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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의 한국인
1. 돈을 낳는 가게를 처분하는 여자(1)
[300호] 2015년 08월 01일 (토)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시간당 80미리 장대비가 백두산폭포마냥 쏟아져 내리고 있다. 봄부터 여름 내내 우신이 어찌나 인색한지 좀처럼 내리지 않던 비가 일단 오기 시작하더니 124년 만의 가뭄을 한 방에 날려 보낼 태세다. 태풍이 몰고 오는 비는 강풍에 휩쓸려 도시 거리에서 이동하고 있는 사람과 차들을 쓰러버릴 듯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춘영은 자동차를 몰고 거리에 나선 것을 몹시 후회하고 있다. 자신이 7년간 운영하던 가게를 인수할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비즈니스라 아무리 코 대면 닿을 거리지만 우산 쓰고 걸어가노라면 태풍에 머리칼이 쓸려 정신 나간 여인네 모습으로 비쳐질 것 같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려고 자동차를 끌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가시거리가 5m, 운전은 거북이걸음이다. 걷기보다 별반 빠르지 않는 속도라 짜증이 난다. 3년 전 뽑은 벤스500은 고속도로 달릴 때면 비행기가 부럽지 않을 만큼 우주를 날아다닐 기분으로 정말 신났는데 오늘은 삼륜자전거보다 더디니 우울하기 짝이 없다.

춘영은 대기업의 오너들처럼 돈을 산더미로 쌓아놓고 사는 거부는 아니지만 은행 대출 한 푼 없이 동산 부동산 합치면 100억 넘는 재산을 갖고 있는 알짜배기 부자이다. 토종 한국인이라면 100억쯤 재산은 혹시 부자에 속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화교 말고 중국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 한국에 온 사람치고는 최고의 부자라 꼽힐 수 있지 않을까!

춘영이 사는 동네는 서울에서 조선족, 한족을 포함하여 중국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밀집지역이다. 이곳은 산업화 시절 공단구역 메카여서 지방에서 일자리 찾아 서울에 올라온 공돌이 공순이들 둥지였던 쪽방이 많고, 자그마한 음식점이 많고, 예전부터 놀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의 기분을 달래주는 유흥업소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이곳은 많이도 변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근사한 커피숍이 없다는 것이다. 사무실이 별도로 없는 자영자들은 손님이 찾아오거나 거래처와 약속을 하면 인근 다방들을 비즈니스 만남의 장소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이 지역 젊은 공돌이 공순이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이후로 다방에 찾아오는 손님은 삶에 찌들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이마에 앉은 줄음이 밭고랑 같고 세월을 일찍부터 이기지 못해 허리가 구부정 하는 아저씨들 다수이다. 근래는 조선족들이나 한족들, 그러니까 중국에서 온 나이 지긋한 노가다일군들이 일거리가 없을 때면 다방에 와서 아가씨들의 허벅지나 만지면서 저물어가는 촛불 같은 가물거리는 성욕을 달래곤 한다. 다방은 차만 파는 것이 아니라 차보다 커피가 많고 맥주도 팔고 있다. 물론 술장사는 금지사항이지만 슬그머니 팔고 있다. 술 팔지 않으면 짭짤한 수입은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중국과 마찬가지,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서 대책을 강구하여 법을 요리저리 피한다. 요 몇 년래 중국인 손님이 부쩍 늘어나 그들이 즐겨 먹는 연변에서 운반해온 마른 명태를 구워 올리면 맥주 안주로 최상의 조합이다. 사내들이 왜 마른 명태와 마른 낙지를 즐겨 먹을까? 그 맛이 마치 여인의 음부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와 흡사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물론 어느 정신 나간 미친 인간의 외설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명태와 낙지를 자주 다루면 집안에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퀴퀴하고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는 다방, 팁 벌려고 자기 아빠 벌 되는 아저씨들을 오빠라고 부르며 갖은 아양을 떠는 한국말에 서툰 중국 아가씨들이 욱실거리는 다방에 손님 치고 춘영 같은 멋쟁이 중년 여인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꿩 대신 닭을 쓰듯 근사한 커피숍이 없으니 맘이 내키지 않는 다방이라도 이용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비는 멈추지 않고 계속 퍼붓고 있다. 과학을 모르는 세대 사람들은 비가 많이 오면 하늘이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고 떠들었다. 진짜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수도권 지역에 오늘 하루 450미리 내린단다. 중국동북삼성 지역 1년 강우량에 해당되는 비가 하루에 퍼붓고 있으니 얼마나 살벌한 느낌일까. 오후 2시경이라 손님이 별로 없이 한산하다. 게다가 바깥 날씨 때문에 다방은 을씨년스럽다. 춘영은 다방 창문 곁에 몸을 비스듬히 맡기고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약속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다방 주인은 춘영보다 몇 살 아래인 40대 초반 되는 연변아줌마다. 물장사나 술장사하는 여인네들이 모두 그러하듯 다방주인도 꽤나 시끄럽게 떠드는 수다쟁이다. 춘영이 자주 다방을 찾다보니 주인과 허물없이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이다.

