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18.09.26(수) 구인고충상담기사제보신문지면보기
신문사소개 | 구독신청아이디/비밀번호
> 뉴스 > 칼럼/사설 > 특별연재
     
중국인의 성격 5
5. 느긋한 민족
[371호] 2018년 07월 16일 (월)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오늘날 발달국가들에서는 ‘시간이 곧 금전이다.’라는 시쳇말이 유행되고 있다. 현대생활의 빠른 절주와 높은 효율로 완성된 사업, 그 분량이나 종류를 만약 한 세기 전의 인간이 한다면 틀림없이 많은 시간을 허비할 것이다. 증기기와 전력의 응용으로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앵글로`색슨인은 체질적으로 보나 습성으로 보나 벌써 이 면에 상응한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무슨 습관을 지니고 있었던지 우리 이 종족은 왕성한 정력의 핍박이 없이도 끊임없이 하나가 완성되면 이어서 또 하나의 일을 한다. 중국인과 앵글로`색슨인은 일 처리 방식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중국인은 안면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일반적으로 “밥을 먹었는가?”라고 인사한다. 앵글로`색슨인은 “어떻게 하였는가?”고 묻는다. 한쪽은 먹는 것을 말하고 다른 한쪽은 일하는 것을 묻는다. 이로서 알 수 있듯이 ‘시간이 금전이다’는 이미 앵글로`색슨인의 제이의 천성으로서 그들은 마지막 일초의 시간조차 그저 흘러 보내지 않는다. 이에 비해 중국인은 대수의 동양인처럼 시간관념의 속박이 전혀 없는 듯하다. 중국인의 하루 시간은 열두 개 시진(時辰)으로만 나누는데 이들 시진의 명칭이 명확하지 못하고 그저 하루 중 십이분의 일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오시(午時)’는 열한 시부터 한 시 사이를 가리키고 있다. 한 중국인이 이렇게 물었다. “달의 정오는 무슨 시간이라 부르죠?” 조금 더 똑똑하게 말한다면 그는 “저녁에 달이 중천에 뜬 때를 몇 시라고 부르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중국인의 이 질문은 그야말로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유사한 불확정성은 모든 시간과 연관되고 있는 일상생활용어에서 어김없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해가 뜰 때’와 ‘해가 질 때’는 그나마 중국어에 비교적 정확성이 있는 편이다. 경도와 위도에 관련되는 것들은 사람들이 그 시간대를 추측해낼 수 있으나 ‘야밤(午夜)’과 ‘정오’는 애매해서 특정한 의미가 없다. 중국에서 통상적으로 ‘타경인(打更人, 북과 꽹과리를 쳐서 시간을 알리는 사람)’에 의해 밤의 시간을 알리는 것은 애매모호기 마찬가지이다. 그 중 마지막 ‘일경(一更)’은 예외이긴 하다. 그 ‘일경’은 모두 날이 밝기 시작할 때이니까. 도시의 ‘타경’ 시간의 간격도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고 시간의 장단도 같지 않다. 기실 중국의 ‘타경’과 서양의 ‘손목시계’는 영문으로 한 글자인 watch다. 하지만 우리들의 휴대용 계시기에 관해서는 중국인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이에 대해 깜깜이다. 소수의 중국인이 손목시계를 차고 있으나 그것에 근거하여 일상생활 활동을 안배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몇 년 지나면 손목시계를 깨끗하게 청소하며 손보지만 말이다. 보통사람들은 태양의 높이로 시간을 확정하는데 해가 뜨면 한 장대, 두 장대 혹은 세 장대 이런 식이다. 만약 날씨가 흐려 태양이 없으면 고양이의 동공 확장과 수축 상황으로 시간을 짐작한다. 재미나는 것은 이런 토방법이 심통하게 정확하다는 것이다.

중국인이 시간을 이용하는 것은 그들이 시간의 정확도(精確度)를 측량한 것에 의지하고 있다. 시드니`스미스(1771~1845, 영국국교 목사)의 관점에 의하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하나는 사상이 낡아빠져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다른 하나는 시대에 맞춰 나아가는 사람이다. 후자는 인류의 시대는 수천 년을 경과하여 이미 더 앞으로 몇 백 년을 지속하기 어려우니 단 시간 내에 많은 일들을 하는 것으로 빠른 절주 환경에 적응하려고 한다. 이에 비해 대홍수 전의 사람은 마스사라 시대가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예전과 같이 행동이 느긋하다. 마치 생활이란 특정된 계획으로 안배가 다 된 것처럼.

