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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성격 12
12. 간편함을 모르는 중국인(상)
[381호] 2018년 12월 16일 (일)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12. 간편함을 모르는 중국인(상)

(不求簡便)

중국인의 이 소질을 담론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반드시 하나의 전제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즉 여기서 말하는 소위 중국인이 간편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동양의 기준으로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주요하게 이 기회를 빌려 두 기준이 얼마나 현격한 차이가 있는가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우선 우리는 중국인의 복식을 보기로 하자. 중국인이 외국인을 경시하는 소질을 논할 때 이미 언급했듯이 서양복식 디자인에 대해 중국인은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서양인도 중국 복식양식에 대해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불가사의하게도 머리 앞부분의 머리칼을 빡빡 밀어버리는데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할 이곳을 드러내는 것은 비정상적인 습관임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민족은 이에 순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총칼의 핍박에 의해 이 습관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은 황제에 대한 충성도의 상징과 징표의 검증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양자지간의 관련성에 대해 주의를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이와 같은 하나의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인은 자신들이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한편 지난 시대에로 돌아가는 데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중국인은 머리를 빡빡 밀어버릴 때 마찬가지로 무슨 불편함이 있을지에 대해선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 년 사계절 계절마다 모두 그러할 뿐이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사람들은 모두 부채를 살짝 양광을 가린다. 부채를 펼쳐 양광을 가리는 사람도 있으나 그 숫자가 많지는 않다. 중국남자들은 확실히 모자쓰기를 좋아하지만 부녀들은 오직 수건만 쓴다. 서양인이 볼 때 이 수건들은 장식에 속할 뿐 양광을 가리는 역할은 없다. 중국인의 관념에 따르면 편안하고 간편함에 도달할 수 있는 물건은 곧 부채이다. 다시 말해서 부채질 할 계절에 부채가 곧 편안함이 되는 것이다. 여름에는 늘 수많은 쿠리들이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고 힘겹게 무거운 염선(塩船)을 부두를 향해 천천히 밀고 가면서 한편으로는 밀고 한편으로는 쉼 없이 부채질해대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아무리 거지라 할지라도 망가진 부채로 끊임없이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문명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해 못할 현상이 하나 있는데 이 민족은 최초로 목축업에 종사하였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마땅히 이 하늘이 내린 조건으로 매우 높은 창의성을 발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양털로 방직활동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제국이 서부지역의 양털 방직업이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은 뭉뚱그려(籠統的) 논하는 사례에서 제외되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따라서 불가사의한 것은 양 무리의 숫자가 많은데 특히 산 지구에 더 그러하지만 양털 방직기술이 아예 보급되지 않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아직 목화가 수입되기 전에는 옷감을 등심초(燈心草) 같은 식물의 섬유로 짰다. 과거에 무슨 섬유를 사용했던 간에 오늘날은 전국적으로 모두 목하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이다. 겨울 특히 매우 추운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두터운 솜옷 코드를 입는다. 어떤 옷은 비대하다 못해 마치 두 사람을 한데 감싸놓은 듯 두텁다. 이렇듯 뚱뚱한 옷을 입은 어린이는 마치 물통에 묶어놓은 듯 일단 넘어지면 근본적으로 스스로 일어나지를 못한다, 비록 이렇게 둔탁한 옷을 입어 극히 불편하지만 우리는 종래로 그들이 불평을 호소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어떤 앵글`색슨인이든지 모두 이러한 속박을 참아내지 못할 것이다.