“멋쟁이 사장님 광림하셨네요.”

다방주인은 춘영이를 늘 멋쟁이 사장님이라 부른다. 몇 마디 오간 다음엔 자연스레 친근감을 나타내려고 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춘영이 자기 언니와 둘도 없는 친구이니 언니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응, 장사 잘 되고 있지?”

멋쟁이 사장은 예전에는 주인과 수다를 잘도 떨었는데 오늘은 기분이 몹시 꿀꿀해 공식적인 말로 한마디 던지고는 사정없이 창문을 갈겨대는 폭우를 감상하느라 머리를 돌려버렸다. 말이 감상이지 목적의식 없이 무감각적으로 밖을 물끄러미 쳐다 볼 뿐이었다. 폭우는 도시 전체라도 휩쓸어갈 태세다. 중동발 메르스인지 뭔지 하는 요즘 호들갑 떨고 있는 전염병도 폭우에 의해 감쪽같이 사라진다고 언론들이 요란을 떨고 있다.

“주책 모르고 퍼붓는 폭우가 도시 먼지와 나쁜 바이러스를 몽땅 쓸어갈듯 나의 떠올리기 싫은 과거사도 모두 확 쓸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으랴!”

춘영이는 소망이 아닌 소망을 혼자말로 중얼거리면서 조금 떨리는 손으로 핸드백에서 계약서를 꺼내 펼쳤다.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아름다운 중년 여인 춘영의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춘영은 그 누구보다 강한 여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20년 전 정말 분신처럼 사랑하던 남편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눈물을 흘려보고는 그 이후로 울어본 기억이 없다. 한국생활 20여 년 동안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어낸 춘영인데 오늘 왜 눈물이 나지?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나이 들면 별거 아닌 일 갖고도 눈물을 잘 흘린다고 하던데 나도 나이를 먹은 건가? 아니면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가게를 파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일까?

춘영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는 중국전통 안마방이다. 안마방 이름은 가락(可樂)이다. ‘가락안마방’. 요 몇 년래 한국 땅에 자고 깨면 중국전통 안마방이 생겨나고 있다. 그 이름들을 살펴보면 그냥 ‘중국전통 안마’라는 가게이름이 가장 많고 ‘황실안마’ ‘황제안마’ ‘미인안마’등 거창한 이름들도 있다. 춘영은 거창한 이름들을 택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마음에 와 닿는 이름을 짓기로 하였다. 미국이 30여 년 전쯤 굳게 닫혀 있던 중국 문을 뚫을 때 코카콜라를 이용하였다. 처음에는 흙냄새가 난다고 마시기를 거부하던 중국 사람들이 일단 마시기 시작하더니 마약 같이 중독에 빠져버려 대박 터졌다. 중국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중국어로 입에 맞아 즐겁다는 뜻으로 ‘可口可樂’라 번역하였다. 춘영은 가게 이름을 손님들이 즐겁게 지내라는 뜻으로 가락안마방이라 지었던 것이다.

가락안마방은 3년차 되던 해부터 완전히 자리 잡아 수입이 짭짤했다. 4년 되는 해에 같은 지역 2킬로미터 사이 두고 체인점을 하나 오픈하였다. 역시 대박이었다. 3년 전에 대중교통이 발달한 근처에 또 가락안마방 하나 더 오픈하여 모두 세 개였다. 나중에 마지막으로 오픈한 가게가 수입이 가장 대박이다. 세 가게 합치면 월 2억 원이 넘는 수입이 흘러들어온다. 이쯤 되면 진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줍는 것이다. 가락안마방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과장된 말로 표현하자면 가락안마방은 돈을 낳는 가게이다.

