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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성격 2
2. 아끼고 또 아끼다
[371호] 2018년 07월 16일 (월)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근검절약은 살림의 기본 원칙으로서 주요하게 수입과 지출을 처리하는데 적용된다. 우리 서양인의 이해에 비춰보면 근검절약의 실천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루트에 의존한다. 수요를 제한하고, 낭비를 피하며, 적은 투자로 많이 생산하는 방식으로 각종 자원을 배분한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쪽을 관찰해보아도 중국인은 모두 근검절약의 모범이다.

중국에 와서 여행하는 서양인의 제일 첫 인상은 곧 중국인의 음식이 매우 간단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인구가 손에 꼽을 만큼의 몇 가지 안 되는 먹거리로 입에 풀칠한다. 입쌀, 각종 두제품(豆製品), 좁쌀, 야채, 물고기류 등등이다. 이 식품들이 곧 헤아릴 수 없는 중국인이 생계를 유지하는 먹거리로 되고 있다. 가끔 중요한 일이 있거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에만 그들은 육류를 조금씩 보탤 뿐이다.

현재 서방나라들은 극도로 가난한 사람에게 값이 매우 저렴하지만 영양이 풍부한 식품을 제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서양인이 중국에서 존재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매우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는 평소에 매일 2전(兩文錢)이면 성인 한 명에게 풍부한 식품을 제공할 수 있으며 아무리 굶주린 해에도 매일 1전5리(1錢5里)도 안 되는 정해진 돈으로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로서 하나의 보편적인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데 그것은 중국인의 요리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비록 중국인의 먹거리가 간단하고 거칠어 외국인이 볼 바엔 가볍고 맛이 없지만 우리는 중국인의 지지고 볶는 기술을 경험이 풍부한 요리사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미국인 커커(柯克) 선생은 ‘중국인의 요리기술을 프랑스인의 아래, 영국인의 위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을 누가 앞이고 누가 뒤인지를 커커 선생처럼 마구 단정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중국인이 기타 나라 사람들에 비해 훨씬 요리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중국요리기술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조차 먹거리 배분할 때 중국인은 매우 주도면밀하며 비록 사용할 먹거리가 극히 간단하지만 만들어낸 식품은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비록 우리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매우 쉽게 증명할 수 있는데, 중국인이 요리할 때 식자재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극도로 낭비를 줄인다는 것이다. 여느 보통의 중국가정에서 매끼 먹다 남은 음식이 다음 끼에 또 식탁에 올라오는데 그 음식이 보잘 것 없이 형편없는 것일 지라도 버리지 않는다. 이 아주 보편적인 사실을 설명하려면 고양이나 강아지의 생존조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들 동물의 ‘생존’은 정말 불행하다. 인간의 먹다 남은 찌꺼기로 연명하고 있어 늘 군침을 질질 흘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신흥국가 국민들의 낭비는 악명이 높다. 미국 같은 생활이 부유한 나라에서 매일 낭비하는 음식으로 6천만 중국인이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배불리 먹은 후 어린이 혹은 머슴에게 먹다 남은 음식을 먹게 하는데 그릇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깨끗이 비운다. 이렇듯 기이한 현상이 우리로 하여금 중국이란 거대한 대가정 속에 얼마나 되는 사람이 살찌고 있는지? 매우 알고 싶어진다. 사실상 중국인은 심지어 찻잔 속에 마시다 남은 찻잎도 버리기 아까워서 주전자에 도로 부어넣고 덮여서 마신다.

