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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성격 10
10. 공중도덕이 결핍하다
[378호] 2018년 11월 01일 (목)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10. 공중도덕이 결핍하다

(缺乏公德)

중국에서 오래된 경전 중 하나인『시경』에 한 농부가 하늘에 대한 기도문이 기재되어 되어 있다. “비여, 먼저 공전에 내리시고 다음 나의 사전에 미치기를 바라나이다.” 주나라 흥행시기 또는 이후 각 조대(朝代)에 모두 진짜 그러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현재의 중국은 긍정적으로 이와 같은 기도가 없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농부이든 기타 개인을 막론하고 모두 먼저 비가 공전에 내리기를 기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중국정부는 본질상에서 하나의 가부장적 정부로서 천자는 하늘 높이 계시고 그는 신민(臣民)들이 명령에 순종할 것을 바라고 있다. 미국 농장의 한 흑인 노예가 “사람마다 자기를 위하고 상제는 여러 분을 위한다.”는 말을 듣고서 “사람마다 자기를 위하고 상제도 역시 자기를 위한다.”라고 바꿔버렸다. 일언이폐지하고 이 흑인 노예의 이 고로한 격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마침 중국인이 정부문제에 대한 근본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본인을 놓고 말하자면 나는 오로지 먼저 자기를 위해 타산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가 정부를 떠올린다면 그는 “정부가 건전하고 강대하다면 자체로 굴러갈 것이다. 하필 내가 근심하고 걱정할 일이 아니다.” 따라서 가부장적 정부는 먼저 자기를 돌볼 뿐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위험에 직면하지 않을 때는 정부는 백성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일단 위난이 닥쳐오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일을 한다. 사람들은 정부가 해마다 연속 강이 범람하여 일어나는 재난을 줄이려고 하는 그 원동력은 조세의 유실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은 똑똑히 알고 있다. 사람들이 이런 재난을 피하기 위해 하는 일부 공익사업은 완전히 자기보호의 본능으로 하는 것이고 그들은 이런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해도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필연코 생명안전에 영향이 미친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다. 만약 정부가 지역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하면 그 인력과 재력이 몇 곱절 더 소비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내가 너를 속이고 네가 나를 사기 치는 심리의 지배하에 일종 극도의 유사무공(有私無公) 습관이 길러져 왔다.

중국정부는 사회공공사업에 대해 털끝만치도 개의치 않는다. 일반 민중은 더욱 공공정신이 결핍되어 있는데 이 방면의 사례로서 중국도로사정을 들 수 있다. 대량의 증거가 충분히 이를 증명할 있다. 일찍이 많은 공로(官道)가 이 제국의 많은 주요도시를 연결하고 있고 길 양 옆에는 돌이 깔려 있고 가로수도 있었다. 하지만 길의 황폐한 사정이 북경인근의 성 뿐만 아니라 호남과 사천과 같은 편벽한 성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당초 이러한 길을 건설할 때 필경 많은 돈을 써서 차후 보수할 적에 가볍고도 쉽게 하려고 했을 것이고 또 이렇게 하는 것은 오래도록 견고하여 파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흔히 모두 보수를 홀시하여 폐기된 길이 이미 필요한 교통요도(交通要道)로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집을 떠나 나들이 하는데 장애로 되고 있다. 가령 이 길들이 명말청초(明末淸初) 동란 때 파손된 것이라면 정치적인 동란의 시간을 떼 내고도 250년이란 시간 동안에 이 제국의 교통간선도로를 충분히 보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정반대로서 중국인은 보수를 하지 않았다. 혹은 보수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아 그 결과는 빤한 일이다.

민중의 도정(路政)에 대한 태도가 정부와 호흡이 맞다.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자기의 개인재산이 손실 입지 않는다면 관심 가질 필요가 없고 공공재산에 대한 책임도 없다. 사실상 도로 등이 공중(公衆)에 속하고 있다는 이런 개념이 중국인의 마음속에 기본상 없다. ‘강산’은 지금의 황제의 것이고 그가 언제까지 소유하고 싶으면 소유하는 것이다. 도로도 황제의 것으로서 모든 도로와 관련된 일은 모두 황제가 걱정할 일이다. 그러나 길은 밭과 다르다. 길은 성격상 황제 일인의 것이 아니라 대부분 길은 산간벽촌의 작은 길로서 전문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공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지처럼 황제의 동의가 필요 없다. 그 이유는 길을 사용하는 것은 삶의 필수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도로는 인근 밭에 부속되어 있어 밭과 같이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토지의 소유자는 다른 사람보다 길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이득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농부는 이익의 핍박으로 하여 될 수 있는 한 길을 축소하고 따라서 도랑을 넓히고 토지면적을 늘려 기타의 통행을 막는다. 사람들이 통행의 수요 때문에 부득이하게 그 가련한 밭 가운데의 작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만약 여름이면 폭우에 밭의 흙이 길에 밀려 쌓이게 되면 농부는 길에 와서 그 흙들을 자기 집에 긁어간다. 이와 동시에 자연의 배수와 빈번한 먼지로 쌓인 흙에 의해 도로는 ‘운하’로 변신한다. 중국인의 뇌리 속에는 아예 우리 서양인이 말하는 그러한 ‘공공도로’라는 개념이 없다.

