두루뭉술하게 혼탁하게 일괄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먼저 성의 유래부터 살펴보자.

주준성의(朱駿聲)<설문통훈정성(說文通訓定聲)>에 의하면 성이란 것은 사람이 태어난 바를 나타낸다. ()라는 글자와 생()이란 글자로 분해되는데 회의자다. 이때 물론 생()을 성자(聲字)로 볼 수 있다. 옛날의 신령스러운 성인들은 모두 그 어미가 하늘에 감하여 아기를 낳아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칭하여 하늘의 아들(天子)이라고 하는 것이다. <춘추(春秋)>은공(隱公)8년조에 좌씨가 단 주해에 이르기를 하늘의 아들이 덕을 세울 때 그 태어난 바를 따라서 성을 받는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생각건대 신농의 어미가 강수(姜水)에서 살았고, 황제(黃帝)의 어미가 희수(姬水)에서 살았고, ()의 어미가 요허(姚虛)에서 살았기 때문에 바로 그 어미가 산 지명을 따서 그 성을 삼았다. 그러므로 성이란 어미의 생한 바를 따르는 것이다.”

성이 어미가 산 지명과 연관이 있다면 씨도 역시 마찬가지로 거주 지명과 연관이 있다. 이에 관해선 <통지씨족약서(通志·氏族略序)>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삼대(夏商周)에 성과 씨를 구분하였다가 한 대(漢代)부터 성과 씨의 구분이 없어진다. <통지·씨족약서>>에 의하면 삼대 이전에는 성과 씨를 둘로 나누고 귀한 자는 씨가 있고 천한 자는 이름만 있고 씨는 없었다. 그러므로 성을 씨라 부를 수는 있으나 씨는 성이라 부를 수 없다.”고 했다. 사마천은 <사기>를 지으면서 성과 씨의 구분을 없애고 혼동하여 썼다(姓氏之稱,自太史公始混而爲一). 허나 성과 씨의 구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예하면 복희는 성이 풍씨였다.’를 결코 복희는 씨가 풍성이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씨는 존칭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을 뿐 결코 성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본관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머리를 무겁게 지배하고 있어 씨를 붙이기를 좋아하며 성문화를 성씨문화라 하거나 상대의 성을 물을 경우 성씨가 무엇인가?’ ‘성씨를 어떻게 쓰는가?’하면서 씨를 붙인다. 한족은 상대의 성을 물을 경우 씨를 붙이지 않으며 대답하는 사람도 자신의 성에 씨를 붙이지 않는다. 우리민족이 성에다 씨를 붙여 최씨’ ‘김씨라 부르거나 본관에 씨를 붙여 밀양 박씨’ ‘김해 김씨라고 부를 경우 씨는 상대를 높이기 위해 붙이는 것이지 결코 씨가 성을 대체하거나 본관을 대체하지 않는다.

모두어말하자면 씨는 상대를 높이는 존칭이지 결코 성이 아니며 성을 대체할 수도 없다. 때문에 성과 씨, 본과 씨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할 때 될 수 있는 한 씨를 붙이지 말고 그냥 김가’ ‘최가라 하는 것이 합당하다. 중국학자들의 연구(오천명저, 중국신화연구)에 의하면 은상시대까지 중국(중국이란 국호는 3천 년 전 주나라 초기에 생겨났음)에는 2만 여개 씨족이 있었는데 각기 자기네 씨족명칭에 따라 성을 붙이게 되었다(華胥氏란 화서는 성이자 씨족명칭이다). 그러다가 주초에 분봉제와 정전제의 의해 화하제족(華之諸族)과 하지제족(夏之諸族)이 융합되어 화하족으로 통합됨에 따라 씨족이 부족으로 부족이 민족으로 변이하는 과정에서 본래 혈통을 중심으로 되어 있던 씨족 관념은 점차 희미해지고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관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진시황의 천하통일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다 방면의 통일국면을 맞게 됨에 따라 부족관념이 거의 사라졌고 또 한대(漢代)에 이르러 정치적으로 통일중앙집권제가 확실하게 자리매김 되었고 경제, 문화, 등 다 방면에서 전례 없는 발전을 이룩함에 따라 본래 화하족이 한족(한족은 수만 갈래 혈통이 문화를 토대로 묶어진 민족임. 민족이란 개념은 혈통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문화를 공통분모로 이루어진 집단공동체이다.)이라는 하나의 민족으로 대통합되었고 또 한족이란 통합민족 개념의 등장에 따라 주초 2만여 개 성씨가 대략 470여 개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백성이란 사회밑바닥에 있는 신분이 낮은 사람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굳어져왔는데 이는 성과 씨의 구분, 즉 성은 혈통을 의미하고 씨는 존칭을 나타내는 것으로 변이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백성을 절대 百氏라 말할 수 없다.

여기서 누누이 성과 씨에 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목적은 우리민족이 너무 무분별하게 성씨라는 말을 남발하고 있어 좀 자제하였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리고 남영전 선생의 최대 오류는 단군의 성을 왕씨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단군이 신화냐? 실존이냐는 논쟁은 무의미하지만 단군의 성이 왕가라는 주장은 정말 잠꼬대 같은 소리이다. 어떻게 토템설에 유명한 학자의 입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단군이란 한자 표기에 있어서 1280년에 지은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박달나무 ()’를 쓰고 있는데 7년 후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에서는 박달나무 ()’자가 아닌 제단이란 ()’자를 썼다. 나무 중에 박달나무가 가장 단단한 나무라서 숭배의 대상이 되어 단군을 檀君으로 표기하는 민속적인 신앙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檀君보다 壇君)’이 더 맞는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왜냐면 당시에는 제사가 으뜸의 행사였고 대사였다. 부족의 우두머리는 반드시 제사장이었으며 국가가 생겨난 초기에는 제사장이 왕을 겸했는데 이것을 제정일치 정치체제라고 부른다. 물론 근대시기까지 제정일치 국가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역사 흐름에서 살펴보면 단군은 당시 제사장을 의미하고 왕검은 왕을 호칭하는 것이었다.

단군왕검이란 이렇게 두 가지 뜻을 나타낸 상징적인 호칭이지 무슨 성이 왕가라느니 하는 주장은 잠꼬대 같은 소리이다.

남영전 선생은 단군의 성이 왕씨라는 주장의 근거는 이렇다. “제가 한번 분석을 해봤습니다. 일반적으로 호랑이를 산중의 왕이라고 하는데 단군의 가족들은 산중의 왕은 호랑이 아니라 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곰은 금기를 지켜 사람으로 변했지만 호랑이는 사람으로 변하지 못했으므로 곰보다 한수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곰을 산중의 왕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왕씨를 곰의 대변인이라고 여기고 성씨를 왕씨라고 한 것입니다.”

학자의 분석이 아니라 유치원 아이들의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 같다.

남영전 선생의 주장대로 단군의 성이 왕가라면 단군은 이름이니 우리조상을 왕단군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군이란 이름이 따로 있는데 또 이름은 검()이고 성을 왕이라 보아야 하는 것인지? 그래서 단군 플러스 왕검으로 두 가지 성명(姓名)으로 봐야 하는지? 도무지 답이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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