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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 대감을 찾아서
[366호] 2018년 05월 01일 (화)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지난 20일 나는 아내와 같이 경기도 광명시에 갔다가 오리로 지나는 길에 우연히 ‘기형도문학관’이 눈에 안겨왔다. 나와 아내는 글에 관심이 있어 문학관을 만나면 그냥 스쳐 지나는 법이 없다. 꼭 들러서 구경하고야 직성이 풀린다. 나보다 나의 아내가 기형도 시인의 <빈집>이 어떻고 하면서 우연한 ‘발견’에 몹시 흥분된 기색이었다.

‘기형도시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오리로 대로변에 나섰는데 길 건너편에 ‘오리서원’이란 간판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솔직히 아내는 문학관에 더 관심이 있고 나는 옛 선비들의 정취를 풍기는 ‘서원’에 더 끌린다. 아마 아내는 문학에 더 관심이 있고 나는 역사에 더 관심이 큰 이유일 것이다.

‘오리서원’, 처음 보는 학당의 이름이라 “저 서원의 주인이 누구이지?”라는 의문이 나를 감싸 안았다. 직접 가보니 조선 중기 유명 청백리 오리 이원익 대감님의 서당이었다.

‘오리서원’은 학당 건물 하나뿐이고 그 옆에 이원익 대감이 잠들어 계시는 묘가 있었다.

대감의 서원과 묘 달랑 이 두 가지만 구경하고 나니 맘이 허전해났다. 머리 들어 주변을 살폈더니 서원에서 650미터 떨어진 곳에 ‘충현박물관’ 안내 간판이 눈에 띄었다.

‘충현박물관’은 오리 이원익 대감의 고택이다. 이제부터 제대로 된 구경이 시작되었다.

“뜻과 행동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고 분수와 복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라.”

오리 이원익 대감의 좌우명이다. 그는 88세의 평생을 이 좌우명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살아와 조선역사에서 가장 청렴한 관리로 이름을 남겼다.

오리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은 태종의 아들 익녕군(益寧君)이치(李礻+多)의 4세손으로 지금의 광명시 소하동에서 태어났다. 왕족 직계후손은 4세까지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룰이 있었는데 오리 이원익 대감은 이 룰에서 자유로워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오리 이원익 대감은 조선 시대 인물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무형 관료 중 하나였다. 광해군과 인조가 모두 첫 영의정으로 선택한 인물이기도 하고 선후하여 여섯 차례 영의정에 올랐다.

오리 이원익 대감은 키는 난장이지만 오지랖 넓기로 대해 같았다.

인조반정 직후 살기등등한 반정군 사이를 유유히 지나 유폐되어있던 광해군에게 왜 자기 말을 듣지 않았냐면서 눈물을 흘리자 광해군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궜다는 일화가 있다. 또한 인조에게 "광해군을 사사한다면 자신도 관직에 더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도 하는데, 애초에 둘 다 야사일 뿐이며 광해군을 살리는 건 인조를 포함한 반정 측 인사들의 공통된 합의였기에 딱히 그런 발언이 대단한 게 아니라곤 하지만 새로이 득세한 왕과 그 무리를 두고 쫓겨난 왕에게 예를 다한 점은 범상한 게 아니다.

이듬해 이괄의 난 때에 공주로 피란하는 왕을 모셨으며, 정묘호란 때에는 도체찰사로 세자를 호위하여 전주로 갔다가 강화도로 와서 왕을 호위했다. 서울로 환도한 뒤 훈련도감 제조에 제수되었으나 고령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고 오리곡(지금의 광명시 소하동 인근)으로 낙향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왕의 부름이 있었으나 응하지 않았다.

1634년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사후 인조의 사당에 함께 모셨다. 신하로서 왕족의 사당인 종묘에 모셔진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 만큼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었다는 증거이리라.

사상적으로, 이원익은 공리공론에 머물지 않고 실제적으로 정치 및 행정에 활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같은 사상은 최초로 대동법 시행을 정책적으로 실현한 면모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연풍 현감으로 부임하는 손자에게 내려준 지침에는 마음가짐을 비롯하여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방법, 쓸데없는 일을 벌이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 등 실질을 숭상하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유서를 비롯한 유훈에는 풍수설에 구애받지 말고 소하동 선산에 안장할 것을 당부하였고, 재물로 가족들이 화목하지 못함을 경계하여 불의한 재물을 모으지 말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오리 이원익 대감은 키가 1M도 안 된다는 기록도 있고 138센티였다는 설도 있다. 분명한 것은 키가 작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야사에 따르면 관직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었을 당시에 영의정 이준경이 그를 천거하면서 몸이 약해 산삼 20근은 족히 먹여야 하지만 빈궁하여 그러질 못하고 있다고 하자 선조는 즉시 산삼 20근을 내렸다. 그 후 벼슬길에 오른 신임 관리들을 친견하는 자리에서 이원익의 모습을 보고자 하니, 이준경이 "이원익은 키가 매우 작으니, 발돋움하셔야 보일 것입니다" 하니 정말 그러했는데 이 모습을 본 선조는 "아까운 산삼만 버렸구나"라며 웃었다고 한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명종이 산삼 20근을 주고 "아까운 산삼만 버렸구나"라고 웃고 훗날 임진왜란이 터진 후에 이원익이 종횡무진 활약하자 선조가 "선왕께서 잃어버린 산삼을 이제야 찾았구려"라고 했다고 한다.