천진과 북경 사이 북하는 항행하는 승객이 때로는 강가의 작은 깃발을 볼 수 있다. 물어서 안 일인데 기가 꽂혀 있는 곳은 수뢰가 묻혀 있어 오가는 배들이 반드시 그곳을 에둘러 가야 한다. 한 중국 부대가 포격 훈련할 때 직접 이 제국의 교통간선 위에서 대포를 설치하여 교통을 방해하고 있고 가축을 굉장히 놀라게 만들어 인심이 불안하고 닭과 개들도 불안에 떨고 있다.

어떤 사람이 화물을 싣고 부리는 작업을 하려고 길 중간에 마차를 세운다. 모든 이 길을 지나려는 사람은 오로지 내심하게 기다려야 한다. 그가 물건 작업이 끝날 때까지 말이다. 만약 한 농부가 한 그루 나무를 베려고 하면 그 나무가 마침 도로를 가로 눕는다. 오가는 행인들이 오직 그 베고 운반하는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현상은 중국 아디서나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붐비는 도시도로는 자유스럽고 편안한 생활방식을 길러왔다. 북경의 널찍한 길 양 옆에 본래 없어야 할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가령 황제가 그곳을 지날 때는 당연히 그 물건들을 부랴부랴 옮긴다. 황제가 금방 지나가자마자 그 물건들은 본래의 위치에 돌아온다.

중국 대다수 도시 시가지의 비좁은 통로는 각양각색의 수공업자들의 가게들로 막혀 있지 않는 곳이 없다. 돼지 도살, 머리 자르기, 유동식 음식 매대, 목공, 하수구 뚫는 공, 기타 각종 수공업자들은 모두 그 비좁은 길 양 옆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대도시 생활절주에 맞춰 함께 뛰며 각자가 자신의 소임을 다 하며 서로 소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 부녀마저 모두 이불과 요를 안고 나와 거리에서 말리고 있다. 그녀들의 작은 뜨락이 도로보다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거리에 와서 하지 못할 일이 거의 없는 듯하다.