중국인은 사상이 밝아빠져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다방에 고용되어 고객을 붙잡으려고 책을 말하고 예능을 뽐내는 실없는 사람 같아 텐니쎈(1809~1892, 19세기 영국낭만주의 시인)의『개울물(溪流)』을 떠올리게 한다. 고객이 빈번하게 들락날락 복잡한데도 그는 끊임없이 말하는 폼이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연 며칠 쉬지 않고 공연하지만 태국 희극공연에 비해 한 수 떨어진다. 어떤 이가 일찍 태국 방콕에서 긴긴 두 달 동안 연출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중국인의 잡기나 희극은 잘만 한다면 굉장히 교묘하고 재미있다. 그러나 그들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데 그것은 곧 공연 전의 식전행사가 재미없는데다 너무 지루해서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외국인은 사기를 당했다고 아우성치며 온 것은 굉장히 후회한다. 더 두려운 것은 중국의 연회석상인데 요리의 양과 가짓수가 상상을 초월하여 이런 연회를 경험해본 모든 외국인은 놀라움을 느끼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지만 중국인에게는 너무 짧게 느껴진다. 사람들로 하여금 깊이 사색하게 만드는 말이 있다. ‘하늘 아래 헤어지지 않는 연회는 없다.’ 하지만 이 올가미에 걸려든 오랑캐(蠻夷)들은 생기가 넘치는 이 격언을 검증하기도 전에 미리 허탈감에 빠져든다.

중국인은 아주 어릴 적부터 조상의 해온 작법에 습관 되어 일처리 한다. 학교 가기만 하면 온 하루가 걸리는데 해가 뜰 때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중간에 잠깐 두 차례 간식을 먹을 뿐이다. 과거시험은 몇 날 몇 밤 지속된다. 모든 성적은 엄격한 시험을 거쳐 얻는 것이다. 비록 대다수 응시자가 이와 같은 황당무계한 시험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나 아무도 그들의 학습 성과를 이런 시험으로 고찰하는 방식이 본질적으로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교육이 배양해낸 사람에 대해 그들이 겪은 학습과정을 쉽게 연상케 한다. 중국 언어를 말하자면 그 자체가 고로하게 낡아빠져 고리타분해서 아마 가장 장수한 사람도 평생을 공부해도 부족할 것이다. 공정하게 말해서 고대 중국인은 로마인처럼 만약 그들에게 강박적으로 자기들의 언어를 배우게 한다면 그들은 영원히 읽어내지 못할 것이고 가치가 있는 글을 써 낼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인의 역사는 고로하고 유구하며 아울러 사람들은 강열한 복고경향을 지니고 있는데 그들이 늘 상고시대 아직 세상이 혼돈에서 갓 눈을 뜨던 우매하고 낙후한 시대에로 돌아가기를 갈망하고 그 상태로 역사가 펼쳐져 나아기를 기대하고 있는데서 드러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또 심령 깊이 숨어 있는 아무 때건 별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끊임없고 혼탁한 사상적 경향에서도 체현된다. 사실상 마음을 훔치고 있는 것은 역대 ‘거목’도 있지만 헤아릴 수 없는 고목의 썩은 가지들도 많다. 오직 시간관념이 결여된 사람만이 쓰고 그 역사를 배운다. 또 오로지 중국인의 기억만이 이러한 역사를 넓디넓은 기억의 창고에 저장해 둘 것이다.

중국인의 시간관념이 결핍하다는 것은 그들의 부지런함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우리들이 이미 말했듯이 그 노동의 긴장도는 앵글로`색슨인에 비해 굉장한 차이가 있다.

중국인은 집짓기를 좋아한다. 수천수만의 중국인이 몸소 하도급 업자, 장인(匠人)들과 함께 한 채의 집을 짓는 ‘재미’를 경험하고 나면 모두 또 다시 한 번 짓기를 갈망하게 된다. 노동자는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며 시도 때도 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차를 마신다. 그들은 아주 먼 길을 가는데 먼 곳의 석회무지에서 기껏해야 한 포대의 석회를 운반해온다. 만약 외바퀴 리어카를 사용하면 세 사람의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바라는 효율이 아니다. 비가 올라치면 그들은 곧 일을 멈춘다. 사정이 늘 이렇다보니 아무리 죽기내기로 일을 해도 진척이 매우 늦어서 이 사람들의 하루의 ‘품삯’을 계산하기가 아주 어렵다. 우리들이 듣기로는 한 외국인이 그가 청한 목공이 널빤지를 붙이는 속도에 불만족하여 그들이 밥 먹는 시간을 이용해 자신이 틈을 타 일했는데 결과 네 사람이 반나절 하는 일을 해냈다.

