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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로 보는 배달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 (2)
2. 『삼국유사』는 ‘불법체류’ 신세
[332호] 2016년 12월 01일 (목)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도가에 한의학(중의학), 풍수학, 명리학 등 3대 학문이 있다. 이 3대 학문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출제될 만큼 중시 받았다. 그러다가 근대화시기 불어 닥친 ‘양학’이 광복 후 ‘동학’을 밀어내고 ‘권위’ 자리에 올랐다. 이런 환경에서 그나마 유교학설은 하도 뿌리 깊어 생존해 있었던데 비해 도교학설은 무대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의학은 간신히 겨우 연명할 정도로 무대에 다시 명함을 내밀게 되었고 풍수학은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비해 명리학은 아직도 뒷골목에서 쉬쉬할 만큼 공명정대하게 대로에서 떳떳이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의학, 풍수학, 명리학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현주소에 대해 어느 유명 학자는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로 비유했다. 한의학은 시민권을 획득했고 풍수학은 영주권을 부여받고 있는데 명리학은 아직도 불법체류자로 취급받고 있다.

필자는 이 우스갯소리 비유를 보면서『삼국유사』가 떠올랐다.

광복 후 특히 산업화시대부터 대한민국에서 활보할 수 있는 학자들은 소위 구미권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다. 동양학자들은 양학자들에게 밀려 있었다. 동양학자들의 지위가 이럴진대 우리 전통‘한학(韓學 : 필자가 지어낸 말, 전통한학의 대표적인 서적으로서 필자는『삼국유사』를 꼽는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설명을 좀 해야겠다. 필자는 동양학이란 말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한국학계에서 말하는 동양학은 중국, 조선, 일본을 비롯한 동아세아의 학술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중국학(漢學)이 절대적이다. 조선시대 성리학, 이한기의 기철학, 이제마의 사상의학 등 ‘우리 것’이 분명히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내세우지 못하는 두루뭉술한 표현인 동양학이라 말하고 있다. 그림도 마찬가지, 분명 조선특색이 있는 조선화가 있는데도 이것을 내세우지 않고 역시 동양화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한다.

동양학이란 어휘를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필자는 국학이란 표현을 지지하지 않는다.

국학이란 말은 일본이 중국문화의 그늘에서 흘러오다가 중국에 비해 한 발 앞서 양학을 받아들여 좀 잘 나간다하는 시점에 이르러 자기네 것을 중국과 구분 짓고 차별화를 강조하며 폼 잡아보려고 창안해 낸 것이 이른바 국학이란 개념이다. 국어란 표현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생겨난 것이다. 일제영향을 받은 한국이 국학, 국어라는 표현을 여과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것’을 무엇이라 표현할까? 필자는 국학 대신 ‘朝鮮學’, 혹은 ‘韓學’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국학이란 개념은 얼핏 보면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기실 애국주의가 너무 지나치게 강요되면 인간은 편협해진다. 이런 맥락에서 국학이란 개념은 스스로 경계가 뚜렷한 협소한 범위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韓學’이란 개념을 선호한다.

양학, 漢學, 韓學 을 상기 비유와 연관 지어 말하자면 양학은 시민권자이고 漢學은 영주권으로 남아 있고 韓學은 ‘불법체류’ 신세이다.

대한민국 산업화시기부터 현재까지 서양의 과학, 철학, 정치, 경제, 문화, 문학에 이르기까지 서양서적 역본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들 서적들의 번역이 비교적 잘 진행되고 있고 독서시장도 폭 넓게 확보하고 있어 ‘양학’은 시민권자의 지위를 획득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광복 후의 漢學은 조선시대에 비하기에는 어림도 없고 또 비록 ‘양학’에 첫 자리를 내주었으나 중국『사기』를 비롯한 역사서, 사서오경을 비롯한 유교경전, 도가 계열의 주역, 황제내경 등 번역수준이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사서인『삼국사기』와『삼국유사』의 번역은 엉망일까?『삼국사기』가『삼국유사』에 비해 번역이 조금 낫기는 하지만 역시 오류투성이다.