거리에 널려 있는 자영업자들의 노점이 교통을 방애할 뿐만 아니라 도로도 어느 정도 파손되고 있다. 목수는 한 무지 나무를 쌓여놓고, 염색공은 천 조각을 기다랗게 걸어놓고, 자장면공은 면을 기다랗게 말린다. 그들의 맘속에는 매 가게 앞은 공공장소가 아니라 노점상의 소유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목전 발전 단계에 처해 있는 중국인은 다음과 같은 관념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신이 소유권을 갖고 있다면 마땅히 보수의 책임도 따라야 한다는 것을. 한 사람을 파견하여 길을 보수하게 하면 그는 시간과 원자재가 있을 수가 없으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일을 많이 하고 보수는 적게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지의 지방관이 길 옆 마을들이 각자 해당 구역 합리적인 거리를 책임지게 한다면 일 년 사계절 길은 뻥 뚫릴 것이다. 하지만 중국 지방관들이 이러한 궁리를 생각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중국인은 공공에 속하는 물건에 관심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공공재산을 조금만 소홀히 하면 어디에 사라지는지 매우 쉽게 도적의 목표물이 되고 있다. 도로에 깔아야 할 돌이 보이지 않고 토성의 벽돌은 한 장 한 장씩 집에 고스란히 날라 오고 있다. 중국 어느 항구 인근의 외국인 묘지의 토성이 있는데 지키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토성의 벽돌이 순식간에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얼마 전에 북경황궁에서 세인을 놀라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경비가 삼엄한 자금성의 건축 윗부분에 있는 구리 장식품이 도적 당했다. 중국인은 보편적으로 대청제국의 18개 성 중에서 황제가 가장 쉽게 사기 당하는 사람에 속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늘 어떤 사람들이 중국인이 도대체 애국심이 있는가 묻곤 하는데 이 문제는 비교적 복잡해서 두세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강열한 민족감정은 확실한데 특히 문인사대부 계층이 그렇다. 그들의 강열한 감정 중에서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정이 더욱 심하다. 요 몇 년 사이 호남성은 악의적인 비방이 엄중한 배타적인 격문의 홍수 속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글들은 고의적으로 혼란을 조성하여 외국세력을 중화제국에서 몰아내려는 의도가 있다. 중국인이 볼 바엔 이러한 글들의 동기는 긍정 받아야 하며 마치 우리가 무정부주의에 저항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외침은 한 방면은 오해이 수 있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서양민족에 대한 원한에서 오는 것이다. 가능하게 많은 중국인은 이러한 공격이 완전히 애국심의 발로하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하는 행위가 조국에 보답하려는 욕망에 떠밀려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보수의 유혹에 못 이겨서 그러는 것인지? 이 명제는 보다 많은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지 중국인에 대한 요해가 부족해서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서 그들이 애국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인이 애국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현재 청조의 운명에 티끌만치도 흥미가 없고 우리는 충족한 이유로 중국민중이 각 조대에 대한 정감은 어떤 결과 있든지 집정자는 누구든지 지금과 마찬가지로 극도로 냉담하다는 것을 믿고 있다. 공자께서 일찍『논어』에 의미심장한 말로서 사람들이 공공사무에 대한 태도를 표현했다. “자리에 있지 않으면 정치를 도모할 이유가 없다.” 우리들이 보건대 이 대목은 어느 정도 결과를 말하는 것 같지만 중국인이 자기의 책임에 속하지 않는 일에 대해 흥미를 갖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51년 도광황제가 붕어했을 때 우리는 마침 북경을 떠나 외출하는 중이었다. 어느 하루 우리는 한 술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주변에 몇 명의 중국인이 있었다. 우리는 격이 없이 정치를 담론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황제가 금방 사망하여 이 사건이 중요한 일이라서 긍정적으로 큰 흥미를 일으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누가 앞으로 황위를 이을 것인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아직 후계자를 공표하지 않았다. 우리는 황제의 세 자제 중 누가 대를 이을 것인지, 만약 장자라면 그는 지금의 정부체제를 유지할 것인지? 만약 막내라면 그는 아직 어려서 두 개의 세력이 맞서 있어서 누구의 편에 손을 들어 줄 것인지? 우리는 간단하게 각종 추측을 내놓아 이들 양민의 견해를 알아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예 우리 담론을 듣지도 않는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담론에 끌어들여 그들의 소견을 들어보고자 했다. 그러나 우리의 열정에 찬 화두에 그들은 막연하게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 때로는 담배연기를 유유작작하게 내뿜으며 아무 일도 없는 듯 차를 마시고 있다. 이런 냉담한 태도가 우리를 화나게 만들었다. 한 신분이 있어 보이는 중국인이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마치 가장이 된 것처럼 우리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아주 비웃는 말투로 우리에게 “들으세요, 친구. 왜 부질없이 정력을 소모하면서 그따위 무료한 추측을 하고 있어요? 이 일은 대신들이 관계할 일이지, 그들이 녹봉을 먹고 있지 않는가요, 그들이 알아서 하라고 그래요. 우리가 왜 그따위 걱정을 하나요?” 다른 사람들도 그와 마찬가지란 눈빛이었다. 이어서 그는 “보세요, 당신들의 차가 식었어요. 곰방대도 비었고요.”

1860년 영불연군이 북경에 진공해 들어갈 때로 기억되는데 영국군대가 장비로서 산동에서 노새를 샀다. 천진과 통주는 각자 이익을 위해 오로지 연군이 이 두 도시를 침략하지 않는다면 필요한 모든 물자를 제공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영불연군 중에 적지 않은 쿠리가 있었는데 그들은 홍콩에서 온 쿠리들로 충당했다. 이 쿠리들이 중국군대에게 잡혀 영군에게 돌려보낼 때 머리태가 잘렸다. 이로서 알 수 있듯 만약 중국인에게 애국심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앵글로`색슨인들의 이해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일떠나 통치자의 압박과 가렴잡세에 대항할 때 늘 일부 능력이 사람이 앞장서기 마련이다. 그들의 지도하에 운동이 일정한 영향이 생겨나고 정부로 하여금 타협하고 양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어떻게 그들 ‘우민(愚民)’을 처치하는지 앞장 서는 사람은 불가피하게 전형이 되고 정의를 실현하려면 늘 그들은 생명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러한 모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헌신하는 정신이야말로 공공정신의 최고의 체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역사상 매번 왕조가 바뀔 관건적인 시각에 늘 충신이 대담하게 몸을 바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협객의 정신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그들의 숭고한 사업을 완성한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길이 빛날 것이며 만인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진정한 애국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위는 변론의 여지가 없이 중국인이 공공정신의 영수의 지도하에 완벽하게 가장 용맹한 행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아더`스미스 저
김정룡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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