자기의 도구를 파손하고는 늘 그것을 수리하는 것이 중국노동자들이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렇지만 만약 외국인의 도구라면 사정을 보지 않는다. 도구가 살며시 망가졌고 아무도 그것을 건드린 적이 없다고 우긴다. “나는 그곳에 간 적이 없다.”는 말은 이럴 때 가정 적합하고 유용한 용어이다. 가시오(椽木) 나뭇가지를 벽에 기대어 세워놓고 새끼줄로 사이사이를 얽어놓으면 하나의 비게가 완성된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매일 위험이 사처에서 도사리고 있다. 기왕의 모든 경험은 오늘날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모래, 석회와 본지의 진흙은 본래 모두 사용이 가능한데도 오늘날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의 기억 중에 줄곧 똑똑히 각인된 것은 한 광동의 하도급업자의 모습이다. 그의 언약과 금전은 자욱한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그는 아편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참을 수 없어 그가 잘못한 과오에 대해 낱낱이 파헤쳤다. “사전에 당신한테 유리의 치수의 크기를 알렸고 당신도 수차례 와서 창문을 재이였건만 전부 틀려 유리를 못 쓰게 되었다. 문이 잘 닫기지 않고 마루 널빤지들이 너무 짧거나 너무 작아 전부 병신이 되어 쓸 수가 없다.” 조금 지나서 이 성격이 온화한 광동인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하는 사람을 뚫어지게 보더니 화기애애한 어투로 “다시는 말하지 말아요, 다시는 말하지 말아요. 이건 신사의 풍도를 잃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앵글로`색슨인의 극도의 짜증이 불가사의한 것이고 조금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혜롭게 지적했듯이 중국인이 우리들의 인내심이 결핍한 것을 싫어하는 것이 마치 우리가 중국인을 믿음이 결핍되어 있어 싫어하는 것과 비하면 도진개진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중국인으로 하여금 빠르고 신속함의 중요성을 의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건을 들었다. 외국에서 온 우편 한 건이 12마일 떨어진 두 도시 사이에 며칠 동안 지체되었다. 이유는 우편배달부의 당나귀가 병에 걸려 치료받고 휴양이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중국 우전총국의 관리시스템은 그의 취지에 비해 졸렬한 왜곡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가능하게 이러할 것이고 또 마땅히 이러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이 가장 화나는 것은 중국인이 보통사교방문에서 시간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방문은 서양에서는 시간의 제한이 있고 일정한 시간을 벗어나면 방문시간이 더는 연기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 방면의 제한이 전혀 없는듯하다. 오직 주인이 손님에게 여기서 묵으라는 암시가 있을 때까지 손님은 줄곧 주인을 동무하여 한담을 해야 한다. 아무리 이미 지쳐 있어도 막무가내다. 외국인이 방문할 때 중국인은 근본적으로 귀중한 시간이란 이 개념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앉으면 몇 시간 동안 할 말을 다 늘여놓고도 주동적으로 자리를 뜨는 법이 없다. 어떤 한 유명한 목사의 좌우명이다.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역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만약 그가 중국에서 얼마간 머물게 된다면 반드시 이 말을 완전히 수정해버릴 것이다. 이 면에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또 다른 분망한 목사처럼 서재의 눈에 띄는 곳에 “주님께서 당신을 여기를 떠나게 해주십시오!”라는 격언을 걸어놓을 것이다. 이런 직언으로 알린다면 불같은 성질의 중국인의 마음이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너무 긴 시간이라 열 사람의 유럽인 모두 인내심을 잃게 될 것이다. 마지막에 그가 말을 시작한 후에야 다음과 같은 격언이 떠오를 것이다. “산에 올라 호랑이를 잡는 것은 쉬우나 말을 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더`스미스 저

김정룡 역

김정룡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동포타운신문(http://www.dongpotow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sk텔레콤
< ahref=http://www.kqci.kr>
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2-800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 122-19 정풍빌딩 3층 | Tel 02-837-4470 | Fax 02-837-4407
Copyright 2009 동포타운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ongpotown@daum.net
동포타운신문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