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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냥년이란 말의 유래
[259호] 2013년 11월 15일 (금) 김정룡 기자 kzl0917@naver.com

화냥년이란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 환향녀(還鄕女)를 가리키는데서 유래된 말인데 오늘날 품행이 단정치 못해 정조를 잃은 여자를 화냥년이라 부른다. 어찌된 영문일까? 그 유래를 살펴보자.

17세기 초엽 굳건했던 명나라의 대세가 기울어가고 동북쪽의 만주족 금(金)이 바야흐로 궐기하여 명을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의 광해군은 명과 금 사이 등거리 외교전술을 펼치며 적절히 나라생존을 위한 평화를 도모하였다. 그러다가 1623년 서인당파세력을 등에 업은 인조(仁祖)가 왕위에 오르면서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 일변도를 고집한 탓에 금의 심기를 심하게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여 금은 1635년 조선을 혼내 자기네를 받들게 하려고 침략전쟁을 감행하였다.

전쟁의 결과는 불 보듯 빤했다. 기마민족인 금은 군사력이 강했다. 농경문화로 살아온 조선은 금의 상대가 되지 못해 참담한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전쟁에 진 조선은 인질을 금에 보내야 했다. 인질은 절대다수가 여자, 그것도 젊은 여자들만 대상이었다. 인질숫자는 무려 60만 명이었다. 숫자를 채우다 못해 유명 재상 장유의 며느리까지 포함시켜야했다.

이렇게 금에 끌려간 60만 명의 인질을 왕의 무능에 의해 3년이 지나도록 단 한 명도 데려오지 못했다. 충신 최명길이 인질 구하기에 나섰다. 왕에게 상소하여 은 2만5천 냥을 손에 쥔 최명길이 금에 찾아가 협상을 벌였다. 결과 몇 명 모자라는 2만 9천 여 명을 데려오게 되었다. 큰 성공이었다.

최명길의 노력에 의해 고향에 돌아오게 된 여자들(還鄕女)은 몹시 설레는 가슴을 안고 기쁘게 돌아왔건만 가가호호 그녀들을 받아주지 않아 길거리에 나 앉게 되었다. 그녀들은 차라리 돌아오지 않기만 못했다. 받아주지 않은 이유는 한심했다. 금에 가서 오랑캐들의 노리개가 되어 몸을 더럽힌 아녀자들이 어떻게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하느냐, 이것이 이유였다. 남자들이 힘없어 여자를 지켜주지 못하고는 고향에 어렵사리 돌아온 그녀들을 죄인 취급하였던 것이다. 아주 치사스럽게 말이다.

환향녀들은 수침심을 이기지 못해 절망에 빠져들게 되었다. 더러는 강에 몸을 던지고, 더러는 나무에 목을 매고, 더러는 조국의 행태에 분개해 길가에서 자결해 시가지에 시신이 즐비하게 널렸다.

사태가 매우 심각했건만 무능한 왕은 그녀들을 구할 방도가 없었다. 결자해지, 그녀들을 데려온 당사자 최명길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왕은 최명길 앞에서 “이게 모두 과인이 부덕한 탓이오.”라고만 곱씹을 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최명길이 그녀들을 구할 방법이 있다고 말하자 왕은 눈이 둥그레 지면서 마치 사탕을 줄 엄마를 바라보는 눈빛보다 더 절박하였다. “역시 어려운 일 타개하는 데는 자네밖에 없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치하하였다. 최명길은 왕에게 약속을 다짐받기로 하였다. “전하, 환향녀들을 구하자면 어명에 의한 국법으로 다스릴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는 줄 아옵니다.” 왕은 뭐든지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최명길이 준비한 상소문을 왕에게 올렸다. “전하, 각 고을에 있는 강을 회절강(回節江:정조를 회복한다는 뜻)으로 정하시고 경상도는 낙동강, 전라도는 영상강, 충청도는 백마강, 경기지역을 포함한 수도권은 한강, 강원도와 평안도 일대는 대동강, 그 북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에 환향녀들을 깨끗이 목욕시켜 회절한 것으로 취급하고 가가호

호에서 그녀들을 받아들이게끔 어명을 내리옵소서. 만약 회절한 환향녀들을 받아주지 않는 가문이 있다면 왕법으로 다스린다는 어명이 내려지시면 전부 받아줄 것으로 아옵니다.”

세례를 통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종교적인 의식 사례가 있긴 하지만 최명길의 회절방법은 환향녀들을 구하기 위해 내놓은 어쩔 수 없는 궁여지책이었다. 아무리 궁여지책일지언정 일단 왕법으로 정하면 가가호호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최명길 덕분에 더는 자결하는 환향녀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가가호호 유교적인 이념과 사상으로 가뜩 무장된 사내들이 내심으로 환향녀들을 용서하였을까? 답은 빤하다. 핍박에 의해 양산박에 오른 격으로 환향녀들을 받아주긴 하였으나 그녀들을 천시하는 풍조는 여전하였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품행이 단정치 못하고 정조를 잃은 여자들을 화냥년이라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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