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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 엄마와 아이돌의 대결
[411호] 2020년 03월 16일 (월) 동포타운신문 dongpotown@daum.net

글쟁이 엄마와 아이돌의 대결

하늘아, 거기 눈약 좀 줄래?”

엄마, 눈약이 아니고 안약.”

딸애는 일상생활에서 내가 자주 틀리는 표현법을 꼭꼭 고쳐 준다. 예를 들면 내가 머리를 짜맨다고 하면 묶는다로, 신호등을 파란색이라고 하면 초록색으로 말이다. 어휘뿐 아니라 말투도 나는 경상도 억양이 다분한 반면에 딸애는 표준 서울말을 구사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딸애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앤줄 안다. 하지만 불과 4년 전만 해도 딸애는 우리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중국아이였다.

딸애는 열한 살에 서울로 왔다. 홍콩에서 태어나 상하이에서 국제학교를 다닌 딸애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말이라곤 안녕하세요, 한 마디 밖에 할 줄 몰랐다. 아빠가 한족이다보니 집에서는 늘 중국어로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래도 명색이 글쟁이에, 어찌 됐든 에세이집도 한 권 출간을 해서 작가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는데 딸애는 우리 글에 대해선 까막눈이라는 사실은 굉장한 유감이었고 슬픈 현실이었다. 내 소원은 딸애가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고 내가 쓴 글을 줄줄 읽고 나와 우리말로 소통하는 거였다. 설날이면 딸애에게 고운 한복을 입혀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올리게 했고, 추석이나 크리스마스 행사에도 한복을 입혀서 학교에 보내 항상 한민족의 정체성을 상기시키곤 했지만 그것으론 어림도 없었다.

일 년만이라도 한국에 가서 살자, 그렇게 나는 18년 가까이 살았던 상하이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날아왔다. (남편은 그때 마침 홍콩으로 가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한국이라는 환경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를 느끼고 전통문화도 체험할 겸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게 하자는 나의 야심 찬 계획은 이렇게 서막을 열었다.

상하이에서 초등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온 딸애는 한국에 와서 5학년 2학기 수업을 다시 듣게 되었다. 마음이 조급한 나는 개학 첫날부터 딸애를 다그쳤다. 숙제가 없다는 딸애의 말을 무시하고 국어교과서를 꺼내 들고 무작정 과문을 읽혔다. 이도 안 난 아이에게 콩밥을 먹이는 격이었다. 실은 딸애가 어렸을 때 내가 자음과 모음을 가르친 적은 있어서 딸애는 뜻은 모르지만 읽을 줄은 알았던 것이다. 낱말 풀이까지 해가며 읽다 보니 A4용지 크기의 교재 6페이지 정도를 읽는데 근 한 시간이 걸렸다. 딸애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소리 내어 읽어서 목안도 아프다고 했다. 첫날은 이쯤에서 그쳤지만 이튿날부터는 더욱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읽기뿐 아니라 입을 열게끔 강요했다. 딸애는 학교에서 주로 말하기 편한 영어와 중국어로 선생님이랑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집에 오면 습관적으로 중국말로 나와 대화를 했다. 나는 딸애가 간단한 단어라도 한국어로 내뱉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면 딸애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무슨 뜻이냐고 중국어로 물었다.

이렇게 간단한 말도 못 알아들어?”

나는 조바심이 나서 닦달했다. 나는 딸애가 일상적인 한국말은 알아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한국어는 딸애에게 엄연히 외국어나 다름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급기야는 중국말로 재잘거리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떠들어대는 딸애에게 중국말 하지마! 하는 한 마디 표독스러운 말로 딸아이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상하이에서 학교를 다닐 땐 모든 것을 말로 평정할 정도로 말재주가 좋던 딸애는 금세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딸애가 혹시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을 보겠다고 하면 나는 내가 내준 숙제를 다 한 담에야 보라고 윽박질렀다. 나는 훈민정음의 창제가 얼마나 과학적이고 위대한지를 알고 있었고, 똑똑한 사람은 아침나절이면 글자를 다 익힐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던 터라 딸애가 하루빨리 입이 열리기를 고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글쟁이라는 것이 누구보다도 딸애를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거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오로지 재미있다와 재미없다로만 통하는 딸애에게 나는 어떻게 하면 그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까 틈만 나면 고민했다. 하루는 잠자리에 누워서 김용택 시인의 시집 섬진강을 읽다가 재미있는 시를 발견했다. “호박들이라는 제목의 시었는데 압운도 딱딱 맞아 떨어지고 표현도 재미있어서 마치 노래 가락 같았다. 나는 딸애에게 이 시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무데나손내밀어 넝넝쿨을뻗다가

경운기에걸리면은 낫질칼질움잘렸네

잠자다가떡먹기로 돼지똥물흘러들어

어화둥둥호박꽃 어화둥둥호박꽃

호박꽃도꽃이여 호박꽃을피웠더니

호박꽃도꽃이냐고 깔보거나비웃더라

너무그리말더라고

둥게둥게겅중겅중 호박꽃도꽃이랑게

어화좋네호박꽃 호박꽃도꽃이랑게

호박꽃도꽃이라고 호박벌이날아들어

장가가고시집가고 애호박이열렸더니

놀부새끼지나면서 손톱찍고말뚝박네

......

