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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성격(7)
7. 에둘러 말하기 좋아하는 관습(상)
[373호] 2018년 08월 16일 (목)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7. 에둘러 말하기 좋아하는 관습(상)

拐彎抹角

우리 앵글로`색슨인은 자랑스러운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곧 우리는 직접적으로 사물의 실질을 파고들고 일단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되면 곧 마음과 입이 일치하게 말을 한다. 만약 사교예의(社交禮儀)이거나 혹은 외교적인 장소와 같은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는 자기의 이 습관에 대해 크게 손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에두를 줄 모르고 직설적이고 곧은 본성은 여전히 우리민족의 매 한 사람을 지배하고 있으며 각종 특수정황 하에서 수정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한편 아시아민족과 오랫동안 접촉할 필요 없이 그들의 천성이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사실상 그들은 다른 극단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알맹이 없이 기다란 존칭을 쓰게 보지 않지만 아시아의 적지 않은 언어 속의 존칭은 한어에 비해 더욱 상세하고 세심하고 세부적이다. 우리는 빙빙 에두르지 않는 방법으로 간단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으나 중국인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한어 속의 적지 않은 설법으로 모두 한 사람의 죽음을 표현할 수 있으며 그 중 어느 어휘도 직언하는 것이 없다. 그들은 이렇게 에둘러 표현할 때 근본적으로 죽은 자가 황제인지 쿠리(苦力)인지 고려하지 않으며 사자의 신분이 특수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어휘의 장소가 큰 차이가 있을지라도 고민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보편적인 것을 말할 뿐 언어의 정확성은 담론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사람마다 ‘직접적’이고 사람마다 모두 다른 사람도 이렇게 할 줄 안다면 그것은 정확성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일 것이다.

외국인이 중국인의 대화를 듣고 나면 일반적으로 그가 표현하려는 뜻을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인이 외국인에게 이와 같은 인상이 형성되려면 풍부한 사회경험이 필요치 않으며 이것은 본래부터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회화수준이 얼마나 유창하든지간에 심지어 그가 모든 짧은 문장을 이해할 수 있든지, 심지어 들은 구절을 한 글자씩 한 구절씩 적을 수 있을지라도 그는 역시 말하는 사람의 심리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원인은 말하는 사람이 맘속의 뜻을 표현하지 않고 조금 유사한 일을 언급했을 뿐이며 상대가 그 가운데서 뜻을 추리해내고 혹은 일부분만의 뜻을 추리하라는 것인데 외국인은 죽었다 깨도 할 수가 없다.

외국인이 중국인과 성공적으로 교제하려면 풍부한 언어적 지식을 갖춰야할 뿐만 아니라 매우 강한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이 외국인이 아무리 이 방면의 능력이 뛰어날지라도 그는 흔히 길을 잘못 들어설 것인데 왜냐하면 그의 능력이 항상 애매하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생활 속 이 보편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우리가 최초로 접촉한 사람, 그가 그다지 중요치는 않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그는 전체민족의 대표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가 바로 우리가 고용한 일군(머슴)이다. 어느 하루아침 그는 표정이 어두운 얼굴로 나타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삼촌댁이 아파서 며칠 휴가 맡고 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직감에 의하면 그는 근본적으로 삼촌댁이 없으며 혹시 있다고 해도 병이 없으며 또 그는 근본적으로 가 볼 생각조차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악 있게 말하자면 지극히 가능성이 있는 사실인즉슨 이 머슴이 주방장과 갈등이 생겼는데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해서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에둘러 핑계를 댐으로써 주방장과 부딪히는 것을 피할 수 있고 조용히 사라지려는 타산이었던 것이다.