머릿속에서 돈뭉치가 왔다 갔다 하면서 춘영의 기분이 하늘 향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타고 구중천에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분은 한심한 바람둥이 사내가 정체 모를 기생의 몸을 스쳐가듯 금세 사라지고 춘영의 기분은 또 다시 우울해졌다.

휴대폰이 울린다.

“오, 깜짝이야.”

다방주인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며 묻는다.

“언니, 왜 언니답지 못하게 벨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그래요?”

“응? 어, 글쎄.”

춘영은 대답이 아닌 대답으로 얼버무려 넘긴다.

“어디서 온 전화길래 그토록 놀래요?”

“응, 아니, 경희한테서 걸려온 전화야. 전화 상대가 누구여서 놀랜 것 아니고 그냥 전화벨 소리에.”

경희는 다방주인의 친언니이며 서울 y대학 사회학 교수이다.

“너, 기어코 가게를 팔아야겠어?” 경희의 아쉬운 질문이 전파를 타고 울려온다.

“응, 할 수 없는 선택인 걸 너 잘 알고 있지 않나.”

“글쎄다, 알아서 해.”

“관심해주어 감사.”

“우리 둘 사이 감사고 뭐고 그런 말 어디 있어?”

이때 약속 손님이 헐레벌떡 다방에 들어섰다.

춘영의 가게를 인수할 약속손님이 빗물에 푹 젖은 우산을 말며 다방에 나타났다. 키가 작다 못해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 분간 못할 난쟁이 사나이다. 조상 때부터 대대로 잘 살아온 부잣집이었다. 경제상으로는 부유하지만 키가 작고 말투도 상대가 알아먹을 듯 말듯 어눌하다. 돈은 많으나 사나이로서 더욱이 신랑감으로서 조건이 모자라 근사한 내국인 여인과 결혼하기엔 역부족이라 조선족 여자와 결혼하였다. 그의 마누라가 된 조선족여자는 중국에서 사범학교도 나오고 키도 160센티, 얼굴도 달떡 같이 환하게 생겼다. 그런 훌륭한 여자가 그와 결혼한 것은 한국인과 혼인한 것이 아니라 한국과 결혼하기 위해 그를 이용했을 뿐이었다. 육칠십 년대 중국에서 춘향이와 같은 아름다운 시골처녀들이 도시에 진출하기 위해 병신 같은 사내한테 시집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처음 출발은 그렇게 시작되었으나 한국에 온 이후로 남편이 아내의 뜻에 따라 투자하여 양꼬치 가게를 운영하고 고추순대, 가지밥, 감자밴새 등 연변토종음식점도 운영하여 돈을 꽤 많이 벌었다. 장사가 억수로 잘되어 여러 분점을 오픈하여 지금은 중국인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부자행렬에 올랐다. 그녀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돈이 맘에 들었고 일단 돈 버는 재미에 그럭저럭 참고 살아오다보니 어언간 강산이 두 번 바뀌어 버린 지금은 남편과 금술이 좋게 지내고 있다.

하느님은 참으로 공평하다. 겉모습이 보잘 것 없이 초라한 사나이한테 머리 하나 기가 막히게 만들어 주었다. 춘영의 가게를 인수할 사나이는 돈 버는 재주가 뛰어나다. 지금까지 번 돈으로 부부가 남은여생 흥청망청 써대도 남을 만큼 부자이다. 그러나 있는 놈일수록 더 짜다고 난쟁이 사나이는 춘영의 세 가게를 한꺼번에 인수하면서 한 푼이라도 깎느라 모든 지력상수를 총동원하고 있다. 일단 가게들이 현재 참 잘도 돌아가고 있으니 권리금을 잘 받을 수 있다. 아무리 그랑데 영감이라도 사회적인 룰은 지켜야 매매가 이뤄진다는 도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춘영의 최저한도로 부르는 금액에 맞춰주기로 하고 갑과 을이 계약서에 사인하고 인감도장 찍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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