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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족할 땐 아낄 줄 모르다가 앞길이 막혀서야 뉘우친다[身後有餘忘縮手]
명언의 역사적 사례(4)
[262호] 2014년 01월 01일 (수)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안사의 난이 일어난 지 2년째 되던 해인 756년의 일이다. 태자 이형(李亨)이 숙종으로 즉위한 뒤부터 당 왕조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전국에 군웅이 할거하였으며 권력을 손에 넣은 가신들의 횡포가 나날이 극심해지고 있었다.

당시 어조은(魚朝恩)은 숙종이 가장 총애하던 신하였다. 그는 궁정 근위대인 신책군(神策軍)을 지휘하는 직책에 있으면서 군대를 장악하고 궁정을 제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대종(代宗)이 즉위하였는데 대종은 조서를 내려 이조은을 국자감사로 임명하였다.

이제 권세를 얻고 교만이 극에 달한 어조은에게 조정의 문무대관들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는 관료 회의 때마다 장광설을 늘어놓는가 하면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재상과 대신들을 모욕했다. 심지어는 조정에서 언변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재상 원재(元載)마저도 그의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훈제를 들어야 했다.

어조은의 오만방자함은 끝이 없었다. 그에게는 영휘(令徽)라는 양자가 있었는데 내시성(內侍省)의 내급사(內給使)였다.

한 번은 어조은이 아들을 데리고 대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의 아들놈이 관직이 미천하므로 동료들에게 멸시를 당하기 일쑤이니 폐하께서 자주색 관복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자주색 관복은 당시 고급 관원들이나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이 말을 듣고 대종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어조은의 충복이 미리 준비한 자주색 관복을 안고 와서는 영휘에게 입혀주었다.

대종은 이 광경을 보고 어이가 없었으나 상황에 맞추어 “자주색 관복을 입으니 훨씬 잘 어울리는구나.”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풍족할 땐 아낄 줄 모르다가 뒤늦게 뉘우친다.”는 말처럼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어조은에게도 몰락의 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한식 연회가 끝난 후 대종의 명령이 떨어지자 매복하고 있던 무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어조은은 그 자리에서 교살되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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