이에 관련하여 필자는 전 청화대학교 교수였던 정인갑 선생에게 자문을 구했다. 정인갑 교수 왈, “중국역사를 보면 당나라까지의 문헌들이 ‘문언문(文言文)’으로 되어 있다. ‘문언문(文言文)’을 한국어로 번역하려면 천자문 풀이 식의 역법(譯法)이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송나라 초기부터 문헌에 漢文 일색이 아닌 漢語 구두어(지금의 표현에 따르면 백화문)가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이 구두어들이 천자문식의 번역으로 하면 뜻이 엉뚱하게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삼국사기』가 1145년이니 송나라 중기여서 김부식도 구두어 한어표현을 일부 사용했고『삼국유사』는 1280년이니 송나라 말기에 해당되므로 구두어가 더 증가되었다. 그래서 한국한학자들의『삼국사기』번역에 오류가 많고『삼국유사』의 번역이 더욱 오류투성이다.”

한문만 알고 한어를 모르는 한국 한학자들의 번역이 얼마나 엉망이냐면, 『황제 소녀경』에 남자가 처음 여자와 운우지정을 나눌 때 남자가 너무 긴장하면 여자의 음부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다는 뜻인 한어 ‘摸不淸孔道’를 한국도교학회 최창록 교수는 우리말로 '깨끗하지 못한 것을 만지다'로 옮겼다.

번역에는 譯도 중요하지만 注도 매우 중요하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주석을 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고전이라면 주석이 더 중요하다.

먼저 번역부분부터 살펴보자.『삼국유사』에 수많은 편 말미에 ‘讚曰’이란 어휘가 등장한다. 하정룡 선생은 ‘讚曰’를 한국어로 ‘찬에 이른다.’로 옮겼고 다수 역본들을 살펴보니 ‘찬에 이르기를’ ‘찬한다’ 등등 중구난방이다. 문제는 중구난방이라 허더라도 독자들이 그 뜻을 쉽게 이해하면 되지만 수많은 독자들이 무슨 의미인지? 머리를 가로 흔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병도 선생은 ‘讚하노니’라고 옮겼는데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다른 역자들에 비해 나은 편이다.『삼국유사』에 등장하는 ‘讚曰’ 뒤에 노랫말 혹은 시구처럼 찬양하는 구절들이 있기 때문에 마땅히 시적감각이 드러나게 ‘찬양 하노라’로 옮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하나의 어휘 번역을 통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옮긴 역자나 알아보지 일반 독자들은 특히 비한문세대(非漢文一代, 한문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청소년들) 젊은이들은 아예 알아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번역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인데 전달이 엉망인데 누가 읽겠는가?

한문이나 한어에 밝지 못한다면 상식적으로 사고해도 옳게 옮길 수 있건만 상식을 떠난 번역들이 나타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삼국유사』기이권제일(紀異券第一)30 진흥왕 편 첫 구절 원문은 다음과 같다. 第二十四眞興王, 卽位時年十五歲, 太后攝政. 太后乃法興王之女子, 立宗葛文王之妃, 終時削髮被法衣而逝. 이 구절을 이병도 선생을 비롯해 절대다수 역자들이 ‘제24대 진흥왕이 즉위하니 이때 나이가 열다섯 살이었으므로 태후가 섭정하였다. 태후는 바로 법흥왕의 딸이요, 입종갈문의 아내로 죽을 때는 머리를 깎고 중 법의를 입은 채 세상을 떠났다.’고 옮겼다. 여기에 엄중한 번역오류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족보가 개판으로 번역했다. 즉 법흥왕은 진흥왕의 아버지이며 전대인 제23대왕이었다. 누구의 여자라는 것은 그 남자의 처 혹은 애인 혹은 뜻을 같이하며 같은 길을 걸으며 사업을 함께 하는 ‘혁명적인 동지’를 의미할 때도 있다. 예하면 국민의 당 박선숙 의원을 언론에서는 ‘안철수의 여자’라고 표현하고 있고 또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이었던 강금실 씨를 ‘노무현의 여자’로 표현했다. 그러니까 누구의 여자라고 할 때 그 남자와 부부관계이거나 애인 혹은 굉장히 친한 친분이 있는 동지적 관계를 의미하지 절대 누구의 딸이 아니다. 또 태후는 왕의 어머니를 뜻한다. 대왕대비는 왕의 조모(할머니)이다. 연산군의 시절 인수대비가 곧 그의 할머니였다. 진흥왕이 즉위할 때 나이 15세였고 어려서 태후가 섭정했다면 그 태후는 진흥왕의 어머니이다. 역자들의 번역에 따라 ‘法興王之女子’를 법흥왕의 딸로 번역한다면 세상 웃기는 일이 발생한다. 왜냐? 법흥왕은 진흥왕의 아버지이고 법흥왕 여자가 그의 딸이라면 그 여자는 진흥왕의 누이로서 진흥왕과 그 여자는 오누이 관계가 되는데 그렇다면 누나 혹은 여동생이 진흥왕 즉위 시 섭정했다는 뜻이 된다. 이는 정말 어처구니없이 상식을 벗어난 번역이고 또 신라 왕족의 족보를 뒤죽박죽으로 개판으로 만들어 놓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니 이런 번역본이 어떻게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삼국유사』기이권제일(紀異券第一)31 도화녀 비형랑(桃花女 鼻荊郞) 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제25대 진지왕은 문란하고 음란하여 집정 4년 만에 폐위되었다. 그가 집정 중에 사량부 백성신분의 한 여자가 있었는데 용모가 아름다워 그녀를 도화랑이라 불렀다. 왕이 소문을 듣고 궁중에 불러들여 수작을 걸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여자의 지켜야할 것은 두 남자를 섬기지 않는 것이며 남편이 있는 여자가 어찌 다른 남자를 따를 수 있겠나이까? 비록 제왕의 위엄이라도 절대 정조를 빼앗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殺之何?”라고 말한다. 이 구절을 이병도 선생부터 절대다수 역자들이 “너를 죽이면 어찌하려느냐?”고 옮겼다. 이는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고 한문 번역도 틀린 치명적인 오류이다.