또 하나의 사실이 우리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는데 즉 식품위생문제이다. 서양인은 이 점에 대해 점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중국인은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다. 중국북방에서는 말, 노새, 당나귀 같은 동물들이 일을 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많은 지방에서는 낙타를 사용하기도 한다. 어떤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작법이 중국인이 참으로 지나치게 근검절약에 신경을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의심치 않는다. 동물이 죽으면 몽땅 먹어치운다. 부딪혀 죽든, 늙어 죽든, 병들어 죽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기실 이런 일은 중국에서 너무 보편적이어서 전혀 이상할 것 없다. 사람들은 이 때문에 시비를 일으키지 않는다. 소가 흉막염 같은 유사한 유행병 때문에 죽어도 먹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이런 병에 걸린 동물 고기를 먹으면 인체에 해롭다는 상식쯤은 알고 있어도 싼 값으로 고기를 살 수 있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여전히 다 먹어치운다. 희한한 것은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염가로 사 먹고 심지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먹는데도 실제로 병든 짐승의 고기를 먹고 탈이 난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죽은 강아지와 죽은 고양이도 중국인은 죽은 말, 죽은 노새, 죽은 낙타처럼 어김없이 요리해 먹는다. 우리가 들은 바에 의하면 시골에서는 고의로 독사한 죽은 개고기조차 먹는다고 한다. 안전문제가 신경 쓰이는지 동네 양의한테 가서 ‘먹어도 괜찮겠냐?’고 문의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 시각 독사된 개고기가 이미 가마솥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것이다. 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아름답고 사치한 맛깔스런 한 끼의 육식을 포기하지 못한다. 희한한 것은 이렇게 요리해 먹은 뒤끝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매우 무사하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근검절약의 사례가 또 있는데 밥을 짓는 일과 연관되어 있으며 연료의 결핍과 솥을 제조하는 원자재, 이 양자 간의 ‘관계’를 훌륭하게 처리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연료가 희소하여 값도 매우 비싸다. 연료로 주요하게 나뭇잎, 곡식줄기, 곡식뿌리를 기본적으로 사용하는데 ‘후루룩~’ 타버려 화력이 매우 떨어진다. 그래서 가마솥 밑굽을 아주 엷으면 엷을수록 더 엷게 제조한다. 이렇게 제조하려면 각별히 신경을 도사려야 한다. 땔감을 거둬들이는 전반 과정을 살펴보면 중국인이 극도로 근검절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아무 일도 할 줄 모르고 있지만 적어도 어른을 도와 땔감을 주워올 줄 알고 있다. 땔감을 줍는 대군(大軍)이 항상 가을과 겨울의 전야(田野)에 나타나는데 땅위의 한 포기 잡초라도 그들의 굶주린 예리한 눈길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들이 산에 가서 나뭇잎을 거둬 오라는 명을 받지만 실제로는 밤을 따오는 듯하다. 볏짚도 땔감으로 사용되고 있다지만 그것마저 흔한 것이 아니다.

모든 중국 가정주부는 옷감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잘 이용할까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옷은 서양 언니들의 옷과 달리 디자인과 가공에 각별한 신경 쓰지 않고 사전에 시간을 절약하고 정력과 옷감을 절약하는 것을 미리 짜놓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 외국 천 조각이 아무리 짜투리라 할지라도 중국부녀들은 버리지 않는다. 다시 나타날 때는 이 천 조각들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기가 막히게 사용되고 있다. 보잘 것 없는 짜투리 천 조각이 중국부녀에게 있어서 이쪽에서 쓰지 못하면 다른 저쪽에서 사용되고 있다. 더는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는 천 조각으로 깔창을 만든다. 이렇게 모든 천 조각은 버려지지 않고 적당하게 알맞게 사용되고 있다.

중국인은 흔히 친구에게 제사(題詞)를 선물하는 것으로 축하를 표시한다. 이런 제사들은 통상적으로 비단 천에 붙이지 않고 거칠게 살짝 바느질로 걸어놓는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선물 받은 친구가 제사만 뜯어내고 비단을 다른 용도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근검절약은 시장바닥 영세업자들의 장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영세업자들에게 있어서 물건이 아무리 작아도 무시당하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 소상인이 매번 다른 종류 성냥의 개비수를 정확히 말하고 아울러 매 갑에 몇 리(厘)를 번다는 것까지 한 푼의 차이 없이 알린다. 그가 이 장사에 썼던 낡은 장부 매 페이지를 창호지로, 혹은 연등지로 사용한다.

중국인이 근검절약에 힘쓰는 정신이 심지어 일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식품을 더는 쪼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그들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헨리 박사는 저서『십자가와 용』이란 책에서 중국인의 근검절약 정신에 대해 매우 설득력이 있는 실례를 말했다. 어느 한 번 그가 광주에서 출발하여 타지방에 가는데 쿠리(苦力) 세 사람이서 23마일이 되는 길을 다섯 시간에 걸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이어서 이 세 사람은 광주에 돌아가서 그들에게 남겨놓은 조찬을 먹는다. 그러니까 식전에 46마일을 걸었고 반은 사람을 메고 다녔다. 이 모든 것은 그 5전짜리 조찬을 위해서였다.

또 한 번은 두 가마꾼이 35마일을 가마를 메고 갔고 돌아올 때는 배를 탔다. 아침 여섯 시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3전이면 큰 사발의 쌀밥을 먹을 수 있음에도 아까워서였다. 이 두 사람은 이튿날 오후 2시에 광주에 돌아왔는데 27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35마일 중에 헨리 박사를 메고 15마일 걸었고 게다가 그들의 짐 무게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인의 근검절약에 대해 우리 서양인은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순박한 천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제국의 많은 지방, 특히 북방에서 남자아이든 계집애든 할 것 없이 수개월 동안 실 한 오라기 가리지 않고 사처를 유유자적하게 쏘다니는데 마치 에덴동산과도 같다. 이것은 그들에게 편하게 하려는 것도 있겠으나 주요 목적은 복장을 절약하기 위해서이다. 중국에서 이르는 곳마다 헤아릴 수 없는 외바퀴차에서 나오는 삐걱대는 기괴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사실상 그 몇 방울의 윤활유면 해결될 일을 그것마저 아끼느라 종래로 그러한 발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신경이 마비된 중국인에게 있어서 삐걱대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 몇 방울의 기름보다 더 싸기 때문에 고치려 들지 않고 있다.