딸애는 어느 샌가 이 노래 가락 같은 시에 슬며시 빠져들었고 나중에는 나와 같이 시집을 펼쳐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개학한 지 2주 만에 딸애의 입이 열렸다. 떠듬거리며 어설프지만 우리말로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적극 협조를 했다. 인내심을 갖고 딸애의 말을 들어주었고 틀린 표현은 즉각 고쳐주었다. 과연, 한 번 입이 열리자 봇물 터진 격으로 딸애의 입에선 한국말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부는 색채어 공부였다. 하루는 국어교과서를 펼치더니 내게 물었다.

엄마, 샛노랗다, 노릇노릇하다, 푸르다, 파랗다, 시퍼렇다 이런 색채 표현에 어울리는 단어는 어떤 것들이 있어?”

, 샛노랗다는 가을날 은행잎 있지? 그걸 샛노랗다고 하는 거야.”

시퍼렇다는?”

그건 중국말 표현에 青一塊紫一塊란게 있잖아, 바로 그거야. 시퍼렇게 멍이 들다.”

그럼 노릇노릇하다는?”

그건 엄마가 감자전 구울 때의 색깔 있잖아.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굽는다고 하지.”

, 알만 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자 딸애는 신이 나서 집안 구석구석에서 색채를 찾기 시작했다. 성경책을 가리키며 이건 민트색, 크림통을 찾아내서 이건 연두색 하면서 금방 색채를 분간하기 시작한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 했다.

어느 날 저녁인가 문득 감이 먹고 싶다던 딸애가 좀 지나 슬그머니 나에게 휴대폰을 내밀며 보라고 한다. 글쎄, 시를 지은 것이다. 어떻게 시를 지을 생각을 다 했는지 궁금해서 이거 니가 쓴 거 맞지? 하고 거듭 확인한 후 잘 썼다고 칭찬을 했더니 신이 나서 단숨에 여러 수의 시들을 쏟아냈다. 내용이나 표현력이 어떻든 간에 나는 딸애가 우리말로 글을 쓴다는 그 자체가 너무 사랑스럽고 기특했다.

가을에 누렇고 빨간 감이 나뭇가지에 달려

떨어지려고 한다

감이 터질까봐 조심스럽게 따는

애기의 모습이 아름답다

눈을 밟으며

하얀 눈이 내리며

땅에 두텁게 쌓인다

밟기 전엔 눈꽃빙수라면

밟고 난 후엔 콜라슬러시다

엄마가 시를 쓰는 걸 보면서 자기도 시라는 걸 써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때가 일 년쯤 될 때였다. 이쯤 하면 딸애의 한국어 실력은 만족스럽다고 생각해도 될 법했다. 나는 글쟁이인 이 엄마가 늘 한국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번역 작업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딸애에게 한국어 공부의 환경을 잘 만들어준 거라고 나름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딸애의 어휘력이 본격적으로 풍부해진 건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서였다.

사춘기에 들어선 딸애는 엄마보다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졌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같이 떡볶이도 사 먹고 코인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주말에는 만화가게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거닐기도 했다. 그즈음 딸애는 또 메이크업에 심취되었다. 아침에는 분명히 해맑은 민낯으로 집을 나섰는데 저녁에 집에 들어설 때 보면 얼굴에 두텁게 그림을 그리고 왔다. 화장이 무슨 중학생의 명함이라도 되는 듯이. 독서를 하라고 하면 짜증을 냈지만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인쇄된 화장품 설명서는 한 글자도 빼놓을 새라 자세히 읽었다. 보다 못해 잔소리를 하면 딸애는 대꾸를 하거나 아예 내 말을 무시했다. 한글 공부를 더 심도 있게 가르쳐야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딸애가 사춘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내게는 더 큰 과제로 남겨졌다.

그 때 딸애가 또 한 가지 열광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아이돌 워너원이었다. 딸애는 그 중에서도 특히 박우진에게 푹 빠져서 박우진을 우리 아이, 라고 다정하게 불렀다. 워너원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봤고 용돈을 주면 전부 워너원 멤버들의 사진이며 소품들을 구입했다. 박우진의 신상에 대해서는 달달 외우고 다녔다. 아마도 엄마, 아빠의 생일이 언젠지는 몰라도 박우진의 행사 일정은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을 정도였다.

어느 날인가 딸애는 주말에 파주에서 워너원의 콘서트가 있는데 무료라면서 친구와 함께 다녀오겠다고 간청을 했다. 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기말고사가 코앞에 닥치기도 했거니와 그 먼데를 여자아이들 둘이 간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알았어요, 하고 대답했던 딸애가 금요일 오후에 파주로 떠났다. 수업이 끝난 후 집에 와서 짐을 챙기고 전철 타고 파주로 떠나면서 딸애는 내게 장문의 메세지를 남겼다.

엄마, 나 친구랑 이미 약속도 했고,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걱정 안했으면 좋겠어. 이번 한 번만 허락해줘, 무료라고 하잖아. 안 다치고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어디 안 잡혀가, 내가 연락할게, 폰이 있잖아.