중국어 ‘之’는 다수의 경우 우리말 조사 ‘의’와 같다. 그러나 사람을 가리킬 때는 3인칭이다. 즉 ‘나’가 일인칭이고 ‘너’가 이인칭이라면 ‘그(타)’는 3인칭이다. “殺之何?”에서 ‘之’는 ‘너’가 아니라 ‘그’이다. 그럼 ‘그’는 누구인가? 그가 바로 도화녀의 남편이다. 즉 왕은 네가 나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너의 남편 때문이라 하는데 그럼 내가 그(남편)를 죽이면 나의 요구를 승낙할 것인가? 이런 뜻이다.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를 취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걸림돌이 된다면 그의 남편을 죽이지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는 남자가 어디 있는가?

중국문언문에서 ‘너’는 ‘之’가 아니라 ‘汝’이다. 2년 후 도화녀의 남편이 죽었다. 그러자 왕이 찾아 가 ‘汝昔有諾, 今無汝夫可乎?’란 구절이 있는데 연속 두 번이나 ‘汝’가 등장한다. 번역하면 ‘네가 예전에 나와 언약이 있었고, 지금 너의 남편이 없으니 나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겠지?’이다.

『삼국유사』십 수 종의 역본들을 살펴보면 주석이 제대로 이뤄진 것이 단 한 권도 없다. 그 중에서 그나마 이병도 선생의 주석이 가장 나은 편이고 나머지는 미흡하기 그지없다.

『삼국유사』기이권제일(紀異券第一)1에 ‘河出圖, 洛出書, 而聖人作’란 구절이 있다. 이를 이병도 선생은 ‘河水에서 圖가 나왔고 洛水에서 書가 나와서 聖人이 일어났다.’ 옮기고 주석까지 달았다. 즉 ‘中國古代 伏羲 때에 河水에서 龍馬의 圖가 나오고 夏禹 때에 洛水에서 神龜의 書가 나왔다는 傳說에 依據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이쯤의 주석은 가장 잘 된 해석이다. 나머지 역자들은 다수가 ‘하수에서 도를 내고 낙수에서 서를 내어 성인이 일어났다.’고 옮기고 어떤 역자는 아예 ‘하에서 도가 나오고 낙에서 서가 나와...’ 이렇게 옮기고 주석이 없으니 독자들이 무슨 뜻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 구절을 해석하면 이렇다. 황하에서 그림이 나오고 낙수에서 서가 나왔다는 것은 황하와 낙수는 중국인의 발상지이자 중국문명의 발원지이다. 그림과 문자가 합쳐 도서라고 하는데 도서는 문명의 상이이다. 도서관이 문화의 상징이자 문명의 상징이 된 것은 이로서 비롯된 것이다. 도와 서가 중국문명의 상징이고 이 문명은 황하와 낙수에서 발원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삼국유사』가 배달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잘 반영한 정말 훌륭한 사서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의 수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아주 적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필자는 역주가 문제인 것이 한몫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삼국유사』를 ‘불법체류’ 신세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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