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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성격 4
4. 예의를 깍듯이 지키다
[370호] 2018년 07월 01일 (일)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중국인의 예의가 있고 또 통상적으로 말하는 동양인의 예의가 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전혀 다른 시각으로 고찰할 수 있는데 한 방면으로는 찬양이고 다른 한 방면은 비평이다. 앵글로 색슨인은 의심할 바 없이 많은 미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기각성에 늘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 중 절대부분은 행동의 과단성이고 일부분만은 태도가 온화한 면이다. 우리들이 동양에 와서 많은 동양인들이 원활하게 대인관계에 있어서 마찰을 해결하는 예술이 우리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할 때 우리는 맘속으로 흠모하게 되는데 마치 사람들이 자신이 할 줄 모르는 일에 대해 깔끔하게 일 처리하는 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비평가조차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중국인의 예의에 대한 실천은 최고의 경지에 달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지는 서양에서 듣도 보도 못한 것으로서 자기 눈으로 직접 목격하기 전에는 불가사의해서 상상조차 못할 지경이다.

예의규칙을 거론하려니 자연스럽게 중국 경서에 있는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삼백 가지 예의준칙과 삼천 가지 행위준칙이 있다(예의삼백, 위의삼천(禮儀三百, 威儀三千).” 이와 같은 예의속박 속에서 한 민족이 번식하고 생존한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할 것 같지만 우리는 중국만은 예외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중국인은 예의를 마치 교육을 대하듯 본능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 민족의 천재성이 서양에서는 궁정과 외교상에서만 사용되는 번잡하고 자질구레한 예의를 일상 교제 생활의 일부분으로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인은 하루 종일 번잡하고 자질구레한 예의의 속박에 얽매어 한 발작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예의는 때에 따라 환경에 따라 원활하게 지켜지고 있다. 마치 명절이면 반드시 예복(禮服)을 입는 것처럼 중국인은 자기의 본능에 의해 어떨 때 어떤 예의를 행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만약 어느 중국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맨다면 마치 교육 받은 우리 서양인이 아홉에 아홉을 곱하면 얼마인지를 모르는 것처럼 황당한 일이다.

우리 서양인은 중국인의 예의를 찬성하기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맘속에는 예의란 예모예절의 방식으로 피차간의 우의를 표현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들 국민들이 이미 개인의 이익을 나라의 이익으로 여기는 문명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인데 중국에서는 예의가 그렇지 못하고 하나의 전문적인 기술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모든 기술이 비록 의미는 중대하나 내심으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복잡한 집단 속의 개체와 같다. 각종 존칭의 전부 이론과 실천은 서양인에게는 화가 나지 않더라도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러한 표현방식이 늘 사람들로 하여금 존비관계를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중국인은 이것을 사회질서의 기초라고 여긴다. 중국인은 또 이러한 표현방식을 하나의 윤활제로 간주하고 대인관계를 조절한다. 위에는 아래가 있고 아래에는 위가 있으며 각자가 자기 위치를 잘 지키면 만사대길이다. 장기를 두는 것처럼. “저희가 보잘 것 없는 졸을 움직입니다.”라고 하면 상대는 “저희도 마찬가지로 보잘 것 없는 졸을 쓰겠습니다.”라고 응수한다. 선수 쪽이 또 상대에게 “저희 천졸(賤卒)이 존왕의 귀사(貴士)를 먹고 귀왕의 구역과 그다지 긴요하지 않는 제 삼선에 이르렀습니다.”고 고한다. 전체 장기 한판을 끝날 때까지 이와 같은 틀에 박힌 말을 하는 방식으로 둔다. 행마는 이와 같은 겸손한 말을 사용하는 것 때문에 조금도 지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억지로 틀에 박힌 말을 늘여놓으면서 쪽을 움직인다면 스스로 우스워지는 것처럼 중국인은 만약 여느 어떤 규칙에 대해 예의적으로 대답하지 못하면 웃음거리가 된다. 중국인에게 있어서 틀에 박힌 말은 곧 행마의 그 자체이기 때문에 틀에 박힌 말을 어떻게 사용할 줄 모르면 곧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되고 만다.

동시에 중국인의 이러한 예의 규칙은 중심도시와의 거리에 따라 직접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중심도시에서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것이다. 한 사람이 시골에 살면 시골에서도 마찬가지로 예의를 지킨다. 그러나 그들은 도시사람처럼 예의가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규칙에 대한 요구에 익숙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들이 또 인정해야 할 것은 특정한 장소, 특정된 때에 예의를 몰라 쩔쩔 매는 중국인은 매우 적다는 것이다. 다른 시각으로 볼 때 아무리 교양 있는 외국인일지라도 같은 선상에서 얘기하는 것은 무리이다. 비교해보면 외국인은 유치하다 못해 어른의 품에 안긴 영아와도 같다. 통상적으로 중국인 중에 무능을 드러내는 사람을 제외하고 다수 사람이야말로 딱딱하기 그지없는 예모예절의 기본 가르침을 따를 뿐이다. 마침 외국인이 이렇게 따라 하면 교육을 받은 중국인은 숨김없이 오랑캐(蠻夷)들이 ‘땅이 반듯하고 하늘이 둥글다(地方天圓)’는 것조차 모른다고 멸시하고 무시한다.