둔탁한 동복을 말할 때 중국인은 아예 어떤 종류의 내의도 없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인의 입장에서 볼 때 만약 경상적으로 빨고 갈아입는 내의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인은 이런 수요가 없다. 그들은 무거운 솜옷을 몸에 두르고 있는 것이 마치 몸에 천주머니를 걸치고 있는 듯 찬바람이 스며들어 살을 파고들고 있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무리 이런 옷 착용이 이상적이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한 66세 노인이 자기가 얼어 죽어 뻔 했다고 불평하여 어떤 사람이 내의를 선물했더니 그는 이틀 후 벗어버렸다. 이유는 ‘더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중국 신발은 천으로 만들어 물이 쉽게 스며들어 조금만 습기가 있어도 젖어든다. 날씨가 추워지면 두 발은 곧 추위 때문에 감각이 불편해진다. 중국에는 일종 기름신발이 있는데 젖는 것을 방지한다. 그러나 기타 많은 간편한 물건이 그렇듯 가격을 고려하게 되면 적은 사람만 사용할 것이다. 우산의 가격도 이렇다. 이러한 물건은 모두 사치품일 뿐 중국인은 모두 그것을 생활필수품으로 보지 않는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온몸이 흠뻑 젖어도 중국인은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그들은 몸으로 젖은 옷을 말리는 것이 어떻게 불편한지를 발견하지 못한다. 중국인은 비록 외국의 장갑을 부러워하지만 그들은 종래로 자기절로 만들지 않는다. 아무리 최북단 추운 지역에서도 그들이 장갑을 끼고 다니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외국인의 입자에서 볼 때 중국복장이 거부감을 주는 것이 곧 주머니가 없는 것이다. 서양인은 일반 사람일지라도 많은 주머니가 있는 것을 선호한다. 외투의 주머니에 노트를 넣고 뒷주머니에 손수건을 넣고 와이셔츠 주머니에 연필, 요지, 회중시계 등을 넣는다. 기타 편리한 주머니에 손칼, 키, 지갑을 넣는다. 만약 이 외국인이 잔 빗, 줄자, 도레바, 핀센트, 나침반, 접는 식 가위, 거울 등등을 갖고 다닌다 해도 그의 종족에게 이상하다는 눈길을 끌지는 못한다. 그는 습관적으로 이 물건들을 사용하고 있어 그것들이 없으면 안 된다. 중국인은 이러한 물건들이 극히 적거나 혹은 아예 없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에게 준다면 그는 마땅히 어디에 둘지를 모른다. 구에게 손수건이 생기면 그는 곧 그것을 가슴에 쑤셔 넣는다. 아무리 아이를 안고 있어도 그는 이렇게 하고 있다. 만약 중요한 문건이 있다면 그는 곧 조심스럽게 각반을 풀어 거기에 넣고는 계속 갈 길을 간다. 만약 그가 곁바지를 입고 있으면 그는 곧 간단하게 허리춤에 쑤셔 넣는다. 어떻게 넣든 간에 만약 허리띠가 느슨해져도 그는 모르고 있어 문건을 분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일이 늘 발생하고 있다. 문건 같은 물건을 걷어 올린 긴소매 안에 넣거나 말아 올린 갓, 혹은 모자 안의 빈 구석에 넣는다. 많은 중국인은 모두 편리하고 간편함의 비결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일지라도, 예를 들어 그들은 늘 돈을 달달 말아 귀뿌리에 끼워 넣고 다닌다. 중국인에게 있어서 가장 주요한 보관처가 바로 허리춤일 것이다. 허리춤에 돈주머니를 차고 담배주머니와 곰방대를 차고 이와 비슷한 작은 물건을 차고 다닌다. 만약 허리띠가 일단 느슨해지면 물건들이 곧 떨어진다. 열쇠, 빗, 동전은 보통 겉옷의 튀어난 단추에 건다. 때문에 매번 옷을 벗을 때면 이러한 물건들이 떨어지지 않게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만약 한 일반적인 중국인의 일상복장이 우리 볼 바에 혐오스럽다면 그들이 저녁에 입는 옷은 간단해서 더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 그들은 흔히 옷을 홀랑 벗고 알몸으로 이불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잠을 잔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잠옷이 없다. 공자는 일찍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침의(寢衣)가 있어야 하며 길이는 몸의 반 정도면 족하다.” 확실한 역사기재가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공자가 서재에서 입던 예복이지 잠옷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가령 정말 이런 일이 있었다 해도 현대 중국인은 일부러 모방하여 야포(夜袍)를 입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재에 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갓 출생한 영아의 경우 그들의 피부가 온도의 미세한 변화에 매우 민감하지만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이불을 덮는다. 사람들이 보러 오면 어머니는 이불깃을 들고 보이면 그만이다. 이렇듯 불합리한 작법은 아이가 갑자기 냉기를 받기 십상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많은 중국의 영아들이 만월이 되기도 전에 경연으로 죽어가는 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아이가 조금 크면 어른이 아이에게 귀저기를 채워주지 않는다. 어떤 지방에서는 두 개의 모래주머니로 대체하고 있다. 이 하나만으로도 서양의 어머니들이 공포감이 생겨날 것이다. 이 기괴한 물건 때문에 아이가 한곳에 고정적으로 축 쳐져 있어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중국인이 편안함에 대한 홀시는 복장에서는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거주문화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논제를 세울 때 마땅히 가난한 사람들의 거처는 배제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득이하게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이 여유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부자들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중국인은 집 주변에 나무를 심어 양광을 가리는데 신경 쓰지 않는다. 간이 풍막을 지을지언정 말이다. 돈이 없어 풍막을 지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아주 쉽게 몇 그루의 나무를 심어 양광을 가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심으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석류나무 같은 장식용 관목(灌木)에만 만족할 뿐이다. 뜨락이 더워서 참을 수 없다면 주인은 도로에 나가 앉아 지낸다. 도로도 더워서 참을 수 없으면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남쪽 향하는 곳은 주요 출입구이다. 그런데 남쪽 출입구와 대칭되게 북문을 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통풍이 잘 되어 삼복더위를 말릴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조금만의 수고로움 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들은 하려고 들지 않는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통상적으로 돌아오는 대답은 아주 단호하다. “우리는 북문을 빼지 않는다.”

아더`스미스 저
김정룡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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