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18.07.19(목) 구인고충상담기사제보신문지면보기
신문사소개 | 구독신청아이디/비밀번호
> 뉴스 > 칼럼/사설 > 특별연재
     
중용, 중국인의 삶의 지혜
역사문화이야기
[262호] 2014년 01월 01일 (수)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중용이란 무엇인가? ‘중(中)’은 극단적이지도 않고 물렁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용(庸)’은 현실세계와 동떨어지지 않는 상(常)이며 보편적이라는 의미이다.

맹자는 중용의 달인인 공자를 어떻게 평가하였는가?

맹자는 성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다음과 같은 넷을 꼽았다. 백이(伯夷), 이윤(伊尹), 유하혜(柳下惠), 공부자(孔夫子)이다. 그런데 맹자는 네 성인 중 백이와 유하혜는 따라 배울 필요가 없는 인물로 취급하고 이윤과 공부자를 따라 배우라고 호소한다. 같은 성인반열에 올랐으면 네 사람을 모두 따라 배우는 것이 지극히 맞는 상식일 텐데 이윤과 공부자는 따라 배우라고 호소하고 백이와 유하혜는 따라 배울 필요가 없다는 걸까?

백이는 성인 가운데 가장 청렴하고 고결한 사람이다(聖之淸者). 정류수가 맑고 균이 없어 좋지만 물고기가 자라지 못한다. 인간은 너무 청결하고 고결하면 세상살이에 눈이 어둡게 된다. 처세술이 문제라는 것이다. 처세술에 문제 있는 사람은 따라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명나라 청관 해서(海瑞)는 사무용 용지조차도 친히 나눠주고 챙길 만큼 청렴했다. 해서도 청관이었지만 백이와 마찬가지로 처세술에 문제가 많았다. 따라 배울 필요가 없는 인물로 분류된다.

유하혜는 백이와 양극에 있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다. 백이는 군주를 가려가며 섬긴다. 즉 섬길만한 군주만 섬긴다는 것이다. 유하혜는 아무 군주를 섬기든 상관없다. 오로지 나의 소임만 다 하면 그만이다. 백성도 마찬가지다. 백이는 사랑하지 못할 백성은 사랑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유하혜는 아무리 천하고 못나고 설사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고 심지어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조차 가까이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하혜는 ‘성지화자(聖之和者)로 평가된다. 하지만 유하혜의 결함은 원칙이 없이 너무 관대하고 물렁하다는 것이다. 너무 관대한 태도는 결국 도를 벗어난 것이므로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유하혜를 따라 배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윤은 천하의 중책을 자임하고 하(夏)를 정벌하고 백성을 구하는 일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천하 백성이 요순 때와 같이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자신이 그들을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길 만큼 책임의식이 그 누구보다 강했다. 이윤은 ‘성지임자(聖之任者)’이기 때문에 반드시 따라 배울 인물이라는 것이 맹자의 주장이다.

공자는 때와 장소를 잘 파악하여 처사하는 달인이다. 공자는 “속히 떠날만하면 속히 떠나고 오래 머물만하면 오래 머물며 은둔할만하면 은둔하고 벼슬할만하면 벼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공자는 ‘성지시자(聖之時者)’이다. 때와 장소를 잘 파악하고 처사한다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란 말이 된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을 또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실사구시이다. 공자는 제자 자로에게 “유야! 너에게 아는 것에 대해 가르쳐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얼마나 실사구시한가!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다.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 얼마나 현실적인가? 이것이 공자의 중용이다.

중용이 현실적이고 실질이어서 실천이 가능하여 좋은 것이지만 나름대로 결함이 많다. 그 결함은 원칙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논어·선진》에 보면 자로가 공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들으면 실행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부친과 형이 계신데 어찌 들으면 실행할 수 있겠느냐?” 그런데 염유(冉有)가 똑 같은 질문을 하자 공자는 반대로 대답한다. “물론이다. 들으면 곧 실행해야 한다.” 공자가 똑 같은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대답을 하자 공서화(公西華)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자에게 조금 전에 아유(阿由 : 자로))가 물을 때하고 아구(阿求)가 물었을 때 왜 전혀 다른 대답을 하셨냐고 물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구는 물러남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고 유는 다른 이들보다 나으니 물러가게 한 것이다.”

이와 같은 공자의 다른 대답에 대해 중국학자들은 ‘살아 있는 이치를 지킨 것’이라고 찬양하지만 예수의 교육을 먹고 사는 기독교문화권인 서양인들은 어떻게 성인의 말씀이 때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느냐는 강력은 의문을 제기한다. 서양인의 결론은 중국문화는 원칙이 결여되어 있어 물 탄 듯 술 탄 듯 물렁하다는 것이다.

공자의 대답이 다른 것을 이중성이라 표현하면 맞는지 잘 모르겠으나 공자의 교육을 받은 중국인의 국민성, 민족성은 이중성이 강하다. 역중천 교수는 《중국인을 말하다》는 책의 서문에서 중국인의 이중성에 대해 재미나게 지적하고 있다. 선조들이 ‘의로운 일에 용감하게 나서라’고 하고는 또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한다. ‘각자 자기 집 문 앞 눈만 치우고 타인 지붕 위 서리는 관계치 않는 것’이 중국인의 처세철학이다. 중국에는 ‘시아버지가 말하면 시아버지에게 도리가 있고, 시어머니가 말하면 시어머니에게 도리가 있다.’는 속담이 있다. 도리가 누구한테 있느냐는 것은 전혀 중요치 않다. 다만 누가 말했느냐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원칙이 전혀 끼어들 틈이 없다. 세사에서 중국인의 세계관이 가장 복잡하다. 중국인은 경직하면서도 원활하다. 솔직하면서도 고집이 세다. 의심이 많으면서도 쉽게 믿는다. 굳어져 있으면서도 영활하다. 실리를 따지면서도 의리를 중히 여긴다. 예의를 숭상하면서도 공덕이 부족하다. 중용을 중히 여기면서도 극단으로 치닫는다. 근검절약을 제창하면서도 폼 잡기를 좋아한다. 옛법을 지키면서도 유행을 따른다. 지족상락(知足常樂)하면서도 졸부가 되려 한다. 향을 피우고 점을 치면서도 종교 감각은 없다. 뭉치기 좋아하면서도 내투(內鬪)를 좋아한다. 흠집 내기를 하면서도 둥글게 하기를 좋아한다.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기를 저어하면서도 한담하기 좋아한다. 분초를 다투면서도 ‘천천히’ ‘천천히’를 주장한다.

김정룡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동포타운신문(http://www.dongpotow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sk텔레콤
< ahref=http://www.kqci.kr>
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2-800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 122-19 정풍빌딩 3층 | Tel 02-837-4470 | Fax 02-837-4407
Copyright 2009 동포타운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ongpotown@daum.net
동포타운신문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