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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로 보는 배달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 (1)
1.『삼국유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331호] 2016년 11월 16일 (수)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영토를 잃은 민족은 회생이 가능하지만 역사를 잃은 민족은 희망이 없다.”『조선상고사』의 저자 단재`신채호의 말씀이다.

유태인은 2천 년 동안이나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로 지구촌에 흩어져 살았어도 민족이 소실되지 않고 존재했으며 끝내 자기들의 나라 재건에 성공했다.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역사를 지켜온 덕분이었다. 실제로 유태인은 그들의 역사이자 그들의 종교이며 그들의 종교이자 그들의 역사였다. 세상에서 이렇게 역사와 종교가 일치한 민족은 유태인밖에 없다. 또 유대율법을 풀어 쓴 유태인의 삶의 지침서인『탈무드』는 어느 나라에서 살든 무릇 유태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자리매김 되어왔다. 그래서일까, 하여튼 유태인은 오늘날까지도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약 배달민족이 2천년 동안, 아니 200년 동안이라도 나라를 잃었다면 재생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배달민족은 자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배달민족은 기록에 굉장히 약한 민족이다. 역사서다운 역사서『삼국사기』는 1145년, 야사이긴 하나 해방 후 한국학계의 중시를 받고 있는『삼국유사』는 1280년 출간되었다. 이는 중국 역사서라고 말할 수 있는『춘추』를 제쳐놓고『사기』에 비하면 1200년 뒤쳐져 있고 일본의『고사기』와『일본서기』에 비해도 600년이나 떨어져 있다.

늦게나마 출간되었으니 좋은 일이지만 이 두 사서에 대해 갑론을박이 자자하다.

먼저 김부식이 지은『삼국사기』부터 살펴보자.

김부식이『삼국사기』를 편찬한 목적은 그가 왕에게 올린 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의 식자층들조차도 우리 역사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개탄하면서, 첫째 중국 문헌들은 우리나라 역사를 지나치게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으니 우리 것을 자세히 써야 한다는 것, 둘째 현존의 여러 역사서의 내용이 빈약하기 때문에 다시 서술해야겠다는 것, 셋째 왕·신하·백성의 잘잘못을 가려 행동 규범을 드러냄으로써 후세에 교훈을 삼고자 한다고 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통해 유교적 이상 국가를 실현하는 데 거울로 삼으려 한 것이 최종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12세기 당시 상황에서 그때의 지식인이 갖출 수 있는 최상의 민족주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김부식이 취한 철저한 사대주의적인 태도 때문에 모처럼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과 필요성을 자각하였지만, 지나친 중국 의존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입방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찌되었든『삼국사기』는 후세 사학자들이 고대한반도 역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참고서 역할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이 책의 역사적 가치는 높게 평가받아야 마땅하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사를 크게 정사와 야사로 나누는데 이른바 왕조중심의 역사를 기술한 것을 정사라 하고 민간 역사문화를 서술한 것을 야사로 취급한다. 이런 맥락에 따라『삼국사기』를 정사,『삼국유사』는 야사로 취급한다.

왕조중심의 정사도 중요하겠으나 신화를 포함한 민간 역사문화를 서술한 야사가 매우 중요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정사인『삼국사기』에는 단군신화와 고조선에 대한 언급조차 없는데 비해 야사인『삼국유사』에는 이러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지금 우리 겨레가 주장하고 있는 배달민족 조상을 단군으로, 최초 국가를 조선(고조선)이라 하는 것은『삼국유사』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배달민족의 고대 신화, 민속, 경제, 종교, 풍속 등 여러 분야의 역사를 담은 사서는『삼국유사』가 유일하다.

그러나 이토록 중요한 사서인『삼국유사』는 오늘날 제대로 된 번역서조차 없는 상황이라 서글프고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삼국유사』는 고려 때 지은 것이기 때문에 한문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을 시도한 학자는 이병도 선생이며 1943년이 최초였다. 그때는 일제강점기어서 이 책의 번역서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병도 선생은 1956년 재출간했다. 그 후 지금까지 십 수 명에 이르는 학자들이 이 책의 편역, 번역, 역주에 매달려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나 필자가 보건대 전부 이병도 선생의 번역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고 절대다수가 베껴내는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심지어 이병도 선생의 번역에 비해 더 어휘사용과 문법을 포함한 문맥이 더 어색한 것도 있다.