한 중국인이 당신을 도왔는데 당신이 당장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사후 감사의 뜻으로 물건을 건네는 것으로 사의를 표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예의바르게 정중히 거절하면서 ‘사소한 일에 후한 선물을 받는 것은 오상(五常:인, 의, 예, 지, 신)에 어긋나는 일이다.’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기어코 주려고 든다면 그를 불의에 빠뜨리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뜻인즉 요까짓 돈이 당신에게 기대했던 바람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오레브`트위스트(영국 유명 소설가 찰스`디겐스 동명소설 주인공)처럼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다.’ 혹시 근본적으로 이 뜻이 아니고 일종 암시일 것이며 당신이 그에게 인정 빚을 진 상황에서 만약 당신이 크게 출세한다면 그때 가서 묵직한 보답이 있을 것을 기대하고 눈앞의 보잘 것 없는 선물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인은 자신의 이익과 절실한 관련이 있을 때 모두 매우 조심스럽고 다른 사람을 언급하면서 특히 시끄러운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거나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살 수 있을 때 더욱 조심스러워 한다. 중국인은 한담을 즐기지만 그들은 직감적으로 어느 장소에서 어떤 말을 삼갈지 분별력이 뛰어나다. 이런 장소를 만난다면 특히 외국인이 자리에 있는 장소라면 그들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대다수 장소에서 우리 주변의 말머리 무거운 사람들이 우리에게 암시한다. 이러한 것들을 파악한 후 우리는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사함에 있어서 아주 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눈에 띄게 이렇게 하는 것이 좋고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또 다시 습관적인 침묵으로 돌아갈 것이며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하는 것으로 시끄러움을 피면하고 있다.

한 중국인이 어떻게 최선의 방법으로 나쁜 소식을 타인에게 암시하는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가장 재미나는 일이다. 절대로 사실의 진상을 말하지 않고 타인에게 나쁜 소식을 알릴 때도 역시 에둘러 암시하는 방법을 택한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사방을 살피는데 마치 잠복한 간첩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목소리를 신비한 귓속말 상태로 낮추고 손가락 세 개를 세워 보이는데 그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손가락이 암시하는 것은 그 집 셋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머뭇거림으로 말을 떼고 몇 마디 말하는 것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표현하는데 긴요한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멈춰 판단이 가능한 술어를 말하지 않고 의미심장하게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 마치 “당신이 알았지, 그렇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전반 과정에서 그 가련한 어리벙벙한 외국인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상할 것 없이 이럴 때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또 다시 시작할 때처럼 당신을 어둠속으로 이끌어가고 또 애매모호하게 당신을 암시하는데 당신은 어느 날이든지 끝내 알아차릴 것이고 그는 옳았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중국인은 다른 황종인처럼 모두 이런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곧 나쁜 소식을 되도록 감추고 위장을 가한다. 그러나 중국인이 채용하는 ‘좋은 형식’이 너무 많은 헛것(虛幻)이 수요 되어 우리가 볼 때 사람을 놀라게 하며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는 자애로운 늙은이를 알고 있는데 그는 무의식중에 두 친구가 귓속말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본래 특별히 노인의 그 먼 곳에 살고 있는 손자의 부고를 알리려고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그에게 한담을 하는 것처럼 강조해 보인다. 물론 반시간 후에 모든 것이 들통 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또 집을 떠난 지 수개월 되는 한 아들이 귀가 도중에 가장 가까운 한 마을을 지나는데 그곳 아는 사람이 그에게 집에 도착하기 전에 절대 멈춰서 극을 보지 말 것을 권고하였고 이 아이는 곧 모친이 돌아갔다는 것을 매우 정확하게 판단해 내고 있다. 우리는 어느 한 번 타인을 대신하여 한 통의 서신을 전하게 되었는데 집과 매우 먼 거리에 떨어져 있고 편지의 내용은 그가 외출한 기간 그의 아내가 갑자기 죽었고 이웃이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이 쓸쓸한 사람에게 남긴 물건을 전부 가져갔다는 것이다. 비록 이렇게 되었으나 이 편지의 봉투에는 눈에 띄게 큰 글자로 어수선한 글씨체로 ‘태평무사!’라고 쓰여 있었다.

중국인이 에두르기 좋아하는 것은 또 흔히 숫자의 처리상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숫자를 써야 할 때는 그것을 버리고 쓰지 않는다. 때문에 5권에 달하는 책은 항상 ‘인, 의, 예, 지, 신’ 오상의 불변순서로 표기하고 있다. <강희자전> 40여 권은 우리의 예상대로 부수(部首)를 표기한 것이 아니라 12간지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과거 시험 때 수험생으로 꽉 찬 작은 밀실들은 역시 <천자문> 중의 몇 천개의 글자로 표기하는 것으로 같지 않는 시험장을 구분할 수 있는데 이 글자들은 하나도 반복되는 것이 없다.

아더`스미스 저
김정룡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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