오리 이원익 대감 자신도 키가 작은 것에 콤플렉스가 컸던지 젊을 적에 한 치(약 3cm)가 되는 키 높이 나막신을 신고 다녔는데, 그것을 본 관상쟁이가 "아깝다, 키가 딱 한 치만 작았으면 영의정이 될 상인데."라고 하며 혀를 찼다고 한다. 그러자 이원익은 그 자리에서 나막신을 벗었고, 관상쟁이는 미래의 영의정을 뵙는다며 절을 올렸다고 한다.

영의정 시절 한 번은 이원익이 사가에 다녀올 일이 있어 길 안내할 아이 하나만 데리고 길을 떠났다. 길을 가던 도중 주막에서 국밥으로 요기를 하는데 하필이면 그날 그 고을에 신임 사또가 행차한 날이었다. 사또는 주모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오라 강요했고 주모는 할 수 없이 쌀과 고기를 빌려다가 사또의 상을 차렸다. 그런데 정작 한 상 잘 차려먹은 사또는 주모에게 음식값 한 푼 주지 않고 무전취식 그대로 가버린 것. 이에 크게 분개한 이원익은 곧장 관아로 가 사또를 크게 질책하고 직첩과 관인을 도로 빼앗았다고 한다.

유배 당시에는 별로 할 일이 없자 서툴게나마 돗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원익 본인이 말하기를,

"글과 친하려니 노후(老後)가 가까웠고, 글씨나 시를 즐기자니 혼자서 하기는 겸연쩍다. 사람들과 모여서 즐기자니 어울릴 만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장기나 바둑은 악습(惡習)이라 좋아하지도 않는다. 반면 돗자리를 짜면서 소일하면 백 가지 잡념이 가라앉곤 한다."

나이가 일흔이 다 되어가고 늦게 배운 솜씨라 서툴렀지만 계속 이것만 만들다보니 나중에는 제법 실력이 늘었고 그렇게 만든 돗자리를 거리낌없이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배가 풀리면서 영의정이 되자 유배 당시에 그가 만든 돗자리는 영상 대감이 만든 돗자리로 알려져 값이 엄청 올라 그냥 받은 돗자리를 5백냥이나 되는 거액에 판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 이름하야 영상수직석(領相手織席).

어찌나 청렴한 생활을 했던지 다 쓰러져가는 방 두어칸의 초가집에서 살았고 말년에 인조가 그 청렴함을 높이 사 5칸짜리 집을 하사했다. 관값마저 없어 결국 나라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다고 한다.

출생지인 경기도 광명시에 가면 이원익 관련 박물관인 충현 박물관과 함께 그의 묘소가 있다. 다만 이원익의 고택은 일제 강점기에 다시 중건된 것. 또한 그의 호를 딴 도로명인 '오리로'가 있다.

광명시는 2018년 3월 28일부터 12월 15일까지 전국 공직자 및 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2018 오리이원익 공직자 청렴교육’을 시행한다.

교육은 오리서원에서 진행하며 이원익 선생의 정신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배우는 ‘청렴특강’과 문무겸전의 인재상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국궁’, 손끝으로 청렴정신을 느껴볼 수 있는 ‘서예 캘리그라피’, 교육연극을 통한 소통활성화 프로그램인 ‘포럼연극’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문화공연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전문해설사가 교육생을 안내해 이원익 유적지(이원익 묘소, 충현박물관 등)를 답사하고 청빈한 삶을 살았던 이원익 선생의 생애와 공직자로서 자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오리이원익 공직자 청렴교육은 2015년부터 실시해 매년 4,000여명의 공직자들이 수료했다. 일반교육 및 광명동굴 견학 포함 교육 수료자에게 각 3시간, 7시간의 교육 시간을 부여하며 교육비는 각 20,000원, 5,000원이다.

교육은 사전 예약제로 진행되며 문의는 오리서원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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