번역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그나마 넘어갈 수 있으나 번역이 원문에 비해 엉뚱한 뜻으로 번역되어 있거나 명사와 동사를 구분 못하거나 한문 어휘 뜻을 이해하지 못해 저자가 전하려는 의도가 전혀 전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후 문맥이 뒤죽박죽이 되어 무슨 뜻인지조차 이해 못할 번역이 수두룩하다. 번역이 이토록 수준이 낮기 때문에『삼국유사』의 진정한 가치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묻혀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폐단이 존재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번역이 이토록 엉망이지만 대한민국교육부 관리들과 사학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필자는 우리민족 역사서를 집필한 학자에게『삼국유사』제대로 된 번역본이 한 권도 없다는 말을 했더니 ‘금시초문’이란다. 아마 절대다수 사학자들이 이 분처럼 모두 ‘금시초문’일 것이다. 문제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어느 드라마 대사가 떠오른다. “당신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아는가? 당신의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사학계의 현주소이다.

이병도 선생을 포함해 왜 수많은 사학자들이『삼국유사』를 제대로 번역해내지 못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한국 사학자들은 보편적으로 한문에 밝다. 문제는 한문에는 밝으나 한어에는 까막눈이다. 가령 현대한어 즉시의 뜻인 ‘立刻’을 세워서 조각하다, ‘老虎’를 늙은 범, ‘開胃’를 위를 짼다는 등 전부 천자문식으로 번역하다 보니 뜻이 엉망이다. 우리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중국말 속담 ‘車到山前必有路’를 수레가 산에 이르려면 반드시 길이 있어야 한다로 번역하니 한심하다는 말밖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삼국유사』에서 등장하는 한어를 천자문식으로 번역하다 보니 한어 어휘들이 제대로 번역 될 리가 없다. 예를 들어『삼국유사』권3 彌勒仙花 未尸郞 眞玆師 편에 ‘下榻’라는 어휘가 있는데 이병도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학자들이 이를 ‘말석’이라 번역했다. ‘下榻’은 동사이지 명사가 아니다. 그 뜻은 ‘머물다’이다. 하정룡 선생이 유일하게 ‘머물다’로 번역했다. 원문의 뜻은 ‘절간에서 잠시 머물면서 미륵선화를 기다리겠습니다.’인데 나머지 분들은 전부 ‘이 절간의 말석에서 기다리겠다.’고 오역하고 말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서점인 교보문고에 진열되어 있는『삼국유사』역본 십 수 권 일일이 살펴보았는데 첫머리 번역부터 중구난방이다. 예를 들어『삼국유사』첫머리를 ‘敍曰’로 시작되는데 역자마다 제각각으로 번역했다. 이병도 선생은 ‘敍曰’을 현대한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한문 ‘自敍’라고 달았다. 최호 선생은 ‘서(敍)한다’, 하정룡 선생은 ‘차례를 정하여 말하기를’, 이재호 선생은 ‘서술해 말한다’, 최광식 선생은 ‘서문에 이른다’, 최광식 선생과 백대재 선생 공역에서는 ‘서에 이른다’고 옮겼고 신태영 선생과 임명현 선생은 아예 ‘敍曰’을 무시해 버리고 번역하지 않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공동 편역에서는 ‘머리말’로 옮겼다. 이 중에서 ‘머리말’로 옮긴 것이 가장 적합한 번역이고 ‘敍曰’을 무시하고 옮기지 않아도 무방하다.

임명현 선생의『삼국유사』편역에서는 첫 구절에 등장하는 ‘仁義’를 ‘人義’로 잘못 표기하는 오류를 범했다. 물론 뜻을 모르고 한 일이 아니고 실수로 인한 오류라고 하지만 첫 구절부터 오류가 발견되면 이 책을 읽을 맛이 삽시간에 도망가고 만다.