만약 한 일본인이 외국에 이민 간다면 그는 계약서에 특별히 매일 몇 갤런( 액체의 부피단위로 야드·파운드계(系)의 기본단위로 영국의 단위명)의 뜨거운 물이 필요하다고 밝힘으로써 기왕의 습관대로 매일 통쾌하게 한 번 목욕을 즐길 것이다. 중국에도 목욕탕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중국인은 종래로 들어가 보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아예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느 호사가인 외국인 여인이 중국 엄마가 빗자루로 흙투성이 아이 몸을 쓰는 것을 목격하고 물었다. “매일 아이를 목욕시키나요?” 이 중국 엄마가 매우 화를 내면서 받아친다. “매일이요? 이 아이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씻어본 적이 없어요.” 일반 중국인에게 있어서 비누가 아무리 흙보다 싸다고 광고판을 집 창문 앞에 걸어놓아도 까딱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중국인은 어김없이 일반적인 외국인을 비누 낭비자라고 간주할 것이다. 마치 이태리인이 영국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중국인은 옷을 빨 때 비누를 더는 절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낀다. 옷을 빨았다고는 하는데 우리들이 말하는 깨끗함에 비하면 빨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절약하고 아끼는 본성의 영향 탓에 중국인은 일반적으로 세트로 된 공구를 사지 않는다. 거꾸로 그들은 흔히 원시적인 반성품을 사서 저절로 가공하고 또 가공하는데 완성품에 비해 훨씬 싸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이러하기에 시장에는 완성품 물건이 없기 마련이다.

앞에서 우리는 자료를 아끼는 것에 대해 말했듯이 일반적으로 집들이 매우 어둡다. 비록 등을 하나 켜는데 얼마 들지 않는데도 등 하나를 벽 사이 구멍에 두어 두 방을 비추게끔 한다. 이런 상황은 각종 가공공장, 편직가공공장, 도자기제조공장, 금속가공공장, 강철공장 등등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보건대 이러한 공업이 중국인의 근검절약을 증명하고 있을 뿐 그들의 창조적인 재능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많은 일들은 현재보다도 훨씬 더 좋은 방법으로 완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에게 있어서 그 좋은 방법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변질되고 있다. 산품생산에 있어서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듯이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제조업 분야의 특징이기도 하다. 간단한 것이든 복잡한 것이든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들은 비좁은 집 뜨락에서도 아주 작은 규모의 용광로를 앉히고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타임에 벽돌로 제철 가마를 쌓아올리기도 하는데 그럭저럭 계속 사용하고 있으며 철물을 뽑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듯하다. 게다가 매우 값싸서 꿩 먹고 알 먹기다.

원자재를 절약하면서도 거대한 성과를 이룩하는데 있어서 중국인일지라도 북경에 대량의 곡물을 바치는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좋은 예는 없을 것이다. 중국에서 매년 대량의 곡물을 황량(皇糧)으로 북경에 운송한다. 천진에서 북하를 지나 통주로 운반한다. 본래 기계로 산더미 같이 쌓인 곡물을 하역작업을 하고 저울에도 달아야 하는데 놀랍게도 몇몇의 쿠리(苦力)에 원추형 소보치 및 매우 제한된 수량의 초석(초석 : 짚으로 친 자리)이 전부이다. 이 초석을 바닥에 깔고 곡물을 쏟아놓고 저울에 달고 다시 마대에 담아 운반해 간다. 다시 초석을 거두면 모든 일이 끝나고 그 뒤에는 이 제국의 곡물 교역장은 다시 흙 언덕으로 변해 버린다.

미국의 연초재배농장주라면 가장 큰 투자는 담뱃잎을 말리는 단단하고 견고하며 보기에도 아름다운 조형의 하우스이다. 하지만 중국인은 그러한 투자는 정말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모초(茅草 : 띠)로 하우스를 짓고 모초가 오래되면 땔감으로 사용한다. 어떤 이는 모초 하우스조차 필요 없이 담뱃잎을 새끼줄로 엮어서 연간(煙杆)에 걸어서 말린다. 저녁이 되면 새끼줄 채로 훌 거두면 마치 빨랫줄에 옷을 말리는 것과 같이 간편하고 매우 효과적이어서 이 방법은 조만간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심하게 관찰한 사람이라면 모두 이 예로서 중국인의 절약관념을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아마도 이 부녀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녀는 매우 힘겹게 고통을 안고 천천히 길을 걷고 있다. 어떤 이가 물어서 안 것인데 이 여인은 친정집에 가고 있었다. 그녀가 다가가는 곳은 조상의 무덤과 가깝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여인은 죽은 후 조상무덤의 인근에 묻힐 수 있는데 관을 메는 상여 값을 치르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였다.

아더`스미스 저

김정룡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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