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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한국과 중국의 공존을 말하다
[263호] 2014년 01월 16일 (목) 동포타운신문 dongpotown@daum.net

조정래의 『정글만리』는 2013년 최고의 화제 소설이다. 70고령의 한국대표원로작가가 출간되기도 전에 인터넷에 연재하여 호응을 얻기 시작한 이 소설은 출간 후 3개월 만에 80만부를 넘어서 올해 세계독서시장의 초유의 관심사였던 일본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을 제치고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
조정래는 여러 인터뷰에서 1990년대의 첫 중국행에서 개혁개방 10년만 에 12억 인구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중국의 성과를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이것이 중국관련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20년, 30년 후에 중국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갈수록 커져갔고 20년간 수십 차례 중국을 드나들며 취재하고 6년간 수많은 중국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고 중국관련 도서만 80권이상 검토하면서 한 권 한 권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하고 탄생한 작품이 『정글만리』라고 했다. 처음 정했던 제목은 사회주의 체제로 자본주의 꿈을 꾼다는 의미의 『붉은 땅, 푸른 꿈』이었으나 최종『정글만리』라는 제목으로 낙찰되었다고 한다. ‘정글’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치열한 자본주의적 삶의 현장을 상징, 그 앞에 중국의 거대함을 나타내는 ‘만리’를 붙여 소설의 스케일을 짐작케 한다.
세계 500대기업의 97%가 진출해있고 한국의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수만 개가 나가있는 중국 대륙에서 진행 중인 총소리 없는 경제전쟁 속에는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한다. 저자는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세계의 G2로 발돋움한 중국의 역동적 변화를 보여주면서도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도시들과 싼 목숨으로 취급받는 농민공들의 모습 등 경제개발의 어두운 이면을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다섯 나라 비즈니스맨들과 얽히고설킨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서구인의 시각으로도 한국인의 시각으로도 쉽사리 가치판단을 내릴 수 없는 중국의 독특한 문화적 성격과 배경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다양한 목소리로 표현되면서, 한국인 속의 이중적 시선과 편견, 복잡하게 뒤섞인 한중일의 근현대사로 형성된 민족감정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21세기 한국과 한반도 주변의 경제적 정치적 흐름을 따라가며 진실과 정의, 가치에 대해 그리고 우리 민족의 미래 비전을 조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작 『태백산맥』(전 10권)과 『한강』(전10권) 등 대하소설을 통해 남북분단, 경제건설, 민주화로 이어지는 한국의 근현대 비극을 예리하고 생생하게 그려 내었다면 『정글만리』는 한국독자들로 하여금 좀 더 넓은 안목으로 세상 밖을 바라보도록, 세계의 중심이 되어가는 거대한 중국과 어떤 이웃으로 살아나가야 할지, 과연 그러한 미래와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는 지 자문하는 자세로 읽도록 이끈다. 이 책의 중심부에서 저자는 요즘 결코 낯설지 않은 “민족주의”라는 화두도 던진다. 히틀러의 민족주의는 일고의 가치 없이 나쁘지만 강대국 틈새에서 살아남기 위해 패권에 저항하고 공생, 호혜적인 약소국들의 민족주의는 히틀러의 유아독존의 민족주의와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글로벌시대’에 국경이 어디 있냐고 스스로 ‘세계시민’이나 ‘경계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걸 보면 세계가 정말 하나로 되어가나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인종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는 없어지지 않고 더 단단해지는 경향이 있다는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장기불황의 출로랍시고 행해지는 일본의 우경화, 수많은 인종의 이민국가를 다스려나가기 위해 표방한 미국의 “국가주의” 역시 일종의 배타적이고 편협한 민족주의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상 깊은 대목은 중국에 대하여 짝퉁천국이다, 더럽다, 게으르다라는 편파적이고 일방적인 인식이 얼마나 경박하며 위험한지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부분이다. 반대로 자본주의와 함께 거세게 밀려드는 의식형태의 전환위기, 빈부격차의 심화, 하층민들의 불만증대 등 중국의 사회갈등문제도 빼놓지 않고 생생하게 전달한다. 동북공정이나 일본과의 영토문제 등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도 애국주의, 포퓰리즘을 부추김으로써 민중들이 정부에 대한 불만을 외부로 분산시키기 위한 정부의 작전이라는 대사도 등장할 만큼 이 책은 한국과 주변국들의 역사, 정치, 외교, 경제, 사회제도, 문화의 전반을 폭넓게 깊이 있게 아우르는 거대서사시다. 저자가 이 책을 읽은 중국정부는 무슨 반응일까 싶어 중국대사관에 책을 보내놓았는데 석 달 넘도록 아무 반응이 없어 그대로 중국출판사와 계약을 했다는 후문이다. 사전검열이 이루어지는 중국에서 무삭제출판이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소설의 결말에 북경대 역사학도인 한국인 유학생 송재형과 중국인 리옌링이 수많은 난관과 고통을 겪고 이겨내고 진정한 사랑의 결실을 맺는 장면은 서로 존중하는 객관적인 역사인식에 기초한, 건강하고 건설적인 한중 미래비젼을 함축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은 기나긴 역사를 통해서 애증이 엇갈리는 세월을 살아왔지만 문화의 동질성과 종족의 유사성, 감성과 사상의 소통성이 강하기 때문에 서로 진심 어린 노력만 한다면 함께 번영해나가는 21세기를 살수 있다고 하는 저자의 전향적인 메시지는 한중 친선에도 큰 공헌을 할 것임이 분명하다.
분량이 두 권 이상이면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아예 읽지도 않는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서양에서는 대하소설이 없어 진지도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런 편견과 통념을 깨고 1,200쪽이 넘는 대하소설로 당당히 2013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정글만리』는 ‘유럽이 주는 상에 연연하지 말고 이 시대를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작품이라면 몇 권의 길이든 써낼 용기와 인내력이 있어야 진정한 작가다’라는 조정래작가의 또 한번의 인간승리인 셈이다. 참된 문학은 세상을 변화,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하는 칠순 원로작가의 말에 다시 고개가 숙여진다.

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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