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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성격 11
11. 옛것에 집착하다(상)
[379호] 2018년 11월 16일 (금) 김정룡 기자 jzl0917@naver.com


11. 옛것에 집착하다(상)

(因循守舊)

중국은 다른 민족의 역사에 비하면 그 황금시대가 썩 지났다. 옛적에 성현이나 현인들은 흔히 숭경해마지 않는 어투로 더 오래된 상고시대의 조상을 담론한다. 공자도 공공연하게 자신은 개척자가 아니라 전파자라고 말한다. 그의 사명은 오랫동안 홀시와 오해 받던 옛사람들의 지식을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런 끝일 줄 모르는 정신이 이 위대한 사업을 완수할 수 있었고 본 민족의 숭경을 받는 성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고금을 관통하고 도를 전수함으로써 성인이 대표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유가윤리학을 볼 때 명군이 있고나서 양민이 있는 것이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며 배가 둥글면 물도 둥글고 배가 네모면 물도 곧 네모이다. 이 이론으로 추리하면 명군이 통치하는 시기에는 미덕이 곳곳에서 꽃펴난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쿠리마저 우리에게 요순시대에는 밤에 문을 잠그지 않아도 도둑이 없었고 길가에서 물건을 줍으면 첫 발견한 사람이 물건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완벽하게 돌려주고 나서 자리는 떠난다는 이야기를 일깨워 준다.

하나의 보편적으로 전해지는 말이 있다. 세상의 기풍이 날로 못해지니 인심이 옛날 같지 않구나. 이런 후고박금(厚古薄今)의 경향은 절대 중국과 중국인에 한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전 세계가 모두 그러하지만 중국인이 이에 대한 믿음은 기타 민족이 비교가 안 될 만큼 강하다. 중국인은 모두 고대의 모든 미덕은 문헌기재를 통해 보존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문헌에 대해 경배해마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다.

정통적인 중국인은 중국고대의 경전을 대하는 것이 마치 독실한 기독교 신도가 히브리어로 된『성경』을 대하듯 한다. 그들은 모두 과거에 최고이며 가장 우수한 지혜가 담겨져 있어 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똑 같이 적용된다고 믿고 있다. 한 우수한 유학자는 중국경전은 증보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데 마치 기독교신도가『성경』의 수정이나 보완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일치하게 일이 이미 완벽이 이르렀는데 그것을 더 좋게 한다는 것은 뱀에게 발을 그려 넣는 것과 같이 우둔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치 우수한 기독교 신도가『성경』의 문자로『성경』에 있어본 적이 없는 일을 해석하는 것처럼 유학자도 성인의 경전 중에서 현대정부를 운영하는 권위적인 해석을 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볼 바엔 심지어 고대 수학이나 현대과학의 조상도 거기서 찾고 있다.

고대의 경전이 전체 중국인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정부체제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정부의 성격이 어떠하든 그의 완강한 집착은 논쟁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아보호는 민족의 으뜸의 원칙으로서 그것은 개인의 으뜸의 원칙과 같다. 하나의 통치방식이 이렇게 기나긴 세월을 거쳤으나 여전히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유일무이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사람들이 그에 대한 경모의 마음은 경전에 대하는 것과 동일하다. 조금이라도 배경지식이 있거나 또 중국역사를 공부한 학생이 만약 중국정부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발전원인을 똑똑히 알고 해석하려면 그의 발견은 매우 기묘할 것이다. 우리는 확신한다. 그는 곧 다른 나라들이 경험한 내부혁명이 중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한 중국장인이 6인치의 두께에 4인치 높이의 돌담을 세웠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왜 이 요상한 물건을 세웠는가 물었더니 그는 바람에 무너져도 지금보다 낮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대답한다. 중국정부는 어떤 상황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입방체이기 때문에 일단 무너져도 얼굴만 바뀔 뿐 그 형식과 내용은 모두 과거와 그대로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어 나타남으로서 중국인은 정부의 연변(演變)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심심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여전히 두 발로 걷는 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이상적인 정부의 설계자와 건설자의 비할 바 없는 지혜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신하고 있다. 모든 개선의견은 옆길로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후대사람들의 자괴감을 바탕으로 선인들의 우월감은 굳건하게 자리매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똑똑히 알고 난 후 우리는 곧 옛것에 집착하는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인은 고대 로마인처럼 모두 예모예절이 도덕품행과 서로 통하는 개념이며 같을 ‘물’에서 나와 본질도 같다. 중국인을 놓고 말하자면 풍속습관을 위반하는 것은 곧 ‘신령’을 건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 때문에 이러한 풍속습관에 대해 파고들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중국인의 이러한 작법에 대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한사코 그 풍속습관을 보호하려한다. 어미 곰이 새끼 곰을 보호하듯 그것은 완전히 하나의 본능이다. 다만 이것은 중국에 한해서만 있는 본능이 아니라 전체 인류가 모두 갖고 있는 공성(共性)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모종의 신앙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으나 그들은 도리어 이런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며 구체적인 신조로서 자기의 생활을 약속할 줄 모르는데 이런 현상에 대해 우리는 고민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중국의 풍속습관이 중국언어와 같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알 수가 없다. 풍속습관이란 일단 형성되면 곧 변동이 매우 어렵다. 그런데 중국의 풍속과 언어의 형성조건이 지역에 따라 달라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풍속의 차이를 보게 된다. 속담이 잘 말해주듯 ‘십리 가면 풍속이 다르다(十里 不同俗’. 이렇기 때문에 눈을 어지럽게 하는 각지 방언이 있게 된 것이다. 풍속습관과 언어란 일단 고정되면 굳어진 석고처럼 두들겨 깨뜨려도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론상에서는 이렇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이론은 변통의 탄력이 있으므로 모든 풍숙습관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특정한 조건하에서 일부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이 도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례로서 청나라 통치자들이 모든 신민에 대해 새로운 두발모양을 실시하였다. 이와 같이 뚜렷한 압박행위는 불가피적으로 많은 중국인의 필사적인 반항에 직면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이 때문에 생명의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만인(滿人)은 사명을 욕되지 않게 초심을 바꾸지 않고 그것으로 청나라 조정에 충성하는 하나의 지표와 척도로 삼았다. 우리들이 목전에 목격한 것은 모두 결과일 뿐이다. 오늘날 중국인은 자신들의 머리태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자신의 복식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 오직 광동과 복건 두 성의 일부 토착민만이 만족 사람에 대한 원한을 갖고 있으며 그들은 두건으로 그 민족의 치욕을 가리고 있다.

아더`스미스 저
김정룡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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