엄마는 내가 미쳤다고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 공연은 무엇보다 무료이고 고생하는 것도 내 몸이 고생하잖아. 가족도 물론 당연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쩌면 아이돌이 가족보다 나를 먼저 위로해 줬을 지도 몰라. 이번 한 번만 가게 해줘, 진짜, 앞으로 엄마 말 잘 들을게. 기말고사를 위해서 요새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있어. 나 진짜 이번 기회 놓치면 안 돼, 엄마가 나를 사랑하듯이 나도 내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내 아이들을 응원해주고 싶다고. 이번 공연 끝나면 돌아가서 다시 공부에 집중할 거야. 그러니까 엄마가 제발 내 마음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눈물이 흘렀다. 생각 같아선 당장 쫓아가서 딸애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데려오고 싶었으나 그 이튿날 오전 나는 행사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 먼 곳을 딸애가 과연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돗자리 하나 깔고 밖에서 어떻게 밤을 보낼 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찼다. 게다가 공연은 이튿날 밤 10시에야 끝나는데, 그때 어떻게 집으로 오려고 그 먼데를 고집 부리며 찾아갔는지 기가 막혔다. 무료 콘서트라서 선착순 입장이고 공연 전날 밤 10시에 번호표를 배부해준다고 해서 딸아이는 일찍이 떠났던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워너원이 뭐길래, 박우진이 뭐길래 이렇게 엄마의 가슴에 못을 박나 싶었다.

공연은 골프장에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딸애가 중간 중간 휴대폰으로 공연장 밖의 모습을 사진 찍어서 보내왔지만 나는 그날 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애는 시종 환한 표정이었다. 주차장에 돗자리를 깔고 친구와 앉아서 낯도 코도 모르는 사람들이 주는 떡볶이도 얻어먹으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답답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돌이켜보니 인정하기 싫지만 딸애는 슬그머니 가수들이나 드라마,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한국의 문화와 한국말을 접하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 딸애는 상하이에서 중국어자막이 나오는 드라마 상속자별에서 온 그대를 보면서 한국어를 몸으로 익혔다. 그때 딸애는 이미 귀가 트였을 것이다. 그 후에도 딸애는 런닝맨이나 무한도전같은 예능프로는 빼놓지 않고 꼭꼭 챙겨봤다. 딸애의 말대로 어쩌면 모든 것에 민감한 사춘기에 워너원의 노래나 예능프로의 연예인들이 딸애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줬을 지도 모른다.

이튿날 저녁, 아는 언니와 형부가 운전을 해서 나와 같이 딸애 데리러 파주로 떠났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원밸리로 가는 길은 교통이 매우 불편했다. 밤길은 어두웠고 꼬불꼬불한 길은 으스스한 느낌을 주었다. 딸애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신없이 잠에 곯아떨어졌다. 한숨만 풀풀 내쉬는 나에게 같이 갔던 언니가 말한다.

좋은 엄마 되기 참 힘들지? 힘 내! 나중에 하늘이가 엄마가 되면 다 깨닫게 될 거야, 너가 좋은 엄마라는 걸. 애를 너무 야단칠 일은 아니야.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게 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아. 내 친구 딸은 팬클럽에까지 가입해서 내 친구가 엄청 힘들어 하던데, 공연 가는 정도는 애교다.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이런 저런 안전문제가 걱정 된다, 요 정도로만 좋게 얘기해 줘.”

방송문예창작학과를 다닐 때 어느 교수님이 얘기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국 하며는 삼성을 떠올리죠? 사실 삼성보다 실질적으로 한국에 외화벌이를 해주는 것이 문화, 예술콘텐츠들이에요. 한류의 열풍 실감하셨죠?

그랬다, 딸애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한류의 영향을, 아이돌의 위력을 피부로 느꼈다. 그들이 부른 노래, 그들의 말투, 몸짓, 패션, 소품 하나하나가 딸애에겐 곧 한국이었다. 그들을 통해 딸애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어를 더 열심히 배우게 되었다. 어느덧 중3이 된 딸애는 공부가 바쁘다 보니 더 이상 공연장에 찾아다니는 일은 없다. 그래도 학원에서 돌아오면 휴대폰으로 유튜브 동영상이나 드라마를 보는 일은 여전하다. 작년 겨울에는 딸애의 극력 추천으로 나도 스카이캐슬드라마를 시청하고 딸애와 드라마 속의 캐릭터에 대한 열렬한 토론도 벌이고 함께 아이돌그룹의 노래도 흥얼거린다. 딸애는 요즘도 쩍하면 내가 생전 듣지도 못한 단어를 불쑥 불쑥 던져서 나를 당황하게 혹은 흐뭇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기쁜 일은 딸애가 이제는 내가 쓰는 작품을 첫 사람으로 읽어보고 작품평까지 진지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제 글쟁이 엄마는 더 이상 딸애의 한국어 공부 때문에 아이돌과 무모한 경쟁을 벌이지 않는다. 딸애의 사춘기를 함께 해준 아이돌이 있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곽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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