예의는 마치 공기가 가득 찬 고무방석처럼 비록 속은 텅 비어 있지만 기묘하게 진동을 감소시킨다. 동시에 또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중국인은 외국인에 대한 예의는 항상 자신이 예절을 안다는 것을 과시할 뿐 손님을 편하게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당신이 아무리 싫어해도 주인은 기어코 견결히 불을 지핀다. 당신이 마시고 싶지 않아도 주인은 기어코 불을 지펴 끓는 물에 차를 탄다. 주인이 이렇게 고집스레 행동할 때 당신은 매캐한 연기에 눈물범법이 되고 목은 넘기기 힘든 약물을 삼키는 괴로움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어찌되었든 주인의 입장에서는 할 도리를 했다고 뿌듯해한다. 손님이 불편해하는 것은 손님의 문제일 뿐이다. 시골에서도 마찬가지로 주인은 당신이 들 그 엉망인 방을 기어코 소제하고 거두는 것을 반드시 저버릴 수 없는 의무로 간주한다. 아울러 방에 손대는 것은 늘 당신이 문턱을 넘어서서야 진행한다. 당신이 간곡하게 그만둘 것을 요청해도 주인은 듣지 않는다. 수년 묵은 먼지가 당신의 눈을 덮어도 괘념치 않는다.『예기』의 가르침의 덕분인지 방을 철저하게 소제하는 데는 손님의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같은 방식을 각종 연회석상에 적용하여 매우 공포스럽다. 열정적인 주인은 자신의 젓가락으로 요리를 짚어서 당신의 앞접시에 가득 쌓아놓는다. 당신이 그 요리들을 좋아하든 말든, 먹든 말든 상관없이 주인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 했다고 여긴다. 한편 주인은 당신이 먹지 못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행위가 실례가 아니고 만약 당신이 이 유희 법칙을 모른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탓이지 나와는 상관없다는 태도이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한 중국인 새색시가 외국인 여사를 방문할 때 그녀는 고의적으로 등 뒤를 보이는 반대방향에 서서 절을 하여 외국인 여사가 굉장히 화가 났다. 얼마 후 물어서 알게 되었는데 새색시가 북쪽에 향해 절을 한 것은 황제가 북쪽방향에 계시기 때문이었다. 당시 외국인 여사는 마침 방 안 남쪽에 있어서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 심지어 안절부절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의 행위를 이해 못하는 것은 외국인 여사의 몫이지 나는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 했을 뿐이라는 태도이다.

중국인의 예의는 흔히 선물을 주고받는 데서 체현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국인의 선물증정은 선물을 받을 사람의 체면을 중히 여긴다. 선물을 증정할 때 이빨 빠질 듯한 일련의 고정된 룰들이 있다. 중국인과 왕래가 빈번한 사람은 흔히 과자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빨간 종이로 깔끔하게 포장한다. 포장 속에 먹기조차 힘든 니글니글한 기름기가 가득한 과자가 들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물을 주는 사람이 절대 도로 가져가지 않는다. 선물 받는 사람이 아무리 싫어해도 막무가내다. 그래서 선물을 받은 사람은 할 수 없이 그 물건을 또 다시 다른 중국인에게 선물한다.

중국에서는 예의상 선물에 대해 흉을 보아서는 절대 안 된다. 선물을 주는 사람은 흔히 물건의 값을 질문 받는다. 손님이 떠날 때 주인은 “부담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당신을 돈 쓰게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사말’은 하나의 관례로 되어왔다.

어느 한 외국인이 혼례식에 초청받아 갔는데 과자가 매우 많은 것을 보았다. 연회석상에서 그는 한 사람이 접시를 들고 나타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접시에 과자 세 개만 달랑 담겨있었다. 어떤 사람이 과자가 따끈하다고 칭찬을 늘여놓는다(중국인은 모두 더운 음식을 즐겨 먹는 것 같다). 사람들은 그 외국인을 귀빈으로 받들고 접시를 먼저 그에게 내밀었고 중국법을 모르는 그 외국인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차, 그렇게 모르고 한 행위가 남의 잔치에 재를 뿌리고 말았다. 접시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에 안 일인데 접시를 돌리는 것은 지역의 하나의 풍속으로서 하객들이 그 접시에 부조돈을 얹어놓는 것이었다. 술상에서 손님들의 돈을 받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므로 직접 돈을 달라고 할 수 없어 접시에 과자를 담아 형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중국인의 사회생활을 우리 서양인이 배울 점이 굉장히 많다. 비록 사람을 혐오스럽게 하는 자질구레하고 번잡한 예의지만 우리는 정성을 담아 대할 필요가 있다. 절대 좌충우돌로 맹동해서는 안 된다. 서양인의 완강한 독립정신과 동양인의 깍듯한 예의가 결합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이익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서양인은 영원히 친히 중국에 와서 이 방면에 대한 체험을 맛 볼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친구가 파리에서 다년간 머물다가 런던에 돌아왔는데 그는 파리의 풍속습관이 몸에 배서 쩍하면 모자를 벗고 머리 숙여 경례한다. 어느 한 번 한 친구가 그의 행위를 목격하고 빈정대는 말투로 “이 자식, 여기는 프랑스 원숭이가 쇼를 부리는 장소가 아니야!”라고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동서양의 예의를 모두 한 몸에 익힌다면 가시덤불이 가득한 험난한 길도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어 틀림없이 매우 행복한 생활을 누릴 것이다.

아더`스미스 저

김정룡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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