또 첫 머리에 등장하는 ‘大抵古之聖人, 方其禮樂興邦, 仁義設敎, 則怪力亂神, 在所不語.’ 이 구절의 번역도 중구난방이다. 고전연구실 옮김 신서원 편집부 꾸밈으로 된『삼국유사』는 “무릇 옛날 성인이 바야흐로 문화(예악)로서 나라를 창건하며 도(인의)로써 교화를 베풂에 있어서 괴변이나 폭력이나 도깨비 이야기는 어디서나 말하지 않았다.”로 옮겼다. 여기서 예악을 문화이고 인의를 도라고 옮긴 것은 오류이다. 괴력난신의 ‘怪’를 괴변이라 옮기는 것 오류이고 ‘力’을 폭력으로 옮기는 것은 더욱 오류이고 ‘神’은 도깨비가 아니다. 이 문장에서의 괴력난신은 초자연적인 힘을 의미한다. 즉 공자 같은 성인은 철저히 현실주의자로서 “귀신을 경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라는 말씀을 남겼듯이 그 어떤 초자연적인 신을 믿지 않았다. 또 이민수 옮김 을유문화사 출판본인『삼국유사』는 “대체로 옛날 성인은 예절과 음악을 가지고 나라를 세웠고 인과 의를 가지고 백성을 가르쳤다. 때문에 괴상한 일이나 힘이나 어지러운 일,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로 옮겼고 나머지 편역본, 번역본, 역주본 전부 똑 부러지게 정확하다 싶게 맞게 번역한 것이 없다.

이병도 선생의 지적처럼『삼국유사』는 불교지식을 비롯해 난삽하고 난해한 용어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된 번역이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병도 선생은 자신의 번역이 많이 미흡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후대들에게 타산지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예를 들어 彌勒仙花 未尸郞 眞玆師 편에 ‘禮儀風敎, 不類於常’이란 구절이 있는데 이병도 선생은 “예의와 풍교가 보통사람들과 달랐다.”라고 옮겼는데 후학들이 이 구절 번역을 전부 이병도 선생의 이대로 베껴내고 있다. 전체 대한민국 사학자들 중에 혹은 한학자 중에 禮儀風敎가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 참으로 비극이다. 필자는 이병도 선생의 역주본을 처음 접하고 이 번역이 무슨 뜻인지가 이해되지 않아 교보문고에 가서『삼국유사』모든 편역, 번역, 역주본을 샅샅이 훑어보았는데 전부 똑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처음 역주를 시도한 이병도 선생이 이 어휘의 뜻을 모르고 옮긴 번역을 후학들이 역시 모르고 그대로 베껴낸 결과였다.

대저 禮儀風敎란 무슨 뜻일까? 당시 신라 사람들은 외래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고구려와 백제 사람들에 비해 달랐다. 즉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가령 불교가 도입되면 중국식 명칭을 따라 불교라고 그대로 따라 불렀다. 유교도 마찬가지였고 기타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유독 신라에서만은 독특한 시각을 갖고 중국식 명칭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즉 당시 신라 사람들은 무릇 세상의 모든 종교는 풍교일 뿐인데 저마다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성격에 따라 풍교 앞에 달리 이름을 달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불교를 불교라 부르지 않고 석가모니가 창안한 종교(풍교)라는 뜻을 따라 ‘釋氏風敎’라고 불렀던 것이다. 禮儀風敎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답이 아주 간단하다. 즉 유교에 있어서 ‘禮’가 가장 중요한 바이블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유교를 禮敎라고 불렀다. 신라 사람들은 유교를 유교라 부르지 않고 예의를 중시하는 종교(풍교)라고 인식하고 자기네들의 식에 따라 ‘禮儀風敎’라고 불렀던 것이다.『삼국유사』彌勒仙花 未尸郞 眞玆師 편에 ‘禮儀風敎, 不類於常’이란 구절을 마땅히 “유교지식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뛰어났다”고 번역해야 한다.

자아~, 禮儀風敎가 무슨 뜻인지를 제대로 옮기지 못함으로 하여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가? 이것은 단순히 어휘 번역의 오류인 것이 아니라 배달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이다. 즉 신라 사람들은 외래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당시로서는 가장 문명이 앞서 있는 중국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에 따라 부르므로 하여 주체성과 정체성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서양문물이 동양에 불가항력적으로 밀려드는 근대화 시기 중국의 구호는 ‘중체서용(中體西用)’, 일본의 구호는 ‘화혼양재(和魂洋才)’인데 비해 조선의 구호는 ‘동도서기(東道西器)’였다. 이렇다고 내세울 만한 우리 것이 없었다는 뜻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삼국유사』의 재해석을 통해 배달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밝혀내어 청소년들에게 민족적인 자부심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기성세대들이 해야 할 마땅한 책무이다.

요즘 온 나라가 어수선한 정국